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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와 침례(마 3:1~12)

유다의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이 전해진 이후로 침례 요한이 나타날 때까지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다는 것이 성서학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주님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부터 침례 요한이 출현할 때까지를 침묵의 시기, 암흑의 시기, 중간기라고 합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4백 년이었으므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습니까 마는 성서에서는 그 시간을 다루지 않습니다. 침례요한이 출현하자 유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혹시 그가 주님께서 약속하시다가 보내신 메시야가 아니실까? 라는 의구심과 기대감으로 그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그의 모습과 그가 외치는 말씀 역시 시대를 가를 만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씀은 회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는 주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그와 자기의 차이는 침례를 베푸는 것부터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그는 성령과 불로 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알아둘 필요가 있는 단어입니다. 세례라는 단어와 침례라는 단어입니다. 세례와 침례는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선다는 의미의 예식입니다. 물론 갈 2:20절이나 롬 6장에서 매우 깊고 중요하게 그 의미를 다룹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새 사람이 되어 주님을 따라 산다는 의미의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든지 세례를 받으면 과거의 죄인은 없고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새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좀더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더 해 드리겠고, 오늘은 침례와 세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례란 죄인이 물에 들어가서 죽고, 죄와 관계없는 새 사람이 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침례는 물에서 받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기독인들이 로마 박해 당시 카타콤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동굴 속에서 예수님을 자기의 주로 믿고, 죄를 회개한 후 침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강물도 없었거니와 지금처럼 세례 통에 물을 받아서 그 속에 잠길 수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죄를 회개한 사람에게 물을 머리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여도 그는 예수님의 피인 물에 죄가 씻겨서 새로운 예수님의 사람, 믿음이 사람이 된다는 예식을 카타콤 동굴 안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것이 박해를 받는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로마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계속 카타콤 동굴 속에서 진행하던 예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예식을 교회들은 세례라는 단어로 계속 진행하여 오고 침례교단을 비롯하여 몇 종파들은 Baptism이라는 단어와 예수님께서 받으신 예식을 발견하여서 세례를 침례로 바꾸었습니다. 저는 장로교의 목사로 예식과 의미를 생각할 때 침례가 훨씬 더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례 역시 핍박과 박해의 고난을 겪으면서 형성된 예식이므로 교회사의 교부들이 세례와 침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디다케의 가르침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할례를 몸에 하지 말고, 마음에 하라고 여러 곳에서 말씀하심 것처럼 예식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 안에서 결단하고 고백하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침례를 받고, 싶으면 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성 삼위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주로 믿고, 세례를 받고, 주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는데 침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운 예식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례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요단강이나 침례 통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을 권면할 수 있으나 세례를 무시하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식이 중요하기는 하나 물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건강한 믿음으로 장성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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