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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히스기야의 실수(사39:1~8)

8/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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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날입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한 달을 건강하게 지켜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는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롬14:7~8)는 바울의 고백과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죽음의 병에서 살아난 히스기야를 축하하리 귀해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히스기야는 성전과 무기고 모든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이사야 선지는 히스기야 왕에게 실수를 했다고 하면서 히스기야가 경악을 할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경악을 할 주님의 말씀이란 왕궁과 창고 안에 있는 모든 금은 보화를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는 것과 그의 후손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자기가 살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유지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선조로 그리고 믿음의 사람으로 자기만 괜찮으면 다행이라는 표현, 그 원인이 자기에게서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엇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개신교 집회와 예배가 서로 대립을 해서 개신교가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이 만든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나름대로의 사정과 생각이 있겠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예배를 드림이 옳다고 생각이 됩니다. 나만, 우리만 괜찮으면 다른 사람, 아들, 손자,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히스기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 히스기야는 교만하게 되었다(대하32:25~26)고 성령께서 성서 기자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자신의 회복을 축하하러 온 바벨론 사신에게 히스기야가 행한 것이 무슨 잘못을 했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벨론에 대하여 그들을 주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는 사용하셨을지라도 좋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심판하셔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주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알고 있었고, 당연히 알았어야 합니다. 그런 바벨론에 대하여 자신의 궁궐과 창고를 보여 준 이유는 아마 자신의 건제함과 능력을 보여주면서 미리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히스기야와 유다, 곧 앗수르의 공격에서 견뎌내고, 병에서 치유되어 회복된 것은 주님이셨지 궁궐과 무기와 보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자신은 낮아지고 주님을 높여드렸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히스기야를 꾸중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라고 고백한 바울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과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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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기도(사38:1~22)

8/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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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으므로 죽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 말씀을 그동안 주님의 말씀을 전해 받던 하나님의 종 이사에게 듣습니다. 눈 앞이 깜깜했을 것입니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면서 그의 신앙에 몇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이 보입니다. 죽은 이후엔 주님을 뵐 수 없고 찬양도 드릴 수 없다는 내용이나 육신이 살아있어야만 사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표현 그리고 주님의 뜻과 계획 보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주님께서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듣고, 십오 년을 연장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사용된 것이 무화과 빵을 이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빵이 아니라 무화과 열매의 으깬 것이었는데 어쨌든 참 좋은 예라 생각이 듭니다. 약이나 의술이 조금이라도 사용되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은 자신이 기도와 능력으로 사람의 노력이나 의술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신비의 치료사들 주장을 다시 고민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성전으로 올라가게 하셨다는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로 생명의 연장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 죽게 하신 주님의 계획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죽었다면 ... 그래서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과 계획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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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길(사35:1~10)

8/2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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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말씀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나아가서 이 세상의 종말고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신약 성서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오셔서 회복하실 그 나라를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땅을 회복하십니다. 메마르고 엉겅퀴가 나는 광야에 물이 쏟아져서 나오고 사막에 연못이 된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곳엔 풀과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절 말씀에서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엔 롬8:22절에서 피조물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입니다. 물이 솟고, 면못이 된 땅이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화를 키우며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땅은 자체가 옥토가 되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백합화와 갈대와 왕골이 자라나게 함으로써 기뻐하고 즐겁게 된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사람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손과 다리를 굳세게 하여 주시고, 보이지 않는 눈을 보게 하시고, 들리지 않는 귀를 듣게 하시고, 말하지 못하는 혀를 말하게 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렇게 하여 주셨지만 그것은 주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예표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통해서나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조의 순서와 회복의 순서 모두 땅과 피조물, 곧 자연을 먼저 창조하시고, 회복하시고 이후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회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죠? 그래야 사람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거룩한 길을 만들어서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이 왕래를 하게 하신 답니다. 길은 모든 사람을 왕래하게 하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거룩한 길을 만드신 답니다. 그래서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며 평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신앙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임을 다시한 번 알게 됩니다. 공동체를 평화로 회복하시고 서로 교통하며 함께 살게 하십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삼위의 하나님께서 하나이심처럼 제자들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그 일이 실현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평화롭고 완전하게 회복하시는 주님께서 평화의 거룩한 길을 걸으며 완벽하게 회복된 복락원에 살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 사람은 먼저 깨끗해야 하고, 악하지 않아야 합니다. 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어서는 안 됩니다.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씀이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네번째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속량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답니다. 우리 말에 그림에 떡이란 말이 있습니다. 좋으면 뭘합니까? 본인이 그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 모질은 말씀을 전해 줍니다. 주님께서 완성하신 복락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 유황불에 떨어져서 고통에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시는 이유는 완성되는 그 날을 생각하고 그날 복락원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들을 지금 회복하고 후회와 원망이 없이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그곳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막연히 그날을 생각하면서 살지 말고 그 날을 분명히 붙잡고 그 날, 복락원에 들어갈 조건을 잘 갖추는 지혜와 믿음이 회복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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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과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사34:1~17)

