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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시인의 고백(시33:1~22)

10/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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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이따금씩 하나님을 고백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고백을 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물론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본인에게도 그 이상의 믿음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도 매우 만족해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집에 개가 두 마리 있습니다. 개들은 매일 매 순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사람과 여러 면에서 다른 개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개를 돌보는 사람은 더 신비롭습니다. 지구에서 사는사람을 비롯한 모든 짐승들을 포함하여 지구, 달, 태양, 천체 모든 것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성서의 기자들은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힘, 군대, 무기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도 없고 더더욱 대항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선택한 백성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주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정의롭고 자비하시고, 풍성에 끝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버지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현실에서도 부족이 없고,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물론 기분과 마음은 그 이상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하십니다. 이런 모든 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가장 큰 복이고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본 글을 읽으시는 분이 신앙이시겠죠? 나름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여 보시길 권면합니다. 큰 은혜가 있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본인을 향하여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더 큰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을 실제에서 경험하며 복되게 살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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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의 얼굴이 밝은 이유(시32:1~11)

10/2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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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람들은 관상이라고 하여서 사람들의 얼굴을 잘 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기독인들을 찾으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얼굴이 잘 생겼던지 그렇지 않던지 기독인의 얼굴을 밝습니다. 물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그런 구분이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밝고 어둡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기독인이 죄가 없는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독인은 기독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죄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죄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조상에게로부터 물려 받은 죄, 없어질 수 없는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없어지지 않는 죄를 갚아 주시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갚아 주실 수 있는가? 없는가?는 채권자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최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중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모두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자신을 매우 가볍게 느끼게 됩니다. 흔히 새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두번째로, 본문에 나와 있고, 인류의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개인들이 짓는 죄들이 있습니다. 그런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발을 씻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발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네, 발을 씻으면 시원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죄를 씻어도 시원함을 느끼고 죄로부터 벗어나면 훤씬 가벼움을 느끼게 됩니다. 죄가 사람에게 주는 중압감은 매우 무겁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그 중압감에서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지은 죄로부터 지은 죄도 용서를 받고 가볍게 살겨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늘 주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용서를 받는 그런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독인은 마음이 가볍고 편합니다. 물론 그런 은혜를 입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도 하고, 용서도 빌면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으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무겁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교도소란 곳은 잘못을 교정받는 곳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때 용서하시고, 바른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늘 가볍고 평안하게 살게 하십니다. 죄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가볍고 평안하게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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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받은 은혜를 자신도 받을 수 있을까(시31:1~24)

10/2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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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받았던 위기에서 주님을 찾고 불러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다고 간증을 합니다. 다윗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 성서 사무엘 하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왕으로 기름을 부은 다음에 왕이 되어서 봉직을 할 때까지 많은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서 어려움을 겪고 사울의 핍박을 피하여서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다가 독안의 든 쥐의 신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다윗을 살려 주셨는데 그런 위기를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손에 땀이 나게 하는 위험스런 일이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이 찍힌 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가 도움을 준 신 광야의 사람들이 오히려 다윗이 은신한 곳을 사울 왕에게 알려서 사울 왕이 회심의 미소를 띠면서 다윗을 추격해 옵니다. 다윗이 은신했던 곳은 퇴로가 없던 곳이어서 어느 곳으로 피할 곳이 없어서 독안의 든 쥐처럼 그냥 잡혀야 했습니다. 당연히 예상했던 시간에 사울 왕과 추격 군대가 나타나서 다윗과 일행을 공격하고 잡아야 했는데 사방이 조용했습니다. 다윗이 정찰자들과 함께 사울 왕의 동태를 파악하니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있었습니다. 왕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의 호위 장군은 물론이고 모든 병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위기를 겪은 다윗이 나중에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항해서 정변을 일으켜서 아버지를 공격합니다. 그때 역시 다윗은 꼼짝 없이 앉아서 변을 당해야 했지만 다윗의 친구 후새의 말도되지 않는 전략을 압살롬이 받아들이게 하셔서 정변을 실패케 하시고 다윗이 끝까지 왕이 되고,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왕을 이어가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품 안에서 평안히 숨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하지 못할 짓을 하여서 주님께 죄의 징계를 받게 하셨지만 그래도 주님께서는 다윗을 늘 보호하여 주셨고 다윗을 생각할 때 주님의 은혜와 보호를 늘 생각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들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무엇이 마음에 드셨을까요? 한번 고민하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되면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은 물론이고 그의 생을 맞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그렇게 실천하심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를 받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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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목소리(시29:1~11)

