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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하나님 때문에 사랑합니다(고전12:4~30)

10/1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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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은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몇 살 차이만 나도 그 생각이나 행동 양식이 다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전기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였습니다. 아마 요즈음 그렇게 한다면 이상하게 저를 바라보며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3,4학년 시절 방학이 끝나면 친구들이 속을 들추고 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맹장을 수술했는데 몇 센치미터를 자르고 그렇게 했는지를 자랑삼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친구도 맨 살의 배를 드러내고 맹장 수술한 것을 자랑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세대들은 우습게 들을 수 있지만 제가 다니던 때는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40대 중반에 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맹장이 곪아서 안에서 터져서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게 하셨습니다. 맹장이 안에서 곪고, 터질 때 그때의 고통을 어렴픗이 기억합니다. 온문이 아파서 만질 수도 없었고, 나중에는 하늘이 빙빙 돌기까지 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맹장이 필요없다고 하여서 있는 가정의 상징으로 그것을 자르기까지 하였는데 제가 맹장이 터져서 잘라냈을 때에는 맹장은 간이 부담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간이 힘이 들면 맹장이 붓고 맹장이 부으면 온 몸이 아파지는데 그것으로 간이 힘들어 하는 것을 개인이 알 수 있게 한답니다. 몰랐을 때 그렇게 귀중한 것을 돌을 들여가면서 잘라냈는데 알고 나니 맹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간을 40대 중반까지 달고 있게 되었음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도 때로는 은혜이고,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아무 역할도 못하고, 기능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가장 귀하게 인정하신다고 본문의 22절에서 알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가장 귀한 것은 사람들이 귀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장 눈여겨보지 않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있으면 귀한 사람이고 존재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셔서 그분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옛날 부자집 딸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손수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란 후에 불행하게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볍게 대하고 무시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다시 우여곡절 끝에 부자로 회복되었습니다. 부자가 된 그분을 아무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타박하지 않습니다. 부자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렇게 귀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것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때문에 그 사람도 자기 자신도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긴답니다. 자기를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도 한 하나님, 한 성령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성령님 때문에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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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출25:10~22)

10/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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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게 하십니다. 그 언약 궤 위에는 속제판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호렙 산에서 모세를 만나시고, 현장에서 만나신 주님께서 이제는 백성들이 가까이 있는 곳에 지성소를 만들게 하시고, 지성소 안에 있는 은혜의 좌를 만들게 하셔서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시고, 모세를 통해서 그 백성들을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언약궤 그 자체나 시온좌 그 자체가 거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고 귀한 것이다는 점입니다. 주님 때문에 거룩하고 귀합니다. 주님 때문에 그 백성들이 귀하고 모세가 귀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것이 거룩하고 귀하기 때문에 그것이 귀하고 거룩하지 않고 그것의 모양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거룩하고 귀함을 기억하십니다. 때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신 성전임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에서가 장자의 명분과 지위를 팟죽 한 그릇에 팔어넘긴 것처럼 주님의 것을 가볍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상징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숭배하거나 믿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거룩하게 대하여야 하지만 숭배나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꼭 기억하십시다. 먼저 본인이 주님의 사람임을 잊지 말고, 또한 다른 사람도 주님의 사람임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늘 거룩을 유지하며 다른 사람을 주님처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믿음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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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시바, 쁄라(계21:1~5)

