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경청하거나 자세히 들으면 희미하지 않습니다. 매우 분명하고 단호하고 엄격합니다. 예전의 율법보다 더 날이 날카롭습니다. 만약 그 칼을 사랑이라는 칼집으로 싸고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라면서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칼 집이 우리에게 먼저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공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리한 칼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게 합니다. 마침내는 예리한 칼로 시험을 받아도 통과하도록 세워 줍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날카로운 날 칼을 들어보겠습니다. 율법에서는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제, 자매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심판이란 죄에 대한 징계를 의미합니다. 성을 낸다는 것은 상대를 상해하거나 살인하는 것, 이전에 상황입니다. 화만 내도 심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얼간이 옛 번역에서는 바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부르고 놀리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는데 어떤 형제가 제사를 드리려는 제자에게 원한 품은 것이 생각나거든 그에게 찾아가서 그와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은 물론이고, 오히려 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음 누구나 쉽게 걸립니다. 간음의 종류를 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여자를 강간하는 정도가 아니라 음욕을 품는 것 그러니까 미수이전에 음탕한 마음을 갖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죄를 지을 것 같으면 온전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지체, 곧 불구자가 되어서 천당 가는 것이 나으니 잘라 버리라고 하십니다. 또 다른 간음 하나는 이혼입니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여자를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고, 또 버림받은 여인과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매우 예리합니다. 피할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사랑이라는 칼 집이 있으셔서 참 다행스럽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 정의로만 재판을 하시기 때문에 얼마나 예리하고 엄중하실까 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흠과 티와 주름이 없는 자신이 되도록 수고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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