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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치나 동정을 살피는 사람들(마 21:23~32)

예수님 시대에는 종교인들이 사두개인, 바리새인, 엣세네인들로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자주 등장하지만 에세네인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에세네인은 침례요한을 통해서 설명이 되었습니다. 에세네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계명을 연구하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사람 중심에 서자 그들은 사회를 떠납니다. 사회를 떠나서 사람이 살기 힘든 사해 동편의 광야로 갑니다. 그곳에서 자기들 대로의 촌락을 형성하여서 경건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일명 그들을 경건한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하시디안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갔던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으로 포로가 된 사람들은 성전에 올 수 없으므로 자기들이 사는 곳에 회당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으므로 그 대신 율법을 연구하고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과 구분되게 살려고 하였습니다. 패리쉬라는 뜻은 히브리어의 카도쉬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무겁다. 구분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므로 하나님처럼 자기들을 카도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하여서 래뤼시, 곧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따르며 살려고 하였습니다. 근본 취지는 좋으나 속 사람이 바뀌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거룩한 척, 경건한 척하였고, 거룩한 신앙인이 되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였고, 그러다보니 옷도 점잖게 입었고, 걸음걸이도 엄숙하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리도 나름대로의 전통을 만들어서 하나님으 더 잘 믿는 척하였던 사람들이었으나 유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아론의 자손으로 레위지파입니다. 이들은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이어야 했는데 중간기 동안 제사장, 대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왕에게 직위를 받았습니다. 그러잖아도 정통성을 갖길 원했던 왕, 특히 이두매 사람으로 이방인 출신이던 헤롯은 자기에게 제사장직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서로 죽고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들은 현실 정치에는 매우 민감해서 재정과 자리에 연연하였습니다. 말씀엔 관심이 없고 제사를 지내며재물 그리고 성전 세와 같은 돈에 민간하였습니다. 당연히 현실적이었고, 바리새인들과 달리 영적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을 부인하였고, 천사도 부인하였으며 부활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건강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종교인들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눈치와 동향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흐름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백성들이 난을 일으키든지 자기들을 거부하면 자기들의 영향력이 없어지고 자리가 위태했기 때문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전청결을 하는 권위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을 때 요한의 침례가 어디에서 왔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기자는 설명하기를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왔다고 하면 왜 그를 안 믿냐고 할 것이고, 아니라고 하면 백성들이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업습니다. 그래서 모르겠다고 하니 예수님께서도 나도 당신들에게 나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들의 흐름, 더 나아가서 공중권세를 잡은 자들의 의도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 5장에서 본인을 소개하실 때 심지어 침례 요한까지도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알려 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또는 저를 포함한 사역자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뿌리를 사람들에게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고, 하나님의 편에서 백성들에게 말씀과 죄사함과 예배를 인도합니다. 물론 제사장은 사역자만이 아니라 모든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뿌리와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백성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의 위치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파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고, 제사장임을 알고, 하나님께 깊게 뿌리를 내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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