10/1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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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62장에 나와 있는 헵시바란 단어와 쁄라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7,8년 전에 헵시바와 쁄라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노스캐롤라이나 한인장로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더 이상 버림받은 사람, 버림받은 땅이라고 누구도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결혼한 여인이라 부르게 하실 것이라는 단어입니다. 한 사람이 지옥에서 천당으로 그 위치가 바뀌게 된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본문 요한 계시록의 말씀은 구원받은 신앙인들이 살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치 혼인 예식에 참가하는 신부처럼 매우 아름받게 단장을 하고 그곳에서 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그 나라는 외모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구체적인 생활이 어떤 것일지도 알려 줍니다. 물론 외모에 대한 내용을 계21:18~21절에서 알려 줍니다. 외양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9 그 성벽의 주춧돌들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첫째 주춧돌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비취옥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21 또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그 대문들이 각각 진주 한 개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시의 넓은 거리는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나 보석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서 보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결혼할 때 끼었던 반지도 아내가 보관하고 있으리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세상 물정을 아시고, 보석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집의 주추돌, 벽돌들, 그리고 문들 모두가 이름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순 보석으로 되어 있답니다. 내가 알기로 보화의 가치는 색깔과 흠이 없는 순도, 그리고 어떻게 깎았는가가 가격을 결정한답니다. 그런데 문 하나 전체가 순 보석이라고 하니 그 가치를 따진다면 부르는 것이 값일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보석이니 사람이 어떻게 측정하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개하시는 성령께서는 한 마디로 '신랑을 맞이하려는 신부가 단장한 것과 같다.'라고 하십니다. 그런 외양을 보고 감상한다면, 신랑은 물론이고, 하객들까지 그냥 "너~무 좋습니다." 라고 하면서 입을 벌릴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가치가 나가고 좋은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내용입니다. 그 생활에 대하여 본문이 알려 줍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여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다고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노래만이 있고, 그렇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거룩의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전도서의 말씀을 읽으면 돈이 있은들, 건강이 있은들 즐기는 기쁨과 보람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가장 보람되고 좋은 것을 알아서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복이라고 합니다. 즐거워서 기뻐하며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이라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신앙인들이 누릴 미래의 세계를 그렇게 알려 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헵시바, 사랑받고 인정받는 여인으로 쁄라, 행복한 결혼한 여인들과 같이 변화시켜 주겠다고 하십니다. 어떻습니까? 과히 기쁘고 감사가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해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이므로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좋을까요? 그곳에서 살 신자들을 사랑받고 인정받는 헵시바와 쁄라로 변화시켜 주시겠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모니를 환상적이게 하시겠다며 신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 사는 세상에서 복음과 믿음으로 불편하고 답답하고 힘이들고,  어려운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주 예수님의 피로써 흠과 티가 씻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이 변화시켜주시는 극치의 아름다움으로 변화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에서 환상적인 기쁨으로 감동과 감격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히 기쁘고 감동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소망하며 그곳을 향해 나가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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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얼마나 내려 놓아야 할까요?(창22:1~19)

