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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삼손의 첫번째 일(삿 14:1~20)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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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을 생각할 때 드릴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처녀는 드릴라가 아니라 딤나라는 곳에 사는 블레셋 처녀였습니다. 사사기의 기자는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힘이 센 삼손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다(4절)고 합니다. 삼손이 딤나에 있는 처녀를 보러 가다가 어린 사자가 나타나서 공격하였을 때 오히려 삼손이 사자를 찢어서 죽였습니다. 어린 사자라고 하지만 삼손은 그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그 길을 갈 일이 있어서 가고 있는데 죽은 사자에게 벌 떼가 모여있었고, 그곳에 벌들의 꿀이 고여 있었습니다.  블레셋 처녀와의 혼인을 앞두고 그 고장의 풍습을 따라서 잔치를 하는데 블레셋 총각들이 삼십 명이나 왔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마치는 내기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죽은 사자에 고인 꿀과 사자를 마치게 하는 문제였습니다. 블레셋 총각들이 딤나의 처녀를 협박하여서 답을 알아 냅니다. 그 일로 삼손은 아스글론 주님 서른 명을 죽여서 내기를 걸었던 옷을 준비해서 갔다 주었습니다. 물론 삼손과 딤나라는 곳의 블레셋 처녀와는 혼인이 깨어졌다(20절)고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는 삼손의 힘과 장난기를 사용하셔서 블레셋을 징계하셨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삼손이라는 자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삼손이라는 젊은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첫번째 등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깨닫습니다. 본인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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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계획 속에서 관심과 사랑 속에서 태어났습니다(삿 13:15~25)

1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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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본문을 포함해서 본문 이전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태어나는 것을 많이 말씀하십니다. 그를 나실인이라고 하라. 그는 주님께 바쳐진 사람이다. 주님의 천사가 몇 차례 마노아 내외를 만나 십니다. 마노아가 주님의 천사에게 제물을 바치려하자 자기는 제물을 받을 존재가 아니므로 제물을 주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제대로 된 천사입니다. 종은 종이고, 심부름꾼은 심부름꾼이어야 합니다. 자리를 잘못 앉는 것은 그가 잘못임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임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을 장장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각각이지만 그들은 웃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웃었었는데 그것으로 사라와 하나님 간에 진실 게임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본문에서 소개하는 삼손입니다. 삼손을 향해서는 나실인이라고 하시면서 포도주와 관련된 말씀 그리고 머리를 잘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다른 사람은 침례 요한입니다. 사라랴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의를 품었다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말을 못하는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아기는 예수님이십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였지만 성령께서 임신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그냥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없이 임신한 마리아와 헤어지려는 요셉에게 주님의 천사가 가셔서 성령으로 임신한 것임을 알려 주셨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태어나기 전부터 알려 주지 않으시고 태어나면서부터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역시 이삭의 아들들인 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태어나는 과정을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상하신 계획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만 설명을 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몇 몇 특징적인 분들의 출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읽으면서 본인에 대하여서도 주님께서 계획을 가지셨음을 깨닫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렇게 되면 허투로 살지도 않고, 방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말합시다. 주님의 특별하신 계획 속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다 고. 자신은 그만큼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시편 기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자신임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또 다른 사람도 역시 주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임을 알아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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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오시는 하나님(삿 1:1~14)

1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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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났다는 분들이 이따금 있으십니다. 사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내용을 본문에서 보여 줍니다. 첫째,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데도 사람에게는 큰 두려움을 주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모두 죽게 됨을 고백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무서우십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영적으로 질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두렵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두렵다 생각이 됩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려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거나 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우신 존재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관대십니다. 이랫다 저랫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찾아와셨습니다.  몇 가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마노아는 기도를 드려서 천사를 뵙고자 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오셨을 때 바로 그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똑 같은 메시지를 마노아에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관되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이랫다 저랫다 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만나뵈었거나 만나게 된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을 자랑하거나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용할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쁨이고 찬양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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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일까요?(삿 12:1~15)

