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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고백(아5:13~7:13)

4/2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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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신부에 대한 친구들의 표현이 본문에 있고,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 대하여 표현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친구들의 표현입니다.
입술람미의 아가씨야,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눈부신 너의 모습을 우리가 좀 볼 수 있게,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술람미의 아가씨야. (남자) 그대들은 어찌하여 마하나임 춤마당에서 춤추는 술람미의 아가씨를 보려 하는가?
1    귀한 집 딸아, 신을 신은 너의 발이 어쩌면 그리도 예쁘냐? 너의 다리는 숙련공이 공들여 만든 패물 같구나.

2 너의 배꼽은, 섞은 술이 고여 있는 둥근 잔 같구나. 너의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 같구나.
3    너의 가슴은 한 쌍 사슴 같고 쌍둥이 노루 같구나.
4    너의 목은 상아로 만든 탑 같고, 너의 눈은 바드랍빔 성문 옆에 있는 헤스본 연못 같고, 너의 코는 다마스쿠스 쪽을 살피는 레바논의 망대 같구나.
5    너의 머리는 영락없는 갈멜 산, 늘어뜨린 너의 머리채는 한 폭 붉은 공단, 삼단 같은 너의 머리채에 임금님도 반한다.

이제는 신랑의 고백입니다.
6    오 나의 사랑, 나를 기쁘게 하는 여인아, 그대는 어찌 그리도 아리땁고 고운가?
7    그대의 늘씬한 몸매는 종려나무 같고, 그대의 가슴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8    "이 종려나무에 올라가 가지들을 휘어 잡아야지." 그대의 가슴은 포도 송이, 그대의 코에서 풍기는 향내는 능금 냄새,
9    그대의 입은 가장 맛 좋은 포도주.

다음으로는 신부의 고백입니다. 
9    몸과 입술을 거쳐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이 포도주를 임에게 드려야지.

10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11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12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함께 가요.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러 가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
13    자귀나무가 향기를 내뿜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온갖 열매 다 있어요. 햇것도 해묵은 것도, 임이여, 내가 임께 드리려고 고이 아껴 둔 것들이라오.
주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가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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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기다림(아5:2~16)

4/2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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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성을 기다리는 마음을 주셔서 이성 간에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예수님은 가신 그 대로 오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후로 예수님의 사람들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고백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거룩하게 단장을 시키고 계십니다. 기다림이란 준비를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자신을 데리고 가시기 위하여 오실 때 아름답고 향기나는 모습으로 단장을 함이 당연한 일이겠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가 생각이 납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으나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 했습니다. 신랑이 왔을 때야 부랴부랴 준비를 하려했지만 이미 문이 닫힌 후라서 잔치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비유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이 가까이 옴을 주위의 징조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때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는데 요즈음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군요. 인터넷의 발달로 매우 빨리 확산되고 있어서 시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위에서 도전을 주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예수님을 기뻐하고 사모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신랑이신 예수님을 준비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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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아4:1~5:1)

4/2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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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1학년 때 루살로메라는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는 책이 유명해서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청년사란 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책이 매우 잘 팔려서 출판사가 큰 힘이 되었다는 뒷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루 살로메라는 여인은 미인이기도 했지만 지혜가 많은 여인이어서 만나는 남자의 잠재력을 터뜨려주는 능력이 있었답니다. 음악가로 바그너가 있었고, 철인으로는 니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결혼은 다른 남성과 했다고 합니다. 하하 40년이 넘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합니다. 흔히 아가서를 예수님과 교회, 예수님과 교인 간에 있는 사랑이 이라고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부족한 우리를 신부, 누이라고 불러 주시는데 그 모습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여 주며 사랑하십니다. 생김 머리채, 이빨의 고르기, 입술, 몸에서 나는 냄새, 그에서 나오는 말, 아름답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런 표현들을 생각할 때 외양의 모양은 아니라도 신랑이신 예수님을 행복하게 하여드릴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갖게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모양들을 점검하며 점검하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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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 주오(아2:8~17)

