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말씀하시는 내용 중에 좁은 문을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이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좁고 어려운 길입니다. 큰 길은 우선은 사람들이 많이 가고, 가기도 편하고, 이 길을 선택하면 일석이조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길입니다. 일석이조라 하면 세상을 사는 동안도 유복하고, 죽어서도 천당으로 갈 수 있으니 매우 좋게 생각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잘 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고 성서에 의하면 그런 길은 보람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뭔가가 허전하고 공허하고, 불안합니다. 세상을 살아도 적어도 자기가 가는 길이 평안하고, 유복하다고 할지라도 마음 깊은 곳 그리고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근거지로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좁고 힘들게 생활하는데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물론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과 천당을 동시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갖는 갈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불행하게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잔치와 이 세상에서의 업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 세상의 업무를 1차로 생각하는 사람은 임금님의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자기를 잔치로 초대하러 온 임금님의 종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담대하다고는 하지 않고, 미련하다고 하겠죠? 임금님의 종은 임금님의 사신으로서 임금님을 대신하는 사람인데 그를 죽였으니 당연히 그는 사형감 아니겠습니까? 네, 우리 모두가 긍정하고 수긍하듯이 임금님께서는 종이 죽었다는 전달을 듣고, 종을 죽인 사람들에게 가셔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세번째로, 어떤 사람은 잔치에 참석은 했습니다. 잔치의 주인인 임금님이 와서 손님들과 인사를 하면서 오지 않아야 할 사람이 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본 임금님은 아니 이곳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올 수 있었냐고 하면서 그를 묶어서 어두운데로 내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슬피울면서 이를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임금님의 초대에 응당 가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가면서도 가기 전에 예복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예복은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가 그때 가서 그냥 자기가 입고 있던 교만의 옷, 자랑의 옷, 음란의 옷, 탐욕의 옷을 입고 있다면 그는 잔치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그곳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초대를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교만의 옷을 겸손의 옷으로, 음란의옷을 청빈의 옷으로, 음란의 옷을 순결의 옷으로, 그리고 자랑의 옷을 절제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들을 경험합니다. 네, 말이라도 그렇게 하니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잔치에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네, 잔치에 입는 예복인 의의 옷, 겸손의 옷, 청빈의 옷, 절제의 옷, 성결의 옷, 순결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날 허둥대면서 기름을 준비하다가 신랑이신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잘 준비하였다가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서 기뻐하며 잔치에 참가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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