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기 때문에 원스들의 분노에서 살아났고, 홍수 속에서도 쉽쓸리지 않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시인의 편이신 하나님은 새가 그물에서 벗어남 같이 자신들을 살려 주셨고, 어부의 그물에 가친 물고리를 그물을 찢고 살려주심처럼 자신을 풀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자신들의 편이신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43:1절 후반부부터 2절에서 그 백성들에게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그들을 물 가운데서 지켜주셔서 물이 그들을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불 가운데서도 지켜 주셔서 불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범람한 요단강을 건널 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친구들이 느브갓네살 왕의 신상을 거절하고 평상시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군 용광로에 던져졌지만 살려주심을 통해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주님께 기도하다가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사자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셔서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말씀을 듣고 지킨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아서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쳐도 무너지지지 않는 사람처럼 될 것이라 하였고, 시119:92에서 시인은 주님의 법을 기쁨으로 삼아서 고난을 이겼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게서 주신 말씀을 잘 듣고, 암송하고 암송하고 간직하여 그 말씀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물 가운데에서도 지켜주셔서 물이 엄습치 못하게 하여 주실 것이고, 불 가운데서도 지켜주셔서 불이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나의 편이시다. 나의 편이신 주님이 주신 말씀을 잘 기억했다가 그대로 실천한다. 그러면 안전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잘 될 것입니다. 가는 길이 순탄하고 성공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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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제목을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합니다. 목회자인 저는 성전 본당에 들어가면 평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마치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 갔을 때의 기분과 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예배의 말씀, 예배드리는 교우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쁨이 생기고, 은혜가 옵니다. 귀하는 예배당의 본당에 갔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요? 전도서 5:1절 후반부에 성전에 갔을 땐 재물을 마치려는 마음을 갖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는 함부러 입을 열지 말고, 마음을 조금하게도 갖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있으므로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천번의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을 만났던 솔로몬의 충고이고, 예배를 드리든지 또는 성전에 갔을 때 어떤 마음 자세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성령의 지도라고 이해합니다. 성전에 갔을 때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고 돌아오는 복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에서도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라고 합니다. 네, 과거 수도사들은 주님을 바라고 묵상하면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늘 기도하였답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더러운 것들, 미움, 시기, 질투 성령께서 모두 씻어주셔야 하니까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마5:8절에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히12:14절에서는 거룩해 지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죄가 있는 사람, 더러운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가톨릭 성전 입구에는 정화수를 두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물로 자신의 더러운 부분을 씻게 하였습니다. 물론 손으로 씻겠지만 마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자기의 더럽고 추한 곳에 바름으로 씻어서 주님을 온전히 만나라는 의미이겠죠.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김을 받고, 자비를 받고, 은혜를 받아서 제때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복(히4:15)이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지난 한 달 동안 히브리서 기자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하고 깊게 소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인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레마로 말씀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게 하셔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화장되고 전파되어 나가길 기대하십니다. 자신과 가정만의 쌓는 것, 즐기는 것에서 눈을 돌려 바깥으로 향해 나가길 축복합니다. 히브기서 기자는 본인들을 위해 기대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양심껏 사역을 하고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역이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사역자는 그저 주님의 종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신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하고 인정하는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종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주님의 뜻과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사역해야 합니다. 그것이 양심껏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위해서 사역을 한다면 그 사역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쁨에는 동참할 수 있습니다. 교인이 성숙해지고, 교회가 장성해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면 사역자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주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양무리의 위대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온갖 좋은 일에 교우들을 다듬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믿음, 진정으로 주님을 경회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라는 롬8:28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바울이 롬14:6절과 7절에서 고백한 우리들 중에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라는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실천될 수 있기를 빕니다. 돌아가시는 분들을의 임종을 하면서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세상에 자신을 깊이 연관시키고 있음을 종종 경험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주님, 주님께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그런 하늘의 사람이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았다는 믿음의 고백을 정직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 딤전6:10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오직 주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주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선한 사람들과 사역들에서 귀하게 인정받으며 사용되는 주님의 귀한 도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믿음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13장에서도 계속 말씀하여 주십니다. 