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복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있고, 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복을 자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복이 팔복입니다. 본문에서도 복을 언급합니다. 모두가 복이 있는 분이시길 축복합니다. 본문 5절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 네, 넓히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포함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복이 됨이 왜 그리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 때문에 위대한 왕이 되었다고 하면서 대상29:11절과 12절에서 그 하나님을 높이 칭송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 특히 좋아하시는 일들을 알려 줍니다. 억눌린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시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하여 주시고, 나그네를 지켜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끈다고 하십니다. 시인은 그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자기를 도우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좋기도 하지만 그 하나님은 정의를 펴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공의로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을 매일 부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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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셨는지요? 요한 계시록엔 일곱 번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려 주십니다. 오늘은 그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1:3절에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본문 7절에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곧 오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라."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있는 복은 여섯번째의 복입니다. 본문 7절에서는 읽고 듣는 사람이 빠져있지만 그동안 그 말씀들을 듣고 읽었으니 당연히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14:13절에 있습니다.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복이 있는 이유는 주님의 품 안에서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에서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데 부자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자네는 세상에서 많은 즐거움을 누렸지만 나사로는 고생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죠? 예수를 믿은 사람은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서 두번째의 죽음을 맞이 하지 않지만 예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고 심판의 책에 기록된 사람은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고 두번째의 죽음을 맞고 유황의 불바다로 던져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세번째의 복은 16:15절에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 자신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성화라고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죄 씻음을 받고, 회개하고 회개하고 성화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하게 된 사람 그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고 덮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전의 잘못과 죄악을 계속 간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이지만 그것을 씻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네번째의 복은 19:9절에서 어린 양의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 양의 신부라고 하십니다. 어린 양의 신부로서 흠과 티가 없이 교회를 순결하고 아름답게 이루도록 수고하고 그렇게 한 사람이 주님의 신부로 나타날 때 그 기쁨과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로 믿는 우리에게 어린 양의 신부로서 교회를 순결하고 아름답게 이루는 복을 주셨습니다. 교회를 순결하고 아름답게 이룬 진가는 주님의 신부가 되는 그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다섯번째의 복은 20:6절에 있는 말씀으로,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무섭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두번째의 사망과 관련이 없을 뿐아니라 이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 년 동안 주님과 함께 그 나라를 다스리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주님의 말씀과 주님을 위하여 목이 베인 사람, 곧 순교한 사람들 그리고 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는 거져가 없습니다 반드시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여섯번째는 첫번째이 복을 설명할 때 그렸습니다. 말씀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읽고 들었으면 지켜야 합니다.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시1편에도 있죠? 히4:12절에서는 살았고 능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을 뿐 아니라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곱번째의 복을 22:14에서 알려 주십니다. 생명 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에 들어가려고,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복이 있다. 주님의 나라와 의에 이르는 구원은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해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일곱번째에서는 생명 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고, 주님의 도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기의 겉옷을 깨끗이 빨아야 한다고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어두운 곳에 던져서 이를 갈게 한다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마22:13). 은혜받은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더 나은 것, 주님께서 수고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하신 더 큰 은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계시록의 말씀에서 주신 일곱 가지의 복들을 생각하고 묵상하심으로 더 깊고 넓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메리크리스 마스!! 바깥은 조용한 아침입니다. 조금 있으면 해도 뜨고 사람들도 집에서 나와 살아있는 세상을 알릴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영을 살려 주시고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고 입에선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방언이 풍성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성엔 해와 달이 더 이상 비추질 않아도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모든 것을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처음에 나왔던 말씀아닙니까? 