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제사장 에스겔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오랜 시간 동안 들었습니다. 마지막 말씀에서는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들은 말씀과 같은 말씀들을 주십니다. 주님을 모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며 주님을 섬긴다고 하였으나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할 시간을 주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시면서 심판을 예고하셨어도 오히려 예언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주님께서 성전을 떠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명보다 중요한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하며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야훼 샴마, 주님께서 거기 계시겠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성전에 계시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거룩한 물을 주시고, 그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으로 회복됩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계시고, 성전의 동문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물이 닿는 곳에서 생명이 살고 자연히 회복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은 주님이 계심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떠나셔서 계시지 않음은 아무리 비싸고 화려한 것으로 꾸미고 장식하여도 무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우상을 멋지고 화려하게 만들었어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야훼 샤마, 주님께서 계시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시면 생명이 회복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주로 믿는 우리들을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죄를 지으면 성령님은 활동을 하지 않으시던지 떠나십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가고 온갖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해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헛수고입니다. 왜 헛수고가 되는 지를 그동안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주님께서 계시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피를 흘리게 하시면서까지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죄가 없어야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달콤합니다. 죄는 우리를 죽일 만큼 매력적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안에서 주님을 떠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주님께서 자기를 다스리셔서 야훼 샤마가 영으로 나타나게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요즈음도 왕인 나라가 있습니다. 왕도 권한을 갖지 않은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실권을 갖고 왕정을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요즈음 왕 대신 대통령이나 수상과 같은 직함이 있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을 세워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사무엘 때 왕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사였던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바람직하지 못했고, 사무엘은 나름 괜찮았다고 하지만 그의 아들들 역시 백성들에게 좋지 않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유여서인지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크게 요청하여서 섭섭해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을어서 왕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왕에 대한 규정을 알려 주십니다(신17:14~20). 왕이 실권이 있어서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요즈음 읽고 있는 역대하의 말씀을 비롯하여 역대상의 말씀에서 왕들의 임기나 권한 역시 하나님께서 조절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왕이 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왕이 다른 사람들보다 실제의 권한이 많고 크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기능적인 위치라는 점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당시의 상황으로 백성들을 재판하는 역할이 왕이므로 권력은 남다르겠지만 그래도 누구를 압제하거나 더더욱 빼앗거나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기능적으로 주님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런 왕의 역할을 빗나가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정해 주신 왕의 임무와 제한을 잘 따라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왕이 주일에 바쳐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을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그런 것들은 왕이 통치자일지라도 주인이나 주권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지침입니다. 왕 뿐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크고 넓은 권한을 갖고 있어도 섬기며 인도하는 위치이지 주권자의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런 역할을 잘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며 섬기셨고, 본인의 길 역시 주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신 때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과 뜻대로 하지 않고 주님께 순종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역할과 기능이 다를 수 있습니다. 본인의 뜻과 계획대로 하지 않고 주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서 겸손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사명과 임무를 잘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오늘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떤 말씀을 받으셨나요? 저는 안식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물론 다른 의미가 많이 담겨있지만 에스겔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주시면서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땅 바벨론에 가 있을지라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안식일이 유대인에게 있음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외부적으로는 안식일을 그렇게 알려 주시지만 유대인에게는 하늘문을 여시고 축복하시는 날이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배우는 날(겔20:12)임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안식일 뿐 아니라 매월 첫날, 그리고 매일 주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막에서 주님께 향과 진설병을 매일 드리라고 하심과 같습니다. 해석하면 매일 매 순간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주님 중심, 그리고 주님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유는 주님의 백성이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어려울 때만 기다하기보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 어려울 때나 잘될 때 언제나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이죠? 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중심, 주님 우선, 예배와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복되고 알차고 의미있게 지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에는 제사장들이 차지할 땅 그리고 왕이 차지할 땅에서 먼저 자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통치자들의 통치 법칙에 대하여 알려 주십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시고,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욕심을 내지 말고 살라는 말씀아니겠습니까?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죽음에 이르기(약1:15) 때문에 먼저 지도자, 통치자들에게 사용하기에 넉넉할 만큼 허락하시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신다(히13:5)고 생각하였습니다. 주신 것, 있는 것에 맞도록 잘 사는 것이 중요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생활입니다. 이어서 유월절과 초막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일년에 세번의 큰 절기와 여러 절기들을 주셔서 주님 중심, 성전 중심의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번거롭고 도움이 안 될 수 있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주님 중심, 성전 중심의 삶을 할 때 곁길로 벗어나기 어렵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 위에서 살게 됩니다. 