1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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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앗 출신의 사사가 입다가 암몬과 싸워서 물리칩니다. 그런데 다른 복병을 만납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입다와 입다의 가족을 불살라 태워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입다가 암몬과 싸울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됩니까? 자신들을 위해 싸워서 승리한 군대와 장군에게 시원한 물과 따뜻한 말을 하지는 못할 망정 장군과 장군의 집을 불태워서 죽이겠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에브라임의 이런 항의는 한 번이 아닙니다. 지난 번 기드온이 미디안의 주력 군대와 싸움을 한 후에도 그렇게 거칠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여전히 미디안과 싸워야 하는 기드온의 입장에서 거칠게 항의를 하는 에브라임 지파에 대하여 그들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번엔 도가 지나치게 장군과 장군의 집을 불태워서 죽이겠다며 군대까지 형성해서 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자기가 차지하겠다는 에브라임 지파의 잘못된 생각과 주장은 누가 보아도 잘못입니다. 그리고 항의하고 비난하는 때가 그들이 전쟁 중 또는 전쟁 후 매우 힘들고 어려울 때입니다.  도와야 할 때 오히려 자기들을 위해 싸우는 장군과 병사에게 창과 칼을 들이대는 행위를 선하다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비열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입다를 통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본문에서 입다와 에브라임의 전쟁 후에 여러 사사들을 언급합니다. 주로 소개하는 내용이 자녀들을 많이 둔 것을 알려 줍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성경은 이따금씩 사람들이 죽는 것에 언급합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도 죽고 평범했던 사람도 죽습니다. 시편 49편, 전 3장 그리고 고전 15장, 여러 곳에서 죽음을 알려 줍니다. 히 9:27절에서는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이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계 20장에서는 책이 두 권이 있는데 한 권은 생명의 책이고, 한 권은 심판의 책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될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믿을 기회(고후 6장)를 주셨을 때 믿고, 구원받아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 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죽으면서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가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는 그 한 마디 말로 예수님에게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라는 복을 얻는 강도를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고 귀합니다. 예수 믿으시고, 구원받아서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복락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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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의 아들 사사 입다의 이야기(삿 11:1~40)

1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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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홍길동이란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홍길동은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였던 사람입니다. 홍길동처럼 입다 역시 자라나서 정부인의 아들들에게 쫓겨납니다. 그랬던 사람인데 이스라엘이 힘들어지자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한국과 정서가 다르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장로들과 합의를 하고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 온 암몬을 격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의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며 도우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한 입다가 한 가지 실수를 합니다. 자기가 전쟁을 이기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자기에게 환영 인사를 하는 사람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입다를 가장 먼저 환영한 사람은 입다의 무남독녀 딸이었습니다. 이미 주님께 헌신을 하였던 터라 가슴이 메어지지만 그것을 안 딸은 아버지를 위하여 죽겠다 하고 대신 처녀로서 한을 풀기 위하여 두 달의 여유를 달라고 합니다. 그 시간에 산에 올라가서 울겠다고 한 후에 죽습니다.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헌신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는 것과 주님께 행한 헌신은 그것이 무엇이든 지켜야 함을 입다와 그의 딸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창녀의 아들이든 누구의 아들이든 모두 평등하게 대하신다는 것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심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서약하는 것은 그 대상이 주님이든 사람이든 매우 조심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 때는 좋아라 하면서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결정한 기간을 지키지 않고 고무신짝 버리듯 떠나는 사람들은 본문의 말씀을 꼭 경청해야 합니다. 주님께 사랑받고,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므로 언제나 신중하게 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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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라(삿 10:1~18)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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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가 오면 주님을 찾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너희들이 선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라. '맞는 말씀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같은 말씀을 몇 차례 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그리고 평상 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악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찾지도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들이 어렵고 힘들어서 주님을 부르짖어도 그들을 외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일 어렵고 후회할 때가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일 것입니다. 그때는 호회하여도 늦었습니다. 자신이 행한 것은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좌와 우의 흉악 범 중 한 죄인은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반성이 섞인 표현을 하면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해 낙원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구원의 주이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에 후회를 하면서도 회개를 잘 할까요? 한국에서는 어제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권좌에서 물러난 뒤 백담사란 곳으로 쫓겨가기도 했고, 법정에서 무기징역도 선고받고, 옥살이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후회를 하였을까요? 후회를 하였다면 더 꽉꽉눌르고 완전히 자기의 세상으로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혼자서 권력을 독차지 하지 못했고 또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노태우라는 사람과 함께 짐을 지려고 하였습니다. 옆으로 비껴갈 생각은 하면서도 왜 반성이나 사과는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에게 악인의 요소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한국 뉴스 중에 고 김수환의 시신을 아프리카의 한 나라 성당으로 모시고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왜 이리저리 옮길까? 사람은 생령이 있을 때까지만 입니다. 죽은 후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만 남았습니다. 그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썩으면 그만인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어느 사람은 시신을 그리워하며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두환과 같은 사람은 증오하고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말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 6:2절 후반부의 말씀에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구원받을 은혜가 있을 때 잘 하는 지혜와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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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게 하시는 주님(삿 9:22~57)