첫번째로 나그네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번째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정하고 자비를 베풀며 위로를 해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여성, 어린이, 이방인 여러 사람들이 학대를 받습니다. 혼인을 귀하게 여기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덧붙이기를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음행과 간음은 평생 자기를 지켜야 할 어려운 과제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 부자가 되려는 사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이미 잠23:4~5에서 그리고 딤전6:9~10절에서 하였습니다. 돈이 많고 부자이면 필요한 것을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향력과 소비와 교만의 유혹을 받기 쉽고, 또 한편으로는 나눔과 구제와 선한 일을 하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복권을 당첨하였다가 그나마 다니던 직장 생활도 하지 못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비상적인 생활을 맛본 후에 완전 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이따금씩 듣습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과한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계속하여 지도자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과 죽음을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온유하고 겸손하므로 자기를 배우라 하셨고,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무엇을 본받으라고 해야 할 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지도자와 은혜롭고 평화로운 관계에 있으면 좋은 것이 이상한 교훈에 미혹을 받거나 끌리지 않게 됩니다. 지도자가 좋으면 말씀에 은혜가 있고, 그와 함께 믿음과 은혜를 나누길 좋아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완벽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이 계심을 알고 무엇을 배우고자 할 때마다 복음서로 가서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백성들을 향한 사랑을 배우고 예수님의 경건을 배워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능력있는 주님의 백성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해 줍니다. 먼저 성도들이 가서 있을 곳, 다가올 미래인 내일에 대하여서 말씀합니다. 22~24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엇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읽어보시면 하늘의 도성 예루살렘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곳의 높이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 줍니다. 그곳에 이르는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 그리고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 그리고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께서 뿌리신 피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이르기 위하여 성도들이 오늘을 어떻게 살지를 알려 줍니다. 첫째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거룩해 지지 않고는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에 대한 말씀은 시간이 될 때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음행을 하거나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므로 감사를 드립니다. 경건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을 섬깁니다. 어떠십니까? 어떤 부분이 본인에게 도전이 되십니까? 음행을 하고,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경홀히 여기지는 않으셨습니까? 요즈음은 자기를 많이 주장하는 때여서 본인이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였으면서도 상처를 받고, 쓴 뿌리가 났다고 불평하며 불만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많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합니다. 불만과 불평, 원망은 (입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같이 ) 많은 사람을 더럽힌다는 말씀에 유의하십시다. 성도가 갈 곳을 생각해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늘 기뻐하며 감사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은 믿음이 있었던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한 사람은 히브리서 기자가 3장에서 소개한 모세이고, 또 한 사람은 라합이라는 기생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집에서 살던 히브리 사람들을 인도하여 낸 민족의 영도자입니다. 본문에서 소개하는 대로 그가 이집트의 왕자, 왕이라는 영화에 뭇혀서 이집트라는 세속에서 살았다면 성경엔 모세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소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본문 뿐 아니라 이미 언급했듯이 히3장에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께서도 사역 중에 몇 차례 언급하셨고, 실제로도 변화산에서 이 땅에 온 모세와 대화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출~신명기까지 하나님의 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였고, 이스라엘 전체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지주였습니다. 그랬던 그는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한 종으로 매우 성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쓰하시면 그대로 하였고, 또한 백성들을 위해서도 사랑으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중보하였습니다. 그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알려주는 성령의 마음을 잠깐 보겠씁니다. 그는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바로의 궁정에서 공주의 아들로 불리는 것을 거절하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곤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유는 장차 받을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랍니다. 믿음으로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고, 유월절과 피쁘리는 의식을 향함으로 모든 맏아들과 맏배를 구원하게 하였고, 믿음으로 홍해를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건너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행한 그런 일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기억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한 이유를 성령께서는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라고(26) 하였습니다. 부족한 저는 그런 상급을 바라기보다는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하시므로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부족하지만 그렇게 저를 알으셔서 모자라지 않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시는 귀하는 어떠십니까? 장차 받을 상급을 생각해서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도 좋고,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그냥 믿고 순종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떠신지요? 그 다음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소위 기생으로 소개된 여리고의 기생 라합입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살려줍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살려주고 보내면서 약속을 받습니다. 결과 그는 이스라엘에 의해 여리고가 무너질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 가족과 친척이 구원을 받습니다. 마1:5절 말씀에 라합은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 살몬과 혼인하여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를 낳았더군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정탐꾼을 살려준 라합을 그냥 소극적으로 살려주시지 않고 그녀를 진정으로 축복하셔서 히브리 사람 살몬의 부인이 되게 하셨고, 보아스, 오벳으로 이어가셔서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그냥 두거나 소극적으로 축복하지 않으시고, 그처럼 큰 복으로 큰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예수님을 통해 열리게 되었습니다. 