10/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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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목소리는 어떠할까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십계명 두 번째는 주님의 형상을 어느 곳에든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저는 우상을 숭배하는 맥락에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어떻게 알려 지셨던지 그것이 주님의 모든 것이 아님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라고 이해합니다. 가령 주님께서 한국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고 한국 말로 말씀하셨다 하셔도 그것이 주님의 모든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시는 주님의 모습이거나 말로 이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은 자신에게만 알려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지 말라는 말씀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 관점과 맥락에서 본문을 이해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의 음성을 매우 크고 강하고 두려운 소리로 소개를 하는데 반대로 엘리야가 아합의 아내 이세벨에게 겁을 먹고 주님께 나갔을 때는 조용한 소리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절대시 하는 것은 주님을 특정한 무엇으로 규정하려는 잘못임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자신이 경험한 주님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나 그것을 모든 사람도 그렇게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을 어느 하나로 특정하려는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을 이해합니다. 시29편을 기록한 기자에게 주님의 음성은 힘이 있고, 위엄이 넘쳤으며 불꽃이 튀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론 산을 들송아지 처럼 날 뛰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지진으로 땅을 새롭게 조정하신다는 말슴이시겠죠. 주님의 목소리는 광야를 흔드시고, 광야를 뒤 흔단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지진 속에서 그리고 지진 전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 그 음성을 듣고 영광이라고 소리를 쳤답니다. 그런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평화를 복으로 주신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주님을 어떻게 경험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따는 백성에게 주시는 복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자신의 무엇을 경험케 하셔서 겁을 주거나 실망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힘과 평화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주님을 경험하므로 담대하고 너그럽고 주님의 사람답게 사는 능력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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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고백할 말씀(시26:1~12)

10/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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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시인은 고백합니다. 자신은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바라 보면서 주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다. 헛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음흉한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악인들의 모임에서 그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였다. 손을 씻어 자신의 무죄함을 드러내었다. 주님께서 계시는 집을 사랑한다. 깨끗하게 살려고 힘쓰고 애를 쓰고 있다.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네, 이런 내용들을 주님께서 들으시면 기특해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은 주님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하였을 때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하늘 계신 아버지시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하는 것을 감사해야지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분명 주님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상으로 갚아주시며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오늘 애랬다가 내일 저럽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과 사랑과 은혜에 뿌리가 깊고 든든하게 내려져서 흔들림없이 주님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기쁨과 헌신이 넘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늘 아멘이 넘치며 주님을 안팎으로 고백하며 살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고백함처럼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고, 능력이 없는 자 같으나 능력이 있고 가벼운 자 같으나 무겁고 어리석은 자 같으나 지혜가 가득한 그런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 때문에 일생이 깨끗하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늘 주님의 향기로 가득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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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는 사람(시15:1~5)

10/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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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장막이란 주님께서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계신 곳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이 얼굴을 그토록 뵙고자 했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뵐 수 있는 방법과 그 도구를 주셨습니다. 성막을 주셨고, 성막에서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흠과 티가 없으셔서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죄를 씻어주시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 주셔서 주님의 전을 담대하게 왕래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몸이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장막에 살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뵙는 길은 손과 발을 씻는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맥락과 시각에서 본문을 읽으면 많은 도움을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주님께서 거하시는 장막에 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주셨다고 하여도 손과 발이 더러운 사람은 장막에 거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인 주님의 얼굴을 뵙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여러 가지 예로써 설명하여 줍니다. 깨끗한 사람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그러니 이런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겠죠? 그리고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사람을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는 사람, 무죄한 사람을 해칠까봐 뇌물ㅇ르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한 가지 해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으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누가 그렇게 살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면서 사는 사랑입니다. 세상 일은 물론이고, 영의 세계에서도 든든하고 의연하며 주님만을 바라고 한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은 바로 손과 발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손과 발이 더러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피와 말씀으로 늘 깨끗이 회개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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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말이 없습니다(고후12:14~21)