물론 성전 중심의 생활에는 말씀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을 든든하게 잘 지키므로 좌로나 우로 빗나가지 않고 주님과 함께 능력있고, 희망있게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오늘 우리가 읽을 겔39장의 말씀들은 제사장들이 행해야 할 규정과 잘못할 때 받게 되는 징계 그리고 제사장들이 받게 될 처우에 대한 말씀입니다. 분문에서는 주님께서 계시고 주님의 계심을 상징하는 성전엔 주님의 거룩함이 계심을 알려 줍니다. 제사장이 우상 숭배나 그것과 관련되는 잘못된 일을 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박탈하고, 성전 문지기가 되어 봉사를 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내치지 않으심도 은혜이지만 제사장은 레위 지파이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에서의 사역 이외에는 다른 것을 할 것이 없습니다. 제사장들의 기업은 주님이시고 그들이 받는 녹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취해야 할 옷과 모양 그리고 결혼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렇게 자세히 알려 주심은 그들이야말로 주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서 주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주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고 거룩해야 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통해서는 말을 할 때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처럼 하고, 봉사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4:10a)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마음도 말도 그리고 행동도 나아가서는 모양도 옷을 입는 것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을 본문을 통해서 듣습니다. 목회를 하는 저는 물론이고,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님들 모두 주님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에서 주님은 곡에 대한 심판과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곡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나라입니다. 앗수르의 경우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다른 민족들과 혼합시켰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타민족에게 보내서 그들과 섞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타민족을 북 이스라엘로 데리고 와서 북 이스라엘과 섞이게 하셨습니다. 타민족과 섞이게 됨으로써 문화도 섞였고, 종교도 혼합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는데 바벨론의 군대는 그동안 유다가 경험했던 블레셋이나 앗수르의 군대와는 달리 매우 잔인했습니다. 무서운 군대를 가리켜서 말할 때 인정사정 보아주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그들은 유다에 대해서 매우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보란듯이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였고, 성전의 거룩한 기물들을 우습게 여기면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성전을 가법게 여기고 조롱한 것이 느브랏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 성전의 기물을 가지고 와서 손님들과 함께 술을 따라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한 점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과 징계에서 회복시키실 때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한 세상의 곡들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 거룩한 종들을 심판하는 도구가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피해야 하겠지요. 왜 본인이 거룩한 주님의 자녀나 종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자처합니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두번째로 어쩔 수 없이 심판하고 징계하는 도구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자비를 갖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8장에는 왕의 환관으로 봉사했던 에벳멜렉이란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 사람들이 우물에 가두어 두었을 때 함께 동조해서 예레미야를 죽이게 하지 않고 오히려 왕에게 예레미야를 살리도록 간구하여 살려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동정을 한 에벳멜렉을 유다의 멸망에서 구원하여서 살게 하시겠다(렘39:18)고 약속하십니다. 잠언 24:11절의 말씀에 "너는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주고, 살해될 사람을 돕는 데 인색하지 말라."하셨고, 17절 말씀에서는 우너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고, 그가 걸려서 쓰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넘어져야 할 때 오히려 그들의 후손을 변절시키고, 그들의 믿음에 상처를 주면서 그들의 아픔에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백성이나 종들이 심판을 받는 일에서 피할 수 없는 환경이 온다면 피하는 것이 좋고 할 수 없이 참여하게 된다면 동정하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게 한 인물에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가 있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율법 학자와 당시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고백하며 암송하는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고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의 피에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손까지 물에 씻었습니다. 그랬다고 씻어집니까? 거룩한 백성들과 주님의 종들이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주님께서 심판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사무엘서를 보던지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의 말씀에 그런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징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동정하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십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반역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명책에 지워달라고 하면서 그들이 잘못을 용서받도록 힘을 다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리고 스데반 집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주님의 백성들과 종들을 동정하며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전염병으로 고생을 당하고 있지만 전염병이 아니고 전쟁이었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힘들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전쟁이 난다면 자녀가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되고 급기야 자기가 구사일행하였다 하여도 주위가 주검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전염병까지 오게 됩니다. 안전한 나라에 살면서 전쟁의 소문은 들었지만 전쟁은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확진자가 생겼고, 죽었다는 소문은 들으면서도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됨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시91편의 말씀대로 왼편에서 천 명이 넘어지고, 오른 편에서 만 명이 넘어져도 네게는 그것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겠다는 말씀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주님의 능력이 이처럼 크다는 것을 다시금 경험하면서 감사합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곡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십니다. 곡이 이나라 저나라를 공격할 때 혼자만 하지 않고 여러 나라들을 동원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실패합니다. 주님께서 실패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곡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공격 당할 때에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의 품 안에 있는 것이 복이고 은혜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심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연인 어려움의 소식을 듣습니다. 비록 제한적이고 갑갑한 현상은 있겠지만 바이러스까지도 우리를 공격하게 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늘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반석이시고 요새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힘껏 목청을 높여서 찬양합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시인처럼 주님을 향해 힘껏 목청을 높여서 찬양합시다. 