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이란 고사성어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다는 말씀을 세차례나 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실 때 이제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착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처형을 영광을 받는 것으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영광이라는 말씀을 십자가로 고통을 받고, 희생되시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전혀 반대로 십자가는 영광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양 옆자리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는 본인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신 것이 자리를 얻기 전에 본인이 마시는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양 옆 자리는 채찍을 맞고 피를 흘리고 양손은 옆 나무에 묶이고, 발에는못이 박히는 아픔의 잔입니다. 실제의 십자가 형벌을 예상하지 못한 그들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 옆 자리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분명하시고, 책임을 지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말씀대로 예수님의 양 옆 자리는 제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것, 또는 자기의 권한이 아닌 것을 본인의 것처럼 말하는 것을 허풍 또는 사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 평가될 문제까지도 예수님께서는 빚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에 감동을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하자 제자들은 내심 큰 기대감을 가지면서 야고보의 형제들을 시기하였다고 합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인데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심문을 받으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모두 도망을 하였고, 죽음까지 함께 하겠다던 베드로 마져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실을 말씀하시는데도 오해를 하면서 서로 시기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동상이몽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맹인이 예수님에게 자기를 보게 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요청을 제자들이 제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둔 사람으로 그를 불러서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시든 모두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성경께서는 그란 예수님을 향해서 그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셔서 돌아가셨다고 소개합니다. 죄인을 위해 돌아가는 사람 전혀없습니다. 심지어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을 위해서는 아주 미미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죄인을 위해서는 죽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랑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맹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자기의 마음으로 받아 보십시다.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과 영혼에 초대하십시다.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가득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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