10/1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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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기'란 책을 쓰신 이용규 선교사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신이 저술한 '내려놓기'란 책을 불자들이 많이 사서 읽으셨답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을 알아서가 아니라 '내려놓기'란 책 제목이 불자들이 사용하는 불심과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결과는 불자들도 자기가 저술한 책을 통해서 공감과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기독인들은 갈2:20절 말씀을 거의 암송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주님과 함께 살려 주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육신에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산다는 고백입니다. 그 내용을 롬6장에서 좀더 길게 표현하였고, 구체적인 예화로써 본문인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만큼 자신이 내려 놓기를 기대하실까요? 네, 죽기까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란 존재는 자기가 죽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사라와 결혼을 해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75세가 된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문을 창대케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백세까지 바라면서 살다가 죽은 나이긴 백세에 그 씨인 아들을 낳았으니 과연 아브라함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가 담긴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생긴 이후로는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도 아브라함이란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주신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믿는지를 알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만큼 귀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하십니다. 우리라면 어떨까요? 하나님 장난하십니까? 그렇게 오래동안 기다리게 하시고 달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일이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매우 단호하고 간결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제가 합니다. 라는 마음이었겠죠? 그랬기에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선물을 주시는자, 생명을 주시는 분, 희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고 있었구나라는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그 믿음이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아들을 모리아의 제단 위까지 데리고 가서 칼을 드는 그때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자, 이 즈음에 어디까지 드려야 할까, 어느 만큼 내려 놓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디까지, 어느 만큼 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대화에서 "뗄감은 있는데 제물이 어디있나요? 아버지"라는 이삭에게 "아들아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해 줍니다. 네, 아브라함이나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다음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겁니다. 라는 그 믿음까지 내려 놓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은 내려놓는다가 아니라 나는 죽었으므로 주님께서 하시는 대로 할 뿐입니다. 사는 것도 주님이 하시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주님이 하십니다. 내가 할 일은 주님께서 하시라는 것을 할 뿐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믿음이고 고백이고, 현실이고, 사명입니다. 왜, 꼭 사역을 해야 합니까? 왜, 꼭 그것이 아니면 안 됩니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그곳으로 신앙인을 부르셔서 그에게 맞는 것을 하게 하시는데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준비보다 자기의 것으로 주님의 계획을 망칠려고 하는지요? 신앙이 있는 분입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그것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주님을 돕는 의미있는 일이고, 존재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하라고 하시면 하고, 그만하라 하시면 그만합니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 보람, 가치, 기쁨과 평안, 사역하도록 불러주시고 사역지를 주신 주님 스스로가 기쁨과 의미와 가치와 평안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이후로 더 형통하게 됩니다. 평안이 무엇이고,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삶은 나는 없고 주님만이 계신 삶입니다. 그곳에 기쁨과 평안과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십니까? 합니다. 그만하라고 하십니까? 그만합니다. 버리라고 하십니까? 무엇도 버립니다. 성령충만하면 그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하지 않고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주님의 사람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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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을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레16:20~22)

10/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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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염소라는 제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제사장에게 살아있는 염소를 바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머리에 그 사람의 죄를 선포하고 위임받은 사람이 그 염쇼를 광야로 보내서 죽게 함으로써 죄를 탕감받게 하는 예식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함하여 신앙인에게 그만큼 큽니다. 죄를 짓는 것을 사회적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만 영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징계를 받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개신교의 경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그 죄를 대신 갚아 주십니다. 염소, 황소, 송아지, 양, 비둘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모두 지은 죄를 탕감받게 하는 제물들입니다. 자기가 죄를 지을 때 또 다른 생명이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특별히 개신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를 위해 또 다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신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죄를 짓는 일을 당면했을 때 염소나 양, 송아지나 숫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가치, 나아가서 하나님의 외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피 흘리고 돌아가신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죄를 짓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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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부자(신15:1~11)

10/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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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주에 최부자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최진립 때 부자가 되었고, 그 부를 아들 최동량에게 물려 줍니다. 최동량 역시 좋은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답니다. 그 아들 최국선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물려 받을 때에는 조선에서 최고의 부자였답니다. 최국선은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간 것을 못 갚게 되자 안타까워 하며, 아들 최의기 앞에서 담보문서를 모두 불살르기도 하였답니다. 최국선은 죽을 쑤어 거지들에게 푸짐하게 나눠주었으며, 보리가 여물지 않은 3월과 4월의 보릿고개엔 100석의 쌀을 이웃에게 나눠주었답니다. 최부자 가문은 최국선 때부터 소작 수입의 1/3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이 생기면서 200년 후인 최준 대에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긍휼을 베풀었답니다. 경주  최씨 부자의 가문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을 가문의 미덕으로 삼았답니다.  본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핫비니다.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칠년이 되면 면제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부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11절 말씀에 그렇게 해도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부자일 경우에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에는 인색한 사람으로 돕지 말고,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칠년이 가까이 왔다 하여도 인색한 마음으로 빌려주지 않거나 모자라게 꾸어주지 말고 넉넉하게 꾸어주고 탕감하여 주라고 하십니다. 부유함은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데 주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보며 그들을 대해 왔습니까? 도와와 하므로 피곤하게 대해 오셨습니까?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며 도와오셨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자기의 주변에 없게 하고, 물론 친척들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을 명심하십시다. 넉넉히 도와서 그들이 부유하게 되도록 돕는다면 자신도 분명 그렇게 넉넉하게 될 것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되고 주위에 도울 사람이 없을 만큼의 부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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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미4:1~4)