11/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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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목숨을 죽이고 왕에 등극한 아비멜렉의 시작은 주님께서 인정하시거나 좋아하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세겜 사람들이 후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 사이를 소원하게 하시고, 세겜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새로운 인물이 세겜에 등장을 합니다. 에벳의 아들 가일이란 사람인데 그는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야심이 있었겠죠?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과 벌어진 틈을 알게 된 야일은 세겜을 부추켜서 아비멜렉과 그의 심복 스불을 세겜에게서 떼내고 본인이 세겜의 지도자가 됩니다. 이 정보를 안 스불이 아비멜렉과 함께 전술을 짜서 야일을 공격하여서 세겜을 격퇴시킵니다. 격퇴에서 이긴 아비멜렉은 의기가 충천해서 더 큰 공격을 하며 승리를 하였습니다. 승전에 승전을 하는 아비멜렉의 공격을 받은 세겜의 군대가 그의 공격을 피하여서 한 성으로 도피를 합니다. 그렇게 되자 아비멜렉은 성안의 군대를 끌어내기 위하여 성에 불을 붙이려고 성벽 가까이로 갔습니다. 그것을 본 한 여인이 위에서 아비멜렉을 향해 멧돌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아비멜렉의 머리를 정확히 맞추고 그의 두개골이 깨졌습니다. 자기의 무기를 맡은 병사에게 자기를 빨리 죽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인의 멧돌에 맞아 죽은 오명을 쓰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하여서 젊은 병사는 아비멜렉을 그의 칼로 찔러서 죽였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주님께서 자기의 형제 칠십 명을 죽인 죄의 값을 갚아 주셨다고 합니다. 승전에 승전을 하던 아비멜렉이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꿈을 꾸었을까요? 승전에 승전을 하는 것은 마치 낚시의 베잍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 말로는 덫밥이라고 합니까? 저는 낚시를 잘 몰라서 한국 용어는 잘 모릅니다. 물고기를 유인하는 낚시에 걸린 밥입니다. 억울함을 당한 사람은 아프고 쓰린 가슴을 안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하여도 주님께서 아시고 갚아 주시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보고 계시다가 잘 되게 하시는 듯 합니다. 그러나 잘 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초와 처음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보내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하라시며 보내셨다면 조급할 이유도 없고 주위를 사납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라 하시지 않습니다. 잘 되어도 잘 되는 것임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 되어도 잘 되는 것이 아니고, 잘 되는 것이 오히려 징벌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히 9:27절 말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고, 기회 있을 때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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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 산에서 울려퍼진 말씀(삿 9:7~21)