4/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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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사랑스런 관계로 예수님과 교회,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표현해 줍니다. 사랑의 관계를 허물고 힘들게 하는 것을 새끼여우라고 하네요. 유의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아가서에서 예수님과 신앙인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로 표현하는 말씀들을 그냥 그대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8  아, 사랑하는 임의 목소리! 저기 오는구나.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서 달려오는구나.
9   사랑하는 나의 임은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빠르구나. 벌써 우리 집 담 밖에 서서 창 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아,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속삭이네. (남자)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오오.
11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비구름도 걷혔소.
12    꽃 피고 새들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소.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리오.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무화과가 열려 있고, 포도나무에는 활짝 핀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소. 일어나 나오오. 사랑하는 임이여! 나의 귀여운 그대, 어서 나오오.
14    바위 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 그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 주오. 그대의 목소리,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 주오.
15    "여우 떼를 좀 잡아 주오. 꽃이 한창인 우리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새끼 여우 떼를 좀 잡아 주오." (여자)
16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
17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돌아와 주세요. 베데르 산의 날랜 사슴처럼 빨리 오세요.

그리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 기쁨과 감사로 나가 맞이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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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부(아1:1~2:7)

4/2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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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간의 사랑과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죠? 그런 연인간의 사랑을 연결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더 복을 받은 사람(잠18:22)입니다. 거기다가 아내가 현숙하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여 받은 복(잠19:14)이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아름다운 향내가 있습니다. 흠과 티가 없습니다. 색깔이 검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문제가 될까요?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너무 예쁘고 곱고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답니다. 연애 해 보셨죠?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향해 예수님의 신부라고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엡5:23). 신랑의 사랑을 독차지할 신부의 조건은 흠과 티가 없는 것처럼 교회에도 흠(엡1:4)이 없게 하셨고, 티(엡5:27)가 없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흠과 티가 없고 아름다운 향내를 낼 때 여인으로 좋아하고, 마음으로 사랑함처럼 교회도 그러해야 합니다. 신자도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면 향기도, 그리고 흠과 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인에게 흠과 티가 있는 것을 주장하지는 않습니까? 흠과 티가 있을 땐 지혜로운 신부처럼 빨리 없애서 신랑이니 예수님께 누가 되거나 부담이 되지 않게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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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예수님(마27:45~56)

4/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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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유명한 신학자하면 칼 바르트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죽음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본문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후에 열린 무덤 문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가셔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에 부활하여 예수님처럼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감을 소망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부활 전에 죽음이 있어야 하고, 영광 전에 고난과 죽음이 있어야 함을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역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생애를 통해서 그 길을 가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죽음은 아픔의 절정이고, 죄를 지은 사람의 현실입니다. 그 길을 벗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소망, 부활 후에 거룩한 도성에서 영원히 사는 소망이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기쁨도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을까요? 예수님이 친히 부활을 보여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선진들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영으로 우리의 마음에 부활의 확신과 소망, 그리고 거룩한 도성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의 소망을 안고 예수님을 따라서 죽고자 노력하며 경건의 길을 갑니다. 문제는 자기가 생각하는 고난을 가려는 점입니다. 여기에 갈등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자기가 생각하는 고난의 길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의 길, 그리고 세상이 주는 고난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는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이고, 믿음의 사람은 말씀 위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갑니다. 힘들고 고달프고 고난이 있어도 그냥 갑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고, 경건의 길입니다. 죽음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 죽음만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향해 갑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 부활로 향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으며 죽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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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마27:32~44)

4/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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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제일 먼저 총독의 병사들이 나옵니다. 자신들의 상관인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장난질을 하고, 못살게 굽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행하는 것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어리석게 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번째의 사람은 구레네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힘들어서 못 가시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지고가게 된 사람입니다. 그도 나중엔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롬16:13, 막15:21). 제자들이 옆에 있다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 드렸으면 그 제자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을까만은 그렇게 한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제자도 남겨 두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해골 곳이란 곳에 이르셨을 때 군인들은 쓸개즙을 마시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맛을 보신 후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쓸개즙은 마취제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달아매어야 했습니다. 아픔을 잊게 하기 위해 그것을 마시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안 마시셨습니다. 뼈를 관통하는 아픔을 그냥 다 받아들이시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서 나누어 가졌답니다. 군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했겠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 메 달리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나 구원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이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나 보다라면서 조롱하였고, 이스라엘의 왕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예수님의 죽음을 알았을 텐데 전혀 어둡습니다. 악인은 보아도 보지 못하여 알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행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요?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것을 스스로 덮고 있는데 그들은 가책을 못받는 것일까요? 못 받고 있다면 참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을까요? 저를 용서하여 달라면서. 늘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양심을 울리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을 따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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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은 배웠다고 불리지 않습니다(마27:15~26)

