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물론이고,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사람들은 수상 스키를 탔습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걷지는 않지만 물 위를 자유자재로 떠서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를 향해서 오고 계셨습니다. 달 빛에 그림자가 비치는 어느 날 밤 사람의 그림자가 자기들이 탄 배를 향해서 오고 있을 때 제자들의 두려움은 극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외치는 소리는 사람이면 거기에 서고, 귀신이면 물러 가라라는 외침입니다. 그런데 그림자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뜻 밖의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면 저에게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올라고 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세요. 라고 하시자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었습니다. 물 위로 두 사람이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걸어서 오고 계셨고, 베드로도 예수님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그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마 땅을 밟는 그 기분이 아닐까요? 배를 타고 걸을 때 또는 수상 스키에 몸을 맡기고 물 위를 떠 있을 때도 땅을 밟을 때의 그 기분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 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말에 아는 것이 병이라고 오랜 세월 어부의 경험을 가진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치고,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거센 바람이 불므로 무서움에 빠졌습니다. 그런 무서움에 빠지가 바로 물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믿는다고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믿는 대로 된다. 이런 믿음이 자기 스스로의 외침이나 최면이라도 어느 만큼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지으시고, 물을 주관하십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고, 그분을 믿고 걸으므로 당연히 거센 바람일지라도 까지껏 했어야 했는데 무서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려 달라는 베드로를 잡아서 꺼내주시면서 작은 믿음으로 의심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네, 큰 믿음을 갖는 것이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불치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인 사람들을 고쳐주셔서 건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바람이나 실패나 또는 다른 것들이 주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을 흔들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물 위에 계십니다. 그냥 믿으면 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마치 바닷물에서 사람을 쉽게 수용하게 돕는 튜브에 바람이 빠지듯이 가라앉게 됩니다. 튜브에 바람을 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심은 바람을 빼서 물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믿으면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빠지지 않습니다. 물 위만이 아니라 공중에서도 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도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기를 안전하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게 합니다. 큰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히 11:6절에 의하면 그런 믿음의 사람이면 상까지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세상의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상까지 받는 은혜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top of page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예수님께서는 항상 심판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학교 공부할 때 담임 선생님께서 맡은 반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 주기 위하여 시험 점수를 잘 맞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학과 선생님들께서 반복하시는 내용, 강조하시는 내용은 거의 시험에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은 반드시 기억하고 있으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달란트의 비유는 신앙인이라면 믿은 해 수 만큼 들은 비유이고, 설교 말씀일 것입니다. 매년 연 말이면 이 말씀은 거의 모든 목사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시니까요. 그런데 달란트의 양이 얼마나 될까요? 설교를 하시는 분들이나 듣는 분들이 큰 오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작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다른 성경을 참고로 한다면 작은 돈이 아닙니다. 나
우리가 보통 아는 결혼 예식은 한 총각에 한 처녀이고, 유대 혼인 예식은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어주신 혼인 예식에서 열 처녀란 들러리를 가리킵니다. 들러리라고 하지만 목적은 혼인예식에 참석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가 신부인가가 포인트가 아니라 혼인예식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혼인 예식은 신랑이 오면서 시작이 된 답니다. 신랑이 언제 올지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