11/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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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요담 설화라고도 합니다. 요담은 기드온의 아들 중 에비멜렉이 자기의 형제 70명을 건달들을 시켜서 모두 죽였는데 그 중에서 살아남은 아들입니다. 그가 세겜 사람들이 에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듣고, 그림산에 올라가서 선포한 말씀입니다. 요담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먼저 가정의 신앙과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배웁니다. 기드온의 가정은 우상의 가정이었습니다. 우상은 질서와 평화의 하나님과 달리 혼란과 폭력의 문화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로부터 시작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종과 사사로서 활동한 기드온까지 이어졌고 그 문화와 영향이 아들에게까지 이루어져서 아들들 간에 살을 하는 참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요즈음 이혼을 많이하는 분위기라고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좋지 않은 문화입니다. 이혼을 할 때 자녀들과 자기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본문을 통해서 깨달으며 배운 것은 사람들에게 천직의식이 없어지고 돈을 따라 살게 되었다라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왕의 역할은 본인의 직업이 아니라 부름을 받고, 잠깐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 일이 직업이 되면 나라까지 잘못됩니다. 본문에서 올리브 나무나 무화과 나무 그리고 포도나무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것으로 주님과 백성들을 섬긴다고 합니다. 왕이라는 제도나 대통령의 제도는 잠깐 자신들이 하던 본연의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보냄을 받아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봉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오해해서 권력을 갖고 탐익하고 다른 사람을 강탈하는 것은 큰 실수이고, 죄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왕, 특히 대통령은 섬기는 일입니다.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지적하는 세겜 사람들이나 에비멜렉이나 모두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봉사직의 사람들을 세울 때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백성들에게 주십니다. 백성들은 권한을 투표로 행사하는데 그 권한을 주님께 맡기고 해야 합니다. 성서에서는 제비를 뽑기라는 제도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제비뽑기를 하든 투표를 하든 주님께 맡기고 해야지 사람들이 세운 계획으로 하는 것은 사람들을 분열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입니다. 세운 다음에는 협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세우고 나서 깎아내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겜 사람들과 에비멜렉의 결과는 다른 형제들을 살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을 요담을 통해서 하고 계십니다. 지도자를 뽑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나 계획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도 운영위원들을 뽑았습니다. 선택된 사람들 그리고 투표한 우리 모두 주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교회가 부흥하고 부흥하는 교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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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효과(삿 9:1~6)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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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름대로 거의 됩니다. 야곱은 뒷금치를 잡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랬던 사람인데 주님의 천사가 야곱과 씨름을 한 후에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개명하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이 이름대로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곳이 야곱이 열두 아들들을 축복한 곳입니다. 한국 사람도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름대로 될 수 있고, 이름이 중요함을 알고 난 후에 본인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본인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또는 다른 누군가가 지어주신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주신 영감을 받아서 이름을 새로 짓고 싶으십니까? 저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미국에 오면서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헬더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미국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언젠가 브라질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헬더라는 이름은 마치 한국에서 철수와 같이 흔한 이름이라고 하였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헬더라는 이름이 많답니다. 특별한 뜻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 이름을 사용한 사람 중에 '돔 헬더 까마라' 가톨릭 성직자가 계셨습니다. 이 분은 브라질 동북부에 사신 주교이셨습니다. 평생 평화와 복음을 위해서 실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 이후 존경하는 분이 많이 있지만 제가 사는 동안 그 신부님을 존경해서 미국에 온 이후에 미국 사람과 통성명하고 지내야 하는데 누구를 선택할까 하다가 돔 헬더 까마라 신부님을 생각해서 헬더라고 지었습니다. 돔을 미국 식으로 발음하면 담해서 약간은 둔하고 어리석은 뜻이 되고, 까마라 하면 한국 느낌으로 까마귀가 연상이 되어서 헬더라고하였습니다. 저는 이름처럼 예수님과 까마라 신부님을 닮아서 평화와 복음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아비멜렉이란 이름이 나옵니다. 왕의 아버지 또는 아버지가 왕인 아들이란 뜻입니다. 기드온의 칠십 명 아들 중에서 내일 나오는 요담과 아비멜렉이란 이름이 나옵니다. 아비멜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세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그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꺼림직하였는지 주민들에게 후원금을 받은 돈으로 불량배들을 고용하여서 나머지 형제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 기드온의 막내 아들 요담입니다. 이름대로만 했어도 아버지를 이어서 그냥 사사가 되었을 텐데 형제들을 죽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해서 봉헌하고자 했던 다윗의 정성을 거절하신 이유가 그가 손에 피를 뭇혔기 때문입니다. 주신 것을 감사하며 유지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어떤 변명과 이유가 있어도 잘못입니다. 살인입니다. 왕이고, 사사라 할지라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주신 현상을 유지하고 감사하는 지혜로운 사람, 능력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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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공과(삿 8:22~34)

1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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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장점과 단점이라는 말씀을 어제도 드렸는데 오늘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기드온의 공이라 하면 겸손입니다. 그가 미디안을 물리치고 미디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을 때 백성들이 그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본인이 하나님을 만나서 겸손하게 표현하였던 그대로 본인은 백성들을 다스릴 인물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맞기신 소임을 하다보니 정말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이 분명하였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신기하게 기적같은 일이 자기 앞에서 벌어져서 졸지에 자기가 대 인기스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기드온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왠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기가 한 듯 행세를 하기도 하고, 특히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우셔서 일이 잘되면 하나님께서 포지션도 주셨다면서 물타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잘 됩니까? 잘 안 됩니다. 그러다가 낙오하여서 크게 다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위치와 한계를 알고 하지 않을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겸손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겸손한 기드온인데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의 물고를 텄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들 중에서 귀고리를 하나씩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귀고리는 한국의 부적과 같은 우상 덩어리입니다. 그 우상은 기드온을 망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기드온이 우상을 받아서 챙기었으므로 다른 백성들까지도 우상을 간직하고 섬기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생애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집안의 분위기와 문화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우상을 파는 사람이었고, 우상의 제단을 짓고 우상을 섬기는데 앞장을 섰던 사라밉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우상을 부쉈다 하여도 그의 마음에 우상을 간직하고 섬기는 것을 죄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생활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깨끗이 정리하지 않으면 그것이 본인을 부패하게 하고 자기로 인하여 가정과 친척과 마을과 민족이 죄를 짓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의 은혜를 알아서 주님만 섬기고, 자기에게 있는 잘못된 신앙을 뿌리채 뽑아서 완전히 불태워서 없애는 단호한 신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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