8/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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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기후의 불확실한 변화로 인하여 몸살을 안고 삽니다. 긴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인류가 계속 변화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의 변화는 자연이나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변화시킨 결과임을 누구나 압니다. 물고기들이 떼 죽음을 당하여서 해안가로 쓸려와서 악취를 내는 뉴스를 이까끔씩 보여 줍니다.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의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차서 죽게 된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불순종하고 사람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이 자신들의 터전인 땅과 자연과 환경에 가해를 하여서 사람들이 그것을 되 받는 것이 오늘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민족들에게 벌을 내리셔서 그들이 살던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시고, 그들 대신 펠리컨과 고슴도치와 부엉이와 까마귀가 자리를 잡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순차적이라고 할까요?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시고, 그 땅을 자연 동물을 살게 하시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먹이 사슬로 인하여 약육강식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런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약한 생물이나 동물은 많이 번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잡혀 먹는 양식이 되어도 넉넉하게 번성하게 하셔서 없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인류 생물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연구를 빌리면 오히려 강하고 무서웠던 짐승들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구에서 멸종된 것은 기후의 변화와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감당치 못한 자연 재해였다고 합니다. 그런 위험과 재해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연약하고 힘이 없었던 생물들이었는데 이유는 딱 한 가지 번식을 많이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연에 대한 말씀 중 제가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시104편에서 시인이 사람과 짐승을 발견하고 그 질서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시104:20절 이후에 주님께서 어둠을 드리우시니 밤이 되고, 숲 속의 모든 짐승은 이 때부터 움직입니다. 그리고 22절에 해가 뜨면 짐승들이 물러가고 굴에 눕고 사람들이 일을 하러 나와서 해가 저물도록 일을 합니다. 재미있는 표현아닙니까? 밤에는 짐승들이 해가 뜬 낮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게 하셨답니다. 좋은 발견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또 한 구절은 롬8장에서 표현하시는 말씀입니다. 19절에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유는 22 저주를 받게 된사람들처럼 그들도 고통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네, 피조물들은 사람들을 보조하며 돕도록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주인공인 사람들과 동행합니다. 본문에서 피조물들에게 거처를 주시고 평안을 주신다는 말씀은 그들의 주인공들 역시 평안과 안정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암시합니다. 자신의 환경과 이웃이 된 짐승에게 자비와 은혜를 끼치는 덕이 있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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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용서받고, 병든 사람이 없는 곳(사33:1~22)

8/2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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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신문을 보니 요즈음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답니다. 큰 이유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를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라 국민 건강 보험도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예를 들어 준 것처럼 한국이 매우 앞서 나가고 있답니다. 미국에 와서 일만하고 살았는데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낙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네,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연금을 받고, 평생 모아서 집 할부를 다 내었는데 병이 생기면 그것을 치료하는데 모두 없어진다는 걱정들을 하면서 노인 생활을 내다보게 됩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 매우 기분이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는 병이 없고 죄를 용서받는답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가 죄 때문이라고 하죠?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사람들 중에도 죄 때문에 생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병을 고쳐 달라고 하실 땐 대체로 먼저 죄를 용서해 주신 후에 몸을 고쳐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 원리를 안다면 병이 없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이 매우 효율적이고 확실한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6절에서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보배라고 알려 줍니다. 네,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압니다. 예배드리는 것, 주님을 위하며 사는 것, 겸손한 것, 주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주님 제일 주의로 사는 것들을 압니다. 그렇게 살면 주님께서 복을 많이 주셔서 수고한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늘 경험하며 새 노래를 부르면 삽니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15절에서 알려 줍니다. 의롭게 사는 것, 정직하게 말하는 것, 권세로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것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다는 십계명 중 열번 째 말씀만 지키면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뇌물을 거절한답니다. 네, 뇌물 때문에 걸져서 문제가 생기는데 작은 뇌물이라도 거절하는 사람이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살인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이랍니다.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경외하여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시고, 돌로 쌓은 산성을 그들의 은신처가 되게 하시고, 먹거리와 마실문을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신답니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함이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주님을 경외함이 자신의 자랑이 되고, 생활의 지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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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실 때(사30:19~33)

