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으로 비유하여서 설명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집에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삼 백 데나리온 어치의 가치가 있는 옥합이 든 항아리를 열고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발에는 자기의 눈물을 흘려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시몬은 여인이 왜 이렇게 큰 돈을 낭비하는가 라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시몬 씨 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었고,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고마워하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백 데나리온을 탕감받은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연인은 그 이상을 탕감받아서 저에게 그 감사한 마음을 실천하였습니다. 사실 당신은 저에게 이 여인과 같이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은 많은 것으로 갚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런데 본문에서는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버는 데나리온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달란트입니다. 외경이라는 책을 보면 전쟁에서 진 나라 또는 전쟁을 하지 않고, 힘이 약한 나라가 큰 나라에 바치는 돈의 액수가 바로 달란트임을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은화 이백 달란트, 어떤 때는 금화 삼백 달란트라는 액수가 작은 나라, 패배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에게 바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달란트라는 돈의 양은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액수입니다. 성경의 돈을 연구한 한 신학자는 일 달란트는 형재의 한국 돈으로 90억이라고 설명합니다. 90억이 만이라고 계산하면 이 돈은 천문학적인 액수로서 정말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큽니까?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합니다. 사람은 아주 고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의 생명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의 값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고귀하기가 똑 같다. 그런데 그들의 생명이 육체의 생명을 넘어서서 죽음 이후의 까지 생각한다면 만 달란트라는 돈보다 더 큽니다. 이렇게 큰 돈을 탕감받았습니다. 그것을 탕감받은 사람이라면 그 이하나 그와 같은 빚을 진 사람에게 똑 같은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이시며 설명이십니다. 저는 요즈음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는 학자의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시는 예수님도 그러하시고, 복음서 이외의 율법서나 시가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 그렇게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 그리고 제자들 그리고 자녀들에게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강조하십니다. 뇌과학자는 용서를 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보다 하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여 준답니다. 용서를 하면 평안해지고, 쉼을 갖게 되고 건강하게 회복된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덕목이자 타 종교의 덕목인 자비, 사랑, 용서, 감사는 하는 사람의 뇌를 쉬게 하고 건강으로 회복시켜 준답니다. 굉장히 커다란 부담으로 용서를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누구를 위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뇌를 건강하게 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한 분이 고백하셨던 내용이 늘 생각이 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마음에 평안해 졌고, 가벼워졌다는 고백과 간증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용서받은 것을 생각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실수와 죄를 용서하시고, 뇌를 건강하게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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