10/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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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북한을 향한 비핵화의 강압이 누구러들 전망입니다. 그런데 핵무기는 북한만 갖지 않고 많은 나라가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나라들은 가지면 안 되는지가 의문입니다. 강대국들만 가지라는 법이 없고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나라가 가지면 위태한지 의문이 듭니다. 그동안 세계는 강대국들이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수탈하고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도 마찬가집니다. 세계의 흐름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다릅니다. 전행을 없애려면 자기부터 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들은 최신예 무기를 갖추고 위협을 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공격을 해서 파괴하고 살상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안 된다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미국을 보면 기독교 국이라고 합니다. 복음이 있다고 합니다. 복음의 진수는 화해와 평화입니다. 그런 복음의 핵심은 완전 다른 곳에 숨겨두고 무기와 위협과 공격과 수탈을 자행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그러진 모습들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을 모시는 교회와 국가를 향해 자신들에게 길을 가리켜 달라고 한답니다. 복음이 있고, 주님을 섬기는 나라와 백성들은 그들에게 무엇을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할까요? 최신예 무기와 위협과 공격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무기를 파괴해서 평화를 지향하며 함께 사는 세계를 보여 주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무기를 파괴해서 그것으로 함께 평화롭게 먹고 공존하라고 말씀핫비니다. 이 길은 공동체, 나라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실천되어야 합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어우러지는 화해와 일치와 평화만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길을 묵묵히 걷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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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증인들(미6:1~4)

1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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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주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증언해 주는 분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증인들을 말씀하실 때 자신의 곁에서 능력과 기적과 말씀과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경험한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한 사람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왕이심을 증언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 그리고 어떤 예언자나 율법사나 교사와 달리 권능이 있는 말씀을 듣고 놀랬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증인으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사람 중에서는 오직 침례 요한이었는데 사실 침례 요한을 증인으로 세우시면서도 미덥지 않음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성령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들은 대단한 분들이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자신의 증인으로 산들과 역사 안에서 살았던 백성들을 세우셨습니다. 산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역사 안의 백성들이란 이집트 인들과 함께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고 갈라진 바닷에 난 길을 걸으며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광야 사십년동안 만나를 먹은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산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구원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심을 압니다. 우리 역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음은 우리의 무엇으로 되지 않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것만 말하면 됩니다. 고맙지 않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으로 세워주신 것 역시 은혜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만들어서 자신을 증인이 되게 하신 주님을 감사하면서 증인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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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믿음(벧전1:24~21)

10/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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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달, 새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늘 새롭게 하여 주셨듯이 오늘은 새 달 첫날입니다. 시간도 그렇지만 말씀도 은혜를 주십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갖게 된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소망을 갖고 있는 믿음의 특징은 주님을 닮아서 거룩하려는 마음과 열정과 노력입니다. 욕망을 쫓아서 살던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서 모든 언행을 주님께 맞추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새 달, 새 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언행을 주님께 맞추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도록 합시다. 상대에 대하여 더 깊고 더 넓게 더 멀리 생각해서 세상과 다른 사람을 사십시다. 사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용서해서 상대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도록 하십시다. 성령 충만하고,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풍성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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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장로 교회
​Triangle Grace Korean church (PCUSA)

5001 Tudor Place Durham, NC 27713 
대표전화 919-530-9771 

은혜 장로 교회 
​서기남 목사  
주일 예배 : 주일 PM 2시
어린이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Youth 및 대학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다락방모임 : 주일 PM 3시 30분
금요 집회 : 금 PM 7시
새벽 기도회 : 토 AM 5시30
경건의 훈련: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 목요일 오전  9시 20분
사랑방 모임:
각 사랑방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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