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암이나 암몬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창세기에 나온 모암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로서 그 시작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작은 바람직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의 후예들과 주님게서 그들을 이끄시는 것을 보면서 주님께 나와야 하는데 이스라엘을 대적하므로써 결국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을 잘 못랐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복을 받게 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자식을 징계하여도 죽이는 부모가 없고 꾸중을 하여도 미워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육하여 좋은 자녀로 양육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쓴 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상처를 받고, 쓴 뿌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좋지 않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주님께 무릎을 꿇고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주님께 나가야 새로운 존재가 되고 새롭고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의 삶은 피폐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하나님의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사명이 있는 족속입니다. 아버지 잘못만났다고 후회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복이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함이 지혜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인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신앙인들을 통해서 복을 주셔도 그를 주목하셨다가 그를 아브라함의 후예가 되게 하시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서 복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이 없는 사람에서 복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성서에서 보여주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을 한탄하거나 비탄해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매우 멀리 보이시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를 통해서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두신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으시길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동경하게 되면 하나님은 자비롭고 미쁘신 하나님이시므로 결국 그를 아들과 딸로 맞아주십니다. 기쁨으로 반갑게 맞아주시고, 그를 누구보다 총애하시고 그를 믿음의 새로운 사람으로 세워주시고 복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믿음의 모델이 되게 하십니다. 모압을 보면서 주님을 동경하고 사모하고 주님의 복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받고 기뻐하면서 주님 곁으로 돌아오는 지혜를 갖기를 바란다는 간구를 해 주고 싶습니다. 자신은 누구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 안에 계십니까? 주님을 마음껏 부르고 찬양하십시오. 하나님과 멀리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조금이라도 받아서 그 효능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을 동경하고 사모하여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시길 축복합니다. 더 이상 주님 바깥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많은 재능들을 유용하게 나누고 활용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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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패망과 교만했던 왕의 비참한 추락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와 블레셋을 향하여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들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보았습니다. 왠만한 나라들은 한번쯤 기지개를 펴서 나라를 강하게 하는 때가 있음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그런 나라들이 흥하고 망하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렇게 흥하고 망하게 되는 현상들입니다. 이런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제가 깨달은 교훈은 주님께서는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잘 되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교만하면 쉽게 무너지나 겸손해서 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예언서와 역사서에서 늘 말씀하셨듯이 오래 그리고 영구적으로 유지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겸손과 주님 경외가 중요합니다. 나라와 왕조를 움직이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제가 깨달은 또 다른 교훈은 주위 환경과 다르게 다른 사람, 다른 나라에 대하여 자신이 행할 것들을 성실히 그리고 겸손히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망하는 나라와 개인이라고 자기의 실력을 행사할 때 폭력이나 무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마음을 갖고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앗수르나 바벨론 그리고 에돔이나 모압과 같은 나라가 주님께 심판을 받은 것은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을 돕지 않고 오히려 해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주위에 어려움을 받는 그런 사람이나 민족과 나라가 있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자비를 베풀어 주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며 말씀이십니다. 블레셋은 팔레스틴 지경 중에서 해안가 비옥한 곳에 살았던 종족입니다. 전쟁을 일삼기 보다 평화를 위해 수고하였다면 그들은 주님께 심판을 받지 않고 이스라엘과 형제처럼 잘 지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그들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모든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왔다면 비록 시작은 중심이 아니었어도 주님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복있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본인을 작고 여리고 무기력하게 여깁니까? 솔직하게 그런 자신을 주님께 고백하면서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때 주님의 은혜와 인도 안에서 든든하고 희망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주위의 사람, 민족, 국가들에게 자비와 온정을 베풀며 살아가는 큰 사람, 큰 민족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 도구가 되어서 평화와 복을 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지난 해 한국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께서 백 세가 되고 보니라는 어록이 회자되었습니다. 백세가 되고 보니 후회가 많더라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제 육십이 지났으니 싱생의 종반을 향해 달리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땐 힘도 있고, 기회도 다시 올 것 같았는데 이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마음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 새롭게 행동을 할 때 신중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제가 받지 않은 재능이나 수고나 노력으로 되지 않은 것을 마치 제가 한 것처럼 착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은혜로 힘이 날 때도 있었고, 교회가 부흥할 때도 있었고, 수고도 하지 않고 감투를 썼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도와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에 대하여 매우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왜 부흥을 주실까? 