10/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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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말이 없다는 말은 한국 사람들 거의가 아는 말입니다.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한 당시의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한 말입니다. 사람은 잘하면 시기하고 못하면 험담하고 비난합니다.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에게서부터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 그리고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를 하는 모세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불평과 원망을 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럴 때마다 징계를 하셔서 그런 무섭고 끔찍한 것을 보고서도 중지를 못했던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혁혁한 작전 수행으로 한국을 공산군으로부터 회복한 맥아더 장군도 노병은 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주신 바울의 말씀을 읽으면서 맥아더 장군이 생각났습니다. 이러면 이래서, 저러면 저래서 은혜가 없으면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스의 참회록에 일년에 자신의 잘못된 습관 한 가지만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이 하루가 아니라고 한 달이 아닙니다. 일 년에 한 가지만이라도 고치면 좋겠다는 교회 교부의 고백을 듣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회 교부 중에서도 어거스틴은 매우 유명하고 훌륭한 교부입니다.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원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이런 마음이 사역자나 목회자에게 있으면 은혜가 안 됩니다. 이는 마치 더러운 그릇으로 맛나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받아 먹겠다는 시도와 같습니다. 더러운 그릇에 그런 음식을 주겠습니까? 안 줍니다. 씻고 오라고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거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뵐 수 없다고 하셨고,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은혜를 받고, 사역자, 목회자의 무엇이든 이해하고 동정하면서 협조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원로 목사님께서 같은 사람인데 목사에게 천사가 될 때가 있고, 사탄과 같이 행동하는 때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은혜를 받는가? 은혜가 없는가에 따라서 다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피가 자기를 채우고 그 은혜로 세상을 보면 하늘 나라로 보입니다. 무엇이든 이해가 되고 감사가 됩니다. 돕고 싶고 동정이 가고 이해가 됩니다. 자기에게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자기를 모함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과 교회를 향해 자기를 설명하는 것은 변명처럼 들리는 비참함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노병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병은 죽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최선을 다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오늘도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함께 협력하고 위로하면서 주님의 교회와 나라에 큰 일꾼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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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로의 입신(고후12:1~10)

10/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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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바울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늘 나라로 이끌려서 올라갔다 온 것을 소개합니다. 하늘 나라로 갔다가 온 것을 입신이라고 합니다. 하늘 나라로 이끌려 갔다 온 것은 바울 만이 아니라 구약에서는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주님의 종들이 있고, 신약에서는 사도 요한이 입신을 해서 하늘 나라를 경험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늘 나라를 삼층 천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늘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공기가 있고, 새가 날라 다니는 하늘 그 위에 별들이 있는 하늘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층 천이라고 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게시는 곳을 이끌려서 갔다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제일 자세하고 많이 소개합니다. 저도 오래 전에 그런 경험을 하였지만 사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자세하고 소상하게 보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두 가지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바울도 그랬고 이사야와 같이 입신을 해서 하늘 나라를 경험한 사람들도 자신들이 경험한 것이 모두가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의 경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입신과 그들의 간증이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늘 나라는 분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하늘 나라만이 아니라 지옥까지 있다고 소개를 합니다. 지옥에 대해서 불바다란 표현을 하고 그곳엔 못된 것들이 모두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그런 놀라운 것을 경험한 바울은 또 다른 것을 고백하며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경험한 바울인데도 몸에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가시는 목회나 사역을 할 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불편할 수도 있고, 능력의 하늘나라를 소개하면서 본인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본인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을 온전하고 확실하게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그런 요청과 도전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스스로를 구원하여 보시오! 그런 한계가 있어도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도 하고 훈련과 사역도 받았고 하늘 나라도 갔다왔는데도 가시만은 해결하여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 두 가지를 알려 줍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함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사역을 못하였는가?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가장 왕성하게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였는데 바울은 내가 이렇게 하였습니다. 라는 간증을 하지 않았고, 나의 나 됨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였습니다. 이 말씀은 가시와 같은 해결할 수 없는 약점이 자신을 겸손케 하시고, 그런 자기를 능력으로 살게 하시는 주님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입신이나 방언이 자랑이 아니고 인내하게 하는 믿음, 사역하게 하는 믿음, 죽으나 사나 주님의 것으로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게 하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그리고 매 순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살며 주님의 인도를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 모두 그리고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들은 오늘 이 순간 믿음으로 감사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주셨든지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을 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들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이거나 빠지지 않고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매일 믿음의 승리를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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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랑을 하십니까?(고후11:16~33)