사람들은 천체의 수많은 별들을 보고 연구하면서 걱정을 많이 합니다. 별들이 부딪히는 때가 올 것이다. 그래서 질서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햘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부딪히지 않고 질서와 조화 속에서 잘 유지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잘 유지하도록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별들이 부딪혀도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인 새 하늘과 새 땅를 도래시키실 것입니다. 그 새로운 세계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십니다.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수정 같이 흐르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셨답니다. 강 양쪽에는 행명 나무가 사시사철 달마다 열매를 맺고, 나뭇 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하는데 쓰인답니다. 달마다, 사시사철, 치료하는 잎사귀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용되는 말이 아닌 줄 압니다. 우리식의 표현이고 우리가 경험하고 아는 대로 표현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 의미는 그만큼 유용하고 좋다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본문에서는 요한 계시록에서 몇 번 반복한 말씀을 다시 사용합니다. 그들의 이마에 주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표현이고, 주님께서 만드셔서 왕이 되신 나라, 생명과 평화와 행복과 건강이 있는 그 나라엔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사람이 못들어가고,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본인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증함과 거짓말을 눈과 마음과 입에서 없애시고 멀리하십시오. 그것이 걸림돌과 방해가 되어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인류의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게 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은혜 안에서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높은 하늘에는 평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풍족히 흘러나오는 성탄절 이브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드디어 주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모습을 드러내고 예전의 땅과 바다와 하늘이 없어진 곳으로 내려옵니다. 그곳엔 새 예루살렘이 있고, 새 예루살렘엔 열 두문이 있고, 열 두문에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열 두 천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열 두문은 지금의 사람들이 보기도 힘든 보화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다이몬드 주먹 만한 것만 나타나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대문은 주먹이 아니라 완전 통으로된 보석이고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보화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하 그런 희귀묘묘한 곳에서 살게 됨을 생각하면 기대가 커지고 기쁨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런데 장례예식장에서 늘 듣던 대로 그곳에서는 주님께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습니다. 그렇게 행복을 주시는 주님께서 본인을 다시 자신을 앞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 주님께서 목마른 사람에게 샘물을 거져 마시라고 하십니다. 제가 경험한 은혜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는 눈에 보이는 무엇이 좋아서 갖게 되는 기쁨과 다릅니다. 진리를 하나하나 깨달을 때마다 마음을 씻어주고 영혼에 힘을 더하여 줍니다. 말씀드렸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은 그저그런 곳이 아니라 볼수록 신비하고 영롱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의 것이고 그것을 누리고 사니까요.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소망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이기는 주님의 백성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대제사장들이 보낸 부하들을 베드로가 칼로 저지를 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군대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면서 칼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군대가 갖고 있는 화력이 매우 강하고 큼을 알려 줍니다. 천사들은 공중에 있는 모든 새들에게 하나님의 큰 잔치가 있음을 알려 주면서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의 살을 먹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의 주님과 주님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답니다(19). 그런데 그 짐승이 붙잡혔고, 그리고 그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거짓 예언자들도 그 집승과 함께 붙잡혀서 산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 졌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서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답니다. 믿음의 사람을 핍박하며 괴롭시던 짐승이 주님과 그 군대를 대항해서 싸우지만 상대가 안 되는 것을 본문에서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은 그 날이 오기까지 신앙인들이 참고 인내해야 함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힘이 없고 연약해서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띃과 계획, 그리고 주님의 시간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핍박을 받아도 그냥 받지 않고 성령과 사랑을 충만하게 하셔서 핍박을 받는 중에서도 구원할 자들을 구원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주님의 모습으로 장성하게 하심을 아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성령충만함과 사랑과 힘으로 모든 환난을 겪으며 장성하시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짐승과 그 추종자들, 믿음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방해하던 사람들은 반드시 패배하고 유황과 불바다가 끓는 그곳으로 던져지는 날이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시고 소망으로 인내하는 능력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세상과 권력을 상징하는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이께서 왕권을 잡으시고 어린 양의 혼인 날이 이르렀음을 알려 줍니다. 신부는 빛나고 개끗한 옷을 입이시는데 그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라고 합니다. 성도들의 의로운 행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와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어린 양 예수님을 닮고자 한 수고가 어린 양의 잔치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선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게 됩니다.