잘 되게 하실까? 건강을 주실까? 재정을 주시는 것일까? 왜 명예와 권력을 주시는 것일까? 조심하고 조심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시고 세우신 뜻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힌 사람의 모습입니다. 본문에서는 바벨론 왕의 교만과 그 결과를 알려 줍니다. 바벨론이 여러 나라를 재압하고 큰 나라가 된 것은 조그마한 사람 하나의 힘과 조그마한 나라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랍니다.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허황되어 졌습니다. 거기다가 교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는 찬양을 인도하는 천사장 루시퍼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사탄으로 쫓겨난 것을 비유하여서 조그마한 사람, 조그마한 나라 바벨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교만하다가 떨어진 것을 보여 줍니다. 일반 임금들은 죽으면 자신들의 조상들이나 자신들의 가족 묘지에 묻히지만 바벨론의 왕은 웅덩이에서 구더기들을 이불로 감고 그곳에서 썩어 없이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교만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교만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잠깐 동안은 멋지고, 예쁘고 건강하고 왕성한 때를 주십니다. 그렇다 하여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뿐 아니라 제약이 많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교만하고 방탕한다면 수모는 물론이고, 지옥이라는 씻을 수 없는 저주의 자리로 던져질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먼저 가신 선배님들을 보면서 겸손하게 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의 뜻을 잘 받드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마비가 되었는데 그 나라들 중 돋보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방역을 제일 효과적으로 한 나라랍니다. 세계의 최고 부자인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한국의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여서 한국을 칭찬하면서 한국과 함께 백신을 만들어서 세계를 코로나바이러스에게 구하자고 제안을 하였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는 백신을 제조하도록 이미 한국에 막대한 돈을 지원하였고, 그것 이상으로 돈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답다. 한국 바깥에 사는 한국 동포로서 세계를 위해 일할 한국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8 15가 다가 옵니다. 8 15는 일본 강점기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그 날은 한국 민 모두가 좋아서 웃으며 노래를 한 날입니다. 사람들은 좋으면 웃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합니다. 기쁘기 때문입니다. 기쁜 사람은 웃고 노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본문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은 웃으면서 노래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외국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붙잡혀 가서 포로 노예로 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 것입니다. 저는 장인의 초대를 받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이민 생활하는 동안 많이 들은 것은 차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지는 몰라서 이렇게 표현할 것입니다. 저는 그다지 차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별을 받는 사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의 포로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차별은 차별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전쟁의 포로가 떳떳하게 자기의 나라로 돌아와서 주권과 자유를 갖고 살 수 있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기뻐서 신나는 노래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기쁨과 노래를 백성들에게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피으로써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은 우리들도 기뻐하며 노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마음껏 나가서 하나님께 요청도 드리고 하나님을 능력으로 멋지게 삽니다. 기쁘고 노래가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은혜의 보좌에 나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받고, 성령이 주시는 신령한 생수를 마시면서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자유 독립된 나라에서 주권과 자유를 갖고 평화와 평등의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악영과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능력을 사용하며 살게 하여 주셨습니다. 마음껏 기뻐하고 찬양하며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기쁨으로 그리고 힘차게 찬양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그분은 우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재보다 잘하고, 성실한 사람보다 잘 한다고 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임금님은 야훼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고 합니다. 그분은 성령님이 충만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자, 그 다음에 그분의 재능과 자질은 우리가 잠시 예측하였듯이 주님의 영이 내려와 계신답니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있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그분을 닮을 것이니 장차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분을 좋아하고 흠모하도록 하십시다. 그 다음 하나님의 나라, 곧 우리 나라의 임금님은 나라를 다스리실 때 구조적으로 다스리신답니다. 큰 그림을 갖고 다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큰 그림을 갖고 다스리실 우리의 임금님은 정의와 성실이 몸에 익숙하시고, 자연스럽게 정의와 성실로 다스리신답니다. 그 결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답니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답니다. 그리고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명 곁에서 장난하고, 젖땐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습니다. 우리의 임금님이 다스리시는 그 땅 어디에서도 해치거나 파괴되는 곳이 없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던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이 다스리시는 곳으로 모두 찾아온답니다. 서로 가졌던 섭섭함이나 분노, 적개심이 없어지고, 화목하게 생활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를 우리가 소망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 세상이 망한다. 이 세상이 파괴된다는 무시무시하고 비희망적인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임금님이 다스리실 나라를 기대하며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땅을 사는 동안 비관적으로 살지도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 평화를 위해 수고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본문 9절에서 알려 줍니다. 우리의 임금님이 다스리실 나라를 고대하면서 이 땅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화목하게 사는 지혜와 믿음으로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앗시리아 왕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알려 주십니다. 앗시리아의 왕은 예루살렘을 심하게 공격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데 사용하는 길목이었으므로 그냥 스쳐지나가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야심과 욕망이 있는 앗시리아의 왕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공격을 받아서 어렵고 힘들게 되었을 때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죄가 생각나면 회개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울부짖어야 합니다. 