10/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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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랑을 하지 않아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는 듯 합니다. 구약 예레미야에서도 그런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였고, 본문에서 바울도 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본인을 증언해 주는 요인들을 말씀하실 때 심지어는 본인의 길을 열기 위해 왔다는 세례 요한까지도 증언자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성령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자로 삼으십니다. 사람을 삼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 한 두 가지가 있지만 예수님의 증언자가 되었다는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있고, 그 자랑이 제자들 사이나 사람들 사이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본인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도 자랑은 육체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목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지적하는 자랑은 주로 사역자들이 자랑하는 것들인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자기가 유대인, 히브리인이라는 출신 성분이니까요. 목회자인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장로교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은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이고 저를 주님의 종이 되게 하신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꼬집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목회자도 그런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면 복음에 능력이 나타납니까? 복음을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라는 마음을 가져도 그것도 세상으로 오고, 세상으로 빠지게 됩니다. 복음 스스로에 능력이 있으므로 세상적인 것으로 섞으려는 것은 교묘한 사탄의 전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나타내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수고와 노력과 열정을 자랑한답니다. 바울이 지적한 것을 보면 사역을 하면서 받은 고난입니다. 왜 이런 것을 자랑할까요?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을 알려야 하는데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은 이단들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의 사역자라는 사람들이 이단의 길을 좋아합니다. 자랑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자랑하려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겠으면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하였고,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자랑을 왜 할까요? 주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놀랍게도 자기를 자랑하려는 사람일수록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좋은 점을 자랑하면 다른 사람이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이므로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자랑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말씀한다고 이해합니다. 자랑은 어린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랑을 하면서 기분이 좋게 느낀다면 여전히 주님의 은혜 안에 있지 못한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랑을 하고 싶을 때, 자기도 모르게 자랑을 하게 될 때 회개하여야 하고, 자랑하는 대신 주님을 기뻐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마음과 입술에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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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들을 대하는 마음(고후8:16~24)

10/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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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을 레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제사장들도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땅을 분배하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사도와 함께 동역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 마가, 디도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 후로 구약에서처럼 선지 동산에서 훈련을 받고 목회지나 사역지로 파송을 받은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사역자들 중에 안수를 받은 사람들을 목사라고 합니다. 전도사나 강도사는 안수를 받지 않습니다. 안수를 받은 목사들은 성례전을 집행하고, 예배나 다른 예식에서 축복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한국에서는 목사만이 안수를 하는데 미국에서는 목회자 훈련을 받는 신학생들도 축도를 하게 하더군요. 낯설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법으로 정해졌는지 모르지만 신학교에서 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만찬 성례전은 안수를 받은 목사가 집행을 합니다. 그만큼 성례전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그것 외에도 목사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고 교인들을 양육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디도를 파송하면서 고린도 교회에게 디도를 사역자로 받아들일 것을 권면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위해 파송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교인들을 축복하고 권면하며 위로합니다. 일반 신자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종이라면 목회자는 교인들과 교인들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들이 하나의 종임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자신들에게 보내신 것으로 믿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넘어서 많은 것을 의탁하며 그들과 관계를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종답게 언행을 실천해야 하고, 그들의 돌봄을 받는 교인들은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자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는다고 히13:17절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 믿고 관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을 섬김에 발전이 있고, 장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게 됩니다. 목회자인 주님의 종들과 은혜로운 관계를 잘 유지하므로 영육 간에 큰 유익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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