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본문에서 세 가지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 중에서 다른 두 가지 사건을 조용하게 만든 사건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유대 땅이 아니라 유대 지경 바깥입니다. 그곳에 가셨는데 그곳에 사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행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여인의 딸에게 귀신이 들려있으니 그 귀신을 제발 쫓아내 달라고 강력히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의 요청이 너무 컸기에 제자들은 여인의 사정을 들어드리라고 권면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요청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자기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신 것을 알게 된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 대하여 자녀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반응을 하실 때 여인은 포기하고 오히려 그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느니 자비를 앞세운 종교 사기꾼,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오히려 자기를 개에게 비유하면서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수러기를 주서 먹는다고 하면서 부스러기라도 좀 먹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종차별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언어를 사용하셨을 때 그 반응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길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오히려 자기를 개에게 비유하면서 개의 특성을 살려서 예수님의 도움을 요청하자 예수님께서 두손 들으시고, 여인을 향해 당신의 믿음이 큽니다. 라고 하시면서 여인의 소원대로 될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포가 떨어지자 여인의 딸에게 붙어있던 귀신이 여지없이 떨어져 쫓겨났습니다. 예수님께 그런 모독적인 언사와 냉정한 대우를 넘어선 여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이 있으신 우리를 도우실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받는 것에 그 어떤 장애도 넘어서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한 가지 사건만 잠깐 생각하겠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누어서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또 물고기 몇 마리와 보리 빵 일곱 개로 장정만 사천 명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일곱 바구니가 되었다고 알려줄까요? 네, 오병이어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귀신축출, 병 치유사건과 똑 같이 현실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보다 더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 안에 길을 만드셔서 건너게 하셨고, 구름으로 이집트의 정예병들을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천사의 음식을 운반하셔서 먹게 하시므로 한 사람도 굶거나 배를 주리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엘리사도 많은 신학생들을 배불리 먹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 예수님의 일을 본인의 생각으로 미화하려 하지 말고, 주님께서 하신 그대로 설명하고, 간증하십시다. 스스로에게 선포합시다. 주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능력이 있으시다.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고 간청하면 무엇이든 다 해결하여 주신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 귀하신 예님께서 나의 요청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께 망서립이나 지체없이 믿고,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그것을 구하고 요청하시는 큰 믿음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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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의 비유는 신앙인이라면 믿은 해 수 만큼 들은 비유이고, 설교 말씀일 것입니다. 매년 연 말이면 이 말씀은 거의 모든 목사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시니까요. 그런데 달란트의 양이 얼마나 될까요? 설교를 하시는 분들이나 듣는 분들이 큰 오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작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다른 성경을 참고로 한다면 작은 돈이 아닙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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