힘껏 주님을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므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주님이 도우시는 은혜 안에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한국 사람들은 나그네의 환경과 설음을 잘 압니다. 전쟁과 외세의 강점들을 통해 고향을 떠나서 산 경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믿음의 선조들 역시 고향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가나안 역시 그들이 오랫 동안 영구히 살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주님께서 주신 수많은 자손의 약속을 이루시고자 이집트에서 살게 하셨고, 또 다른 경우는 주님께 그들이 잘못을 해서 전쟁의 포로가 되어서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이민 생활을 해도 피곤한 생활이 나그네의 고통인데 전쟁의 포로로, 노예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본문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해 가는 사람들, 목표가 있는 여행객들을 가리켜서 순례자라고 부릅니다. 어느 곳에 얼마 만큼 살지를 모릅니다. 주님께서 가라고하시면 가고, 있으라 하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 곳이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입니다. 마치 목회자와 같습니다. 목회자에게 세 가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사갈 준비, 두번째는 설교 준비, 세번째는 죽을 준비입니다. 어떤 것이 첫번째인 것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하는 그곳이 영구적인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순례자와 같습니다. 목회자, 순례자,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서 갑니다. 렘35장에 레갑과 그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들에 대하여 나옵니다.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곳에 머물지도 않으므로 땅도 구입하지 않고 포도나무도 심지 않고 씨앗도 뿌리지 않는답니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올랫동안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비슷한데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지만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조상 아무개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인을 순례자,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살고 있는 곳에 애정을 그렇게 많이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곳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 삽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사는 곳을 사랑하고 축복하지만 그곳이 본인이 영원히 있을 곳이나 본인의 계획에 따라 있는 곳이 아님을 알고 언제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례자, 복과 평화를 나누어주는 마음 좋고 선한 나그네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믿습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입니다. 설교 중에 목사님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을 한 후, 그리고 이렇게 하면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원하십니다. 라고 설명을 해 드린 후에 흔히 되 묻는 말씀이 믿습니까?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경 중에서 믿음을 가장 집중적으로 그리고 설명하며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거나 이루어질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없는 것을 생길 것이라고 그리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누가 말하고 누가 약속하였냐가 중요합니다. 기독교에서 말씀하고 소개하는 누가는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그것을 그대로 모두 이루어주셨습니다. 막연히 아무나, 특히 아무의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께서 히11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을 소개하시고, 그들이 받은 복과 믿은 결과를 설명해 줍니다. 특히 아브라함을 예로 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도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 부부에게 가셔서 저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그리고 땅의 모래처럼 많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주시는 확신을 받고 그냥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자기가 살던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떠났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떠난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고, 그 결과를 알려 줍니다. 네, 우리가 지금 보고 인정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를 세기 힘들 만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말씀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은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 글을 쓰는 저 서목사나 저의 글을 읽고 동의 또는 도전을 받으시는 귀하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능력있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본문 중 6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주심을 믿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정말 상을 주실까요? 상받으셨습니까? 저를 포함하여 믿음의 사람은 그렇습니다. 라는 히브리 말인 아멘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아멘을 하는 사람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확신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될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고 그 이전에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에게 이 고백은 매우 큰 도전이 될 것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고 아멘합니다. 도전이 되시는 분들은 꼭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행16:3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과 왕으로 모시게 되는 이유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성서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자기의 주와 왕으로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까? 라는 항의성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질문을 하시려면 성경을 좀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시면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하십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성경에서 설명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왕이고, 자기의 주인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시작입니다. 믿는 사람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천당이 있음을 압니다. 물론 지금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세계가 천국이라고 믿습니다. 왜냐구요? 보이진 않지만 실제로 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찌 모두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아니면 어떻게 하냐구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면 말구요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가벼운 대답이나 책임성이 없는 고백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으면서 살고, 주 예수님을 믿다가 죽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발전된 신앙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을 읽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을 사람들을 설명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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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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