주님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능력, 나의 기쁨, 나의 자랑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한국도 둘이지만 이스라엘도 둘이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둘러 갈라졌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르호보암이 원로와 현자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더 많은 노동과 세금을 걷겠다는 말이 발단이 되어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북쪽의 지파들이 나라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잘못과 죄를 보시고, 이미 여러보암을 택하셔서 나라를 세우게 하시고, 둘러 가르실 것을 준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나아가서 주님의 경고를 받고도 나라의 재정과 백성의 숫자를 염려한 여러보암이 북 베델과 단에 자기 마음대로 제단을 만들고 제사장을 세움으로써 여로보암은 망할 길로 나아갔습니다. 결과 여로보암이 세운 나라는 앗수르를 통해서 패망했습니다. 이웃의 나라들을 빼앗은 앗수르는 혼합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빼앗은 나라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빼앗은 나라로 끌고와서 그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혼인을 시키고 섞이게 하셨습니다. 그 정책에 따라서 북 이스라엘에는 이방 나라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들의 신과 제단을 갖고 왔습니다. 그랬던 결과로 북이스라엘에서는 사자가 그들을 물어서 죽이는 무서운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무시하지 말고 두 신앙을 갖게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이런 현상들과는 달리 남 유다는 달랐습니다. 남유다를 정목한 바벨론은 앗수르처럼 혼합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을 바벨론에서도 갖게 하였습니다. 남유다 또는 이스라엘이라는 말 대신 유대라는 말, 그리고 회당이라는 말은 바벨론 포로 때 시작되었습니다. 유대라는 나라 역시 그때 생기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남 유다는 자신들의 순수 혈통과 신앙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북 이스라엘은 혼합 민족과 혼합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남 유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망하면서 그리고 페르시아가 세계를 정복하고 특히 고레스란 왕에 의해 귀환을 하였을 때 남유다는 자기들의 성전을 복구하는 영예를 가질 수 있었지만 북 이스라엘엔 혼합된 사람들과 혼합 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남 유다로부터 따돌림과 멸시와 무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그렇게 나뉘어진 두 나라를 하나가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 위에 유다를 얹지셔서 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데 누가 막겠습니까? 한국도 두 나라 두 체제가 된 1945년 이후로 70년이 훨씬 지나서 75이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달라졌고, 두 문화 두 나라의 종교가 얼마나 달를까를 예측하여 봅니다. 그 큰 차이와 변화에 대해서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면 함께 하나가 되어서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제것을 주장하기 보다 하나가 되려는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물론 주위에 사는 이웃과도 하나가 되려는 그런 노력과 기도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하나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웃과 하나가 되고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싫어하고 역겨워하는 그런 사람과도 하나가 되고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보다는 믿음으로 율례와 법도를 지키고 청결하고 선한 모습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들이 보고 믿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웃과 하나되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종교, 교회의 교인들 모두를 사랑하고 품고, 이해하고 화목하며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과 율례와 법도를 지킴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동하는 주님의 능력있는 백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은 골짜기의 뼈들이 거대한 이스라엘의 군대가 되어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주 하나님께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너희 마른 뼈늗라,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고, 너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고 하신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주님의 말씀을 마른 뼈들이 널려있는 골짜기로 가서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뼈들 사이에서 소리가 나더랍니다. 그것은 뼈들이 서로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였답니다. 에스겔이 바라보고 있이니 살이 오르고 살 위로 살갗이 덮였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여전히 생기는 없었답니다. 그런 뼈들에게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다시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명을 받은 대로 대언을 하자,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그들이 곧 살아 제 발로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여전히 자신들은 희망도 사라졌으므로 망했다고 하므로 그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을 무덤 속으로 이끌어 내셔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말씀을 선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고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먼저는 우리 자신에게도 주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셨고, 여전히 죽음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죄와 사망이라는 무덤에서 살리셨고, 주님의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꼭 알고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우리 생명의 근원이라는 진리입니다. 주님의 영이 계실 때 우리가 살고, 주님의 말씀이 있을 때 주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과 영으로 주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영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어지럽히기는 하여도 청결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럽히기는 하여도 깨끗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부자리에 더러운 것이 묻어있고,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더러운 냄새는 자기의 냄새가 아닙니다. 그 이부자리를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나안이란 땅을 잘 정돈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는데 그곳을 우상숭배와 다른 사람을 살해한 피로 더럽혀 두었습니다. 그런 것은 주님께 더러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깨끗이 씻어주셨는데 또 더럽힙니다. 깨끗이 하라고 경고를 하시는데도 계속 그렇게 합니다. 가나안을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깨끗이 보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더럽힙니다.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곳을 잠시 떠나게 하시고, 그곳에서 깨끗한 사람들과 마음으로 작업을 하십니다. 깨끗함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더더욱 하나님의 땅 거룩한 곳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서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깨끗하게 하는 그 일에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거짓말, 탐심, 악한 마음, 더러운 음란, 미움, 질투, 원수 맺는 것 나아가서는 우상 숭배, 점 보는 것, 궃하는 것과 같은 것들로 더럽혀 져 있다면 깨끗해야 할 주님의 성전이 불결한 곳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깨끗이 청소를 하시는데 그에 따른 조치들이 생기게 됩니다. 다른 말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꼭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본인의 땅과 성전이 깨끗하기를 기대하시고 깨끗하게 유지하십니다. 주님의 아들과 딸들도 그것을 알아서 깨끗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특히 성령께서 거하시는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청결하고 거룩하게 유지하도록 새로운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부어 주시면서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깨끗하게 하시고 부드럽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주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서 사랑하고, 온유하고 친절하고 자비롭고 관대한 주님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
Archives
January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