8/2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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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0편은 모세의 시입니다. 15절에서 주님께서 자신들을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80:5절에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눈물을 빵을 먹이시고, 눈물을 물리도록 마시게 하셨다고 합니다. 눈물을 물리도록 마시게 하셨다는 표현은 그만큼 고통을 받게 하셨다는 표현입니다. 그 말들을 본문에서 주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인정하십니다. 20절 말씀에 주님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야 그 의미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도 끝까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게서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셔도 다시는 그들의 스승을 숨기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오른쪽,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스승들을 통해서 백성들을 올바르게 가게 하시겠답니다.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마시게는 하시지만 이제 그들의 스승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바르게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오기 전에 앞만 보고 그냥 왔습니다. 이 시간이 어렵고 힘든 시간이지만 자기를 돌아보게 하시고, 선생의 말을 들을 여유를 주십니다.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공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세워갈 기회를 받았습니다. 이 시간이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 휩싸여서 그냥 그는 것이 안전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흐르던 세상의 흐름을 코로나바이러스로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정돈하게 하셨습니다. 영의 눈을 뜨고 주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생활과 자신이 생활하는 것을 돌아보고 주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회를 갖도록 합시다. 믿음의 사람들이 온전함으로 일어날 때 세상이 달라질 것이고, 그동안 믿음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격하였던 앗수르와 같은 세상의 흐름과 능력들이 맥없이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때를 감사로 받는 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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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격려하는 말이나 하여라(렘30:1~17)

8/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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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나 제사장 모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제사장을 중보자라 하여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보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을 백성들을 대신하여 드리며 백성들의 탄원과 간구와 기도를 주님께 드려도 그의 소속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신약에서는 벧전2:9절을 포함하여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목회자가 제사장인 듯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앙인을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는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사장, 그리고 가끔씩 선지자라고도 하는 예언자 모두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셔서 그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우리를 격려하는 말을 하라. 우리를 위로하는 말을 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매우 잘못입니다. 그런 말을 하려면 제사장을 찾아가서 주님께 온전한 회개의 제물을 드리면서 용서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신약의 표현으로 주님께 나가서 온전한 회개를 하고 회개를 통해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이 쓰든지 달든지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라도 듣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고 생수가 되는 진리이시므로 자유하게 하고 평안을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종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잘 듣고, 그냥 실천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과 다른 곳으로 가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을 해 주고 그런 자신들을 위해 축복하며 위로해 달라는 주문과 제안은 우상들과 우상들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때론 그 말씀이 고통을 주는 심판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달게 받고, 말씀에 비추어서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따금씩 말씀이 좋았습니다. 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런 표현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 듣고 순종하겠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도록 힘쓰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라는 표현이 주님의 백성이 해야 할 표현입니다.  본문에서는 주님과 다른 곳에서 살며 이집트로 행하여 어려움을 피하겠다는 백성들의 졸속한 것을 지적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주셨으면 그곳에 머물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룸이 지혜로운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고통을 주셔도 견딜 수 있는 것을 주시고, 시험받을 때에 함께 하시며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신 고전10:13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포로가 된 유다 백성에게 에스겔을 보내셔서 말씀을 주시며 주님이 고통받는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려주심처럼 어느 상황, 어느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말씀을 주시며 훈련하십니다. 어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이 주님의 손 아래 있음을 알고 기도하시므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극복하고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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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의 심판을 하시는 분(사29:1~14)

8/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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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먼저 아리엘에 대한 재앙의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재앙을 안겨주는 바깥 세력들을 먼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그런 엄청난 위력을 행하시는 만군의 주 하나님의 왕림을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 바람과 폭풍과 태워 버리는 불길로 찾아오신다고 알려 줍니다. 주 하나님을 이처럼 소개하는 이유는 재앙의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위력을 보여주면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전히 믿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주님을 가까이 한다는 고백이 거짓이고, 주님을 경외한다는 외침이 단지 흉내일 뿐이라고 평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고백과 찬양을 충분히 분간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기쁨과 정성으로 하지 않고 눈 속임이나 순간을 떼우는 식으로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임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 것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군왕와 가장 강한 군대를 먼지로 만드시는 주님께서 지혜롭다는 사람들의 지혜를 없애시고, 총면한 사람들에게서 총명을 없애시며 앞을 보던 사람들에게서 시력을 빼앗아서 앞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알코올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어도 취하게 하시고, 독주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비틀거리게 하시고, 예언자들을 예언하제 못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주신 묵시들을 가리셔서 한 말씀도 보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화가 나시고, 심판을 예고하실 때 그 백성들이 하여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정신을 집중하고 그동안의 일들을 반성하고 베옷을 입고 주님께 무릎을 꿇고 재를 쓰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온화하시고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므로 온 마음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할 때 돌이키셔서 위로하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화가 나셨다가도 주님께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 돌아와서 겸손히 주님의 능력 안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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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으려면(사28:14~29)

