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금식이란 음식과 물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식은 예수님께서도 하셨고, 이전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에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하만의 공격을 받아서 페르시아에 있는 온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사흘 동안 금식했습니다. 그 이전엔 모세가 주님을 만나서 법궤를 받을 때 금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 동편 광야에서 경건의 집단 생활을 하던 에세네인, 침례 요한이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에세네인들은 금식을 주기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금식은 하나님을 긴급히 요청할 때 또는 매우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님을 찾아서 주님께 요청하거나 주님을 만나고자 할 때 하였던 경건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금식을 해야 하나 꼭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본인이 결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이런 경건이 금식이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을 이해하면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본문 첫 부분에서 요한의 제자들, 곧 침례 요한이겠죠? 그들이 바리새인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라고 나름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질문을 합니다. 금식이라는 근본 의도가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서 만나고 계시는데 그때에 왜 금식을 해야 하나?가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부가 신랑을 만나고 있는데 왜 금식을 해야 합니까? 라는 의미로 먼저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지 낡은 부대에 넣으면 터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을 잘 살펴 해야지 전통적으로 해 오던 좋은 것이라 하여도 상황에 맞게 하여야 한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그때에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금식을 하셨고, 왜 금식을 안 합니까? 라는 질문에 금식을 하지 마십시오. 라 대답하지 않으시고, 신랑을 빼앗겼을 때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긴급히 또는 중요하게 만나야 할 때 금식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와서 만나 주시는 그 때에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금식에 관한 말씀을 명쾌히 해 주신 그 다음의 내용도 매우 중요합니다. 야구로 말하면 일타수 이 안타를 때리신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여도 십이년 동안 멈추지 않는 자기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을 만지고 나았습니다. 그때는 예수님과 동행하던 사람들에게 일초가 중요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사람만 살리시지 않고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몰라서 그처럼 노심초사 긴박했습니다.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시간을 끄신 예수님의 동행은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비보를 들은 소녀의 아버지는 아마 속이 새까맣게 타기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소녀의 아버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여 보니 이미 곡군들이 울어 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죽음의 기운과 어두움이 회당장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생명과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자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어두움이 빛에게 밀려 갈 때 흔적은 있습니다. 그런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소녀의 아버지 회당장과 함께 죽어서 이미 관에 넣기 위하여 정돈하여 둔 소녀에게 가셔서 소녀을 향해서 달리다쿰, 소녀야, 내가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ㅎㅎㅎ, 그렇게 일어난 소녀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회당장에게 소녀를 안겨 주셨습니다. 죽은 소녀를 위하여 울려고 왔던 곡군들, 소녀를 살리기 위하여 어두운 죽음의 현장으로 오신 생명이며 빛이신 예수님을 비웃던 어둠의 세력들은 오고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빛이 오면 어둠이 흔적도 없어지듯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곳에는 소녀를 안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큰 감사를 드리는 회당장의 믿음과 기쁨만이 있었습니다. 믿음과 금식으로 주님을 만나서 생명과 빛을 얻는 새 생명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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