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며 참고 견딘 믿음의 수고가 아름답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소망이 있으므로 참고 견디며 수고합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소망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기쁨으로 믿음의 일들을 잘 감당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세상의 왕들은 울며 가슴을 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시가 당하는 재앙을 고문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상인들 역시 슬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상인들은 도시가 당하는 고문을 두려워하면서 울며 어떻게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냐면서 슬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그래서 보험을 사지 않았냐고 하겠습니다. 보험회사까지 모두 불타서 없어지므로 어느 곳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몸저 누울 정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 도시를 심판하셨다고 하면서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생활이 어디이에 있는 지를 점검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되 있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즐기는 정도라면 잃고 타고 없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그다지 슬퍼하거나 애석해 하며 몸저 누울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에 올인을 해서 세상의 것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사람이라면 몸저 누울 정도가 아니라 죽음까지도 불사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불의한 세상, 불의한 재물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지키고 행하므로 불의한 이 세상에서도 여유롭고 넉넉하게 사시며 주님의 심판과 그 나라가 올 때 기쁨으로 맞이하는 지혜로운 신자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세상을 불의한 세상,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본문에 나옵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이고, 결국 심판받아서 망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그런 생각을 갖고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는 일이고, 또 하나는 불의한 세상의 불의한 재물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받을 사람을 구원하는데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예수님이셨기에 불의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고, 불의한 재물을 사랑하는 것 역시 같은 정도였습니다. 오늘의 본문과 내일의 본문도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 망할지를 보여 주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을유혹하는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재물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라는 마음으로 수고하는 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요한 사도는 하늘에서 또 다른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을 하나 보았는데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가지고 있더랍니다. 그것이 마지막 재난이랍니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인데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짐승 우상과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서 있었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불렀답니다. 유리 바다인데 불로 되어 있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두려움 그 자체이지요? 그리고 다시 본 것이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소인 장막 성전이 열리고 그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들고 나온 것이랍니다. 그리고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채운 대접 일곱 개를 그 일곱 천사에게 주었답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과 재앙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참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요한 사도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도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 어머어마한 놀랍고 두려운 일들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것을 보아서도 그렇고 그 반대 완전한 생명과 평화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믿음을 잘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예수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십니다. 금면류관을 쓰고 계셨으나 손에는 날이 선 낫을 들고 계셨답니다. 예수님을 보좌하는 천사도 역시 낫을 들고 있었답니다. 다른 천사를 불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졌답니다. 천사들이 포도를 거두어서 진노의 포도주를 만들기 위하여 포두를 술틀에 던져서 밟았는데 거기에서 피가 흘러 나왔답니다. 공교롭게 오늘 신문에 뉴질랜드에서 한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그곳에 왔던 관광객들이 사망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헬리콥터를 운행하던 파일롯은 그곳이 마치 아마겟돈 같은 아수라장이었더라고 합니다. 포도가 익었답니다. 그 날이 다가 왔을 때 사정없이 포도를 따서 술틀에 넣고 짓밟는 것처럼 밟을 것입니다. 구원의 주님이시던 예수님도 심판의 주로 오시기 때문에 날이 선 낫을 들고 계시고, 예수님을 돕는 천사도 낫을 들고 있습니다. 거기에 불로 심판하는 천사는 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낫으로 불로 여러 가지로 심판을 할 것입니다. 고전 3장에서도 심판하는 도구와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것저것 세상 살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준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심판 이후에 있을 새로운 세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곳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뜨거운 불 그리고 다시 이루어져서 던져지게 될 불바다로 갈 것을 준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던 나사로처럼 낙원에 있다가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새롭게 시작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될 복의 나라를 준비하시겠습니까? 눈 앞의 작은 일들에 마음과 믿음을 빼앗기지 않고 훈련과 연단으로 생각해서 경건을 연마했다가 주님이 다스리시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지혜와 믿음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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