네번째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저는 이따금씩 생각을 해 봅니다. 아프다. 재정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사고가 났다. 그럴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물론 성령께서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유있을 때 생각나는 것은 지금까지 잘 지켜 주신 주님을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을 성난 파도와 같다고 했는데 그동안 그런 어려움에 휘말려 살지 않음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리 감사하고 생각해서 그런 때가 왔을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늘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 본문에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앗시리아의 왕을 경고합니다. 분명 자기의 생각과 달리 예루살렘을 파상적으로 공격해서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본인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할 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상하다. 나는 이렇게까지는 계획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유일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네, 미안한 마음, 불쌍한 마음 그래서 긍휼을 베풀어야지요. 마치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고 안아주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과 계획대로 작전을 펼치지 않은 앗시리아의 왕은 마치 자기가 한 것과 같은 오만과 착각에 빠져서 교만과 어리석음을 드러냈답니다. 주님의 징계의 도구가 되었을 때 해야 하는 일이어서 하지만 미안한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타산지석으로 교훈을 얻어야 하고, 주님께 중보를 하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마음과 뜻대로 세상이 되어지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지혜입니다. 잘될 때 교만하지 마십시다. 어려울 때 비굴하거나 떨지 마십시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돕고 섬기는 마음을 실천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를 하듯이 주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히12:6)고 하였습니다. 물론 자녀가 잘 하는 데 징계를 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잘 하는 자녀를 시기하고 미워해서 징계를 한다면 그 부모는 정상적인 부모가 아닙니다. 혹시 모릅니다. 그런 부모라면 정상적인 관계의 부모가 아닐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의 잘못에 대해 눈 감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마음으로 징계를 하였는데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큰 잘못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럴 땐 어떡해야 할까요? 부모로서 참 황당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징계하는 부모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모의 징계만을 생각해서 다른 행위를 취한답니다. 예를 들어서 비를 주지 않으시면 비가 오는 다른 곳으로 옮긴답니다. 전염병을 주어서 주님을 찾도록 하였는데 주님께 나가지 않고 병을 스스로 고치려고 애를 씁니다. 직장을 잃게 하셨는데 직장에서 얻던 수익을 다른 것으로 얻으려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징계를 주시는데 전쟁으로 고통을 주는 나라에게 엎드립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떠나서 다른 행동을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그런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런 현상이 있을 때 주님께서는 형제와 형제를 나누어서 서로 대적하며 싸우게 하시겠답니다.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면 주님께서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터전과 삶을 우상이나 세상의 무엇에 맡기지 말고 주님께 맡기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그것이 순탄하고 형통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주님께서 꾸짖고 징계하시면 빨리 이해하여 회개하고 주님께 기쁨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요즈음 미국에는 팬더믹 상황과는 달리 집 매매가 매우 잘 됩니다. 그래서 점차로 Buyer Market에서 Seller Market로 변해 갑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경제를 고려해서 이자율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이자가 낮아져서 융자만 받을 수 있다면 apartment에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혜택을 받는 때가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한국에는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집을 많이 건축하여서 무주택자들에게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빌려 주겠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먹는 문제, 입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는 곳이 해결되기를 희망하는데 미국,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답답했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본문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좋은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는 백성들에게 어둠을 거두어 주시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신다는 소식입니다. 어둠이라면 불의와 압제에서 고통을 받았는데 주님께서 그곳에 정의와 평화의 통치자를 보내 주셔서 그곳을 영원히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면 합니다. 이유는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정의와 평화의 임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지배층과 부자들이 살던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다 주지 않으시고 갈릴리, 납달리 어렵고 힘들게 살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병을 치유하여 주시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먹고 남을 만큼 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며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주님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 날이 가까이 옴을 알고 기대감으로 주님을 가다리시기 바랍니다. 사정 상 그날이 좀 늦게 되면 주님께서 큰 문제도 해결하여 주시지만 작은 문제고 해결하여 주십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면서 기도하심으로써 문제를 해결받고 매일 기대와 기쁨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주님께서는 성소도 되시지만 거치는 돌도 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만나셔서 축복하시는 존귀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고 불의하며 교만한 사람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십니다. 주님이 자기의 성소가 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본인을 성소로 삼고 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백성들이 모이하는 음모에 가담하지도 말고, 그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백성의 성소가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인에게 주님의 얼굴은 어떤 면이십니까? 기대하고 기뻐하며 만나주시는 얼굴이십니까? 아니면 피해야 할 얼굴이십니까? 기뻐하고 기대하며 반가이 맞이하는 주님의 얼굴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만나뵙고 기뻐하며 감사를 고백하는 주님의 백성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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