8/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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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짐승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짐승에게 두려움이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요즈음은 집에서 반려동물이 하여서  Pet을 키웁니다. 우리 집에도 강아지가 두 마리 있습니다. 겁이 매우 많습니다. 다른 큰 개를 멀리서 보면 크게 짖다가도 가까이 가면 조용합니다. 다른 개에 대하여는 그렇다 하여도 번개와 천둥을 칠 땐 평상시와 달리 내 품으로 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상 시에 나를 자신들의 보금자리와 보호처로 생각을 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개들이 싫어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배큠 소리를 무척 무서워합니다. 배큠을 하면 모두 멀리 도망을 칩니다. 더 싫어하는 소리가 전기로 날 벌래를 잡는 소리입니다. 전기로 날 벌레를 잡는 도구가 있는데 늘 불이 켜져 있습니다. 날 벌레들이 불을 좋아해서 들어갔다가 타서 죽는데 그 소리가 꾀 큽니다. 그 소리를 개들이 싫어하기도 하고, 무서워서 떨기도 합니다. 떠는 것을 봅니다. 짐승도 두려워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귀신이나 다른 무서운 현상을 두려워합니다. 왠만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이야기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그러셨습니다. 베드로도 성령을 받고 그랬습니다. 바울도 랬습니다. 신앙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소크라테스도 독배를 앞에 두고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서머나의 목회자 폴리캅 역시 죽음과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네, 믿음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지요. 본문에서는 불행하게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거짓 으로 담대하였다고 고발합니다. 거짓 평화, 거짓 담대함 모두 거짓 지도자, 선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두신 시온의 모퉁이를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비로움입니다. 어떻게 모퉁이 돌을 의지함으로 불안하지 않을까요? 네, 그 모퉁이 돌이 하늘 문을 열어서 그 나라를 보여 주시고, 그 나라를 소망하게 할 뿐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의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신비하고 기적같이 보여도 하나님께는 평상적인 것입니다. 신온의  모퉁이 성전의 모퉁이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몇 차례 하셨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본인은 부활이므로 본인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요11:25~2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놓으신 산 돌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맏고, 죽음과 그 어떤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담대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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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할 때 잘못하는 것들(사28:1~13)

8/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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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어린 사람은 마시지 못하게 하지만 어른이 되면 한 잔 쯤 해도 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입니다. 신약에서는 술에 취하지 말라(엡5:18) 하였고, 구약 잠언에서는 잔에 있는 포도주를 쳐다도 보지 말라(잠23:31)고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약 엡5:18절에서는 술 대신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술은 마시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하면 안 되는 것이 마약입니다. 사회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이 마약, 담대가 있습니다. 담대와 술은 개인적으로 특히 어린 사람들이 보지 않거나 공공장소에서 피우거나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담대도 한 동안은 어느 곳에서든 피웠으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주 제약된 장소에서만 허용을 합니다. 술은 안 됩니다. 술은 브라운 백에 넣어서 운송하게 합니다. 그나마 마약은 환자를 제외하곤 투약하지 못하게 합니다. 투약했다가는 감옥에 갑니다. 기분을 좋게 하는 것들인데 왜 못하게 할까요? 그렇죠? 건강을 해치고, 다른 사람들의 건강까지 해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담대는 정신건강에 좋다는 이상한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피우기도 하였고, 담대를 피우면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술을 마셨다가 실수를 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은 노아였습니다. 술은 기분은 좋게 하지만 더 마시게 하여서 실수를 하게 합니다. 큰 소리를 떠들게 합니다. 본문에서 지적을 하듯이 우쭐하게 하고, 교만하게 합니다. 본인은 그러고 싶이 않아도 그렇게 된답니다. 겸손을 유지하고 싶고,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술은 먹은 것을 토하게 합니다. 몸에 받지 않을 때 그렇게 하는데 본문에서 지적하듯이 지저분하고 더럽게 합니다. 잠23의 말씀에 의하면 실수를 연발하게 합니다. 술에서 깬 다음에 분위기를 보면 실수 투성이 인데 술꾼은 다시 술을 찾는 답니다. 술은 술을 마셔야 술로 나빠진 몸을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ㅎㅎㅎ 말도 되지 않는 소리죠? 그런데도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런 저련 이유로 술을 찾고 다시 실수를 하고, 추하게 되고 몸을 상하게 합니다. 술은 사람을 신처적으로 관계에서도 추하게 하고 나쁘게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일입니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몸의 건강을 좋게 하려면 술을 마시지 말고 성령을 받으시고, 운동을 하면 됩니다. 잠31장에서 르므엘 왕의 어머니는 포도주는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주고, 독주는 죽고 싶은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픈 사람, 죽고 싶은 사람은 찬양을 들으며 주님께 기도하면 해결이 됩니다. 술 마신다고 현실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화됩니다. 일을 더 그러치게 됩니다. 술취하지 마십시오. 이는 방탕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조그만 마시겠다는 마음은 마귀의 유혹이고 속삭임입니다. 잔에 담긴 술을 보지 말라는 잠언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지혜롭고 잘 되는 길입니다. 성령 충만하시고, 찬양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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