4/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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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합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막말을 합니다. 막말이란 예수님을 구하려다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의 사주에 이끌리는 군중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살리지 못하게 된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하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향해서도 생명을 함부러 죽일 수 없는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대로 또는 누구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는 사람은 배우거나 배우지 않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지혜롭거나 지식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하는 감정과 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듯이 철저하게 무너지고 부서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교만함이고 미련함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왜 그렇게 죄 없는 사람의 피흘리는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호소하였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대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의식해서 자기의 신세를 망치는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잠16: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15:18절에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사람, 성을 쉽게 내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은 마5:9절의 말씀에 적용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화를 쉽게 내고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화를 내어서 싸움을 일으킵니까? 주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화를 낼 일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잠깐은 시비가 생기겠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기 때문에 본인이 다투면서까지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모함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참아야 합니다. 그냥 평화를 이루어가려고 힘쓰며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늘 주님을 두려워하므로 화 내지 않고, 주님의 판결을 따라 행동하시고, 모든 이와 화목하게 지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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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값 은돈 서른 냥(마27:1~10)

4/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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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하였다는 소식을 예수님을 은돈 서른 냥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자신이 죄없는 사람의 피를 팔아넘김으로써 죄를 지었다고 하며 돈을 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팔고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생각나고 자기 스스로도 잘못하였다는 죄책감이 들었나 봅니다. 유다가 던저 준 돈을 돌려받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생각도 한심합니다. 가룟 유다에게 준 돈은 성전의 돈이었나 봅니다. 그랬기에 그 돈을 성전 금고에 넣을 수 없다고 결정을 하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무덤으로 사용하기로 했답니다. 나그네의 무덤으로 사용한 돈은 피의 값이므로 성전 금고에 넣으면 안 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유다가 준 돈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의 계획을 폐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 앞에서 세 사람들을 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 세번이나 예수님을 도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린 베드로,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잘못임을 알게 하는 여러 정황을 알고서도 죄로 가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알려 주셔도 못들은 척 얼굴을 돌리는 사람들을 자기에게 적용할 때 자기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잘못은 한 순간이지만 회개할 기회를 주님께서 주십니다. 유다를 보면서 죽을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떠나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앞에 나가서 무릎을 꿇었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서 죽이라고 한 사람들, 자기를 때리고 못을 박은 사람들, 십자가에 단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잘 모른다고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여 주셨습니다. 잘못을 알았으면 주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용서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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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셨던 예수님(마26:57~75)

4/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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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혼자 간다고 하지요? 그러나 기독교인의 죽음은 사람은 없어도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을 붙잡은 사람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가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불법이고 매우 교묘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겐 그럴 권한이 없는데도 미리 꼬투리를 잡아서 실제의 권한이 있었던 총독 빌라도를 압박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만은 침묵하실 수 없어서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 편에 앉아있는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에서 메시아 사상을 본인의 것이라고 설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향해 신성 모독죄라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신성모독죄라고 합니다. 불법이 다스리는 곳임을 입증하는 곳이었고, 현장이었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아무도 그동안에 행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같은 일들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고 증언을 해 주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문까지 따라왔던 베드로는 그렇게 해 드릴 기회가 세번이나 있었는데 오히려 자기는 아니라고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잡히기 전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예행 연습까지 하였습니다. 자기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그것도 심부름을 하는 어린 소녀 앞에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억양과 발음이 예루살렘 사람이 아니고 갈릴리임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서 예수님을 증언해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증언해서 오히려 로마의 군영에서 보호를 받기도 하였고(행23:10),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보병 2백 명, 기병 칠십 명, 창병 이백 명의 보호와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가게 되었고(행23:23) 로마 군인의 보호와 호위를 받으며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죽고 사는 것은 주님의 계획에 달렸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도 됩니다. 혼자 외롭게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증언을 드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셔야 죽습니다. 이 원리를 알고 주님을 힘껏 증언하고 증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죽고자 하는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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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장로 교회
​Triangle Grace Korean church (PCUSA)

5001 Tudor Place Durham, NC 27713 
대표전화 919-530-9771 

은혜 장로 교회 
​서기남 목사  
주일 예배 : 주일 PM 2시
어린이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Youth 및 대학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다락방모임 : 주일 PM 3시 30분
금요 집회 : 금 PM 7시
새벽 기도회 : 토 AM 6시30
경건의 훈련: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 
​                       
목요일 오전  9시 20분
사랑방 모임:
각 사랑방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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