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매우 존경하고 귀감으로 여깁니다. 예수님과 다윗에 대하여 예수님의 이해는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으므로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1장이나 눅3장(31절)에서는 다윗을 예수님의 조상으로 언급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혈연의 관계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의 예로 표현하자면 법률적이고 형식적인 아버지의 혈통일 뿐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남자와 관계없이 성령으로 인하여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시며 본인을 표현하셨듯이 그의 자손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정리하여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알려 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야고보 선생을 통해서 말씀하신 내용과 일치합니다. 선생인 사람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선생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들입니다.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 윗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것들이랍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과는 다릅니다. 한 가지 의문은 예복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예복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추측할 뿐입니다.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헌금에 대한 것인데 예수님은 액수보다 그가 갖고 있는 것의 얼마를 냈느냐를 보십니다. 사람들은 헌금의 액수를 보지만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보신 것은 과부는 자신들의 재산에게 얼마를 부자들과 달리 자신의 전 재산을 내었다고 합니다. 헌금은 상대적으로 얼마를 내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이어야 하고, 누가 얼마를 내느냐가 아니라 정성껏 했느냐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그리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베풀고 섬기는 것을 가르치셨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주님의 뜻과 말씀을 받들어 순종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셨습니다. 따라서 알리고 인사를 받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답게 겸손하면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베풀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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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붙잡혀서 돌아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계시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떤 질문자는 예수님을 모함해서 굴레를 만들기 위해서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고, 어떤 사람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첫번째로 질문한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 사람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기적하듯이 예수님을 책 잡으려고 한 질문입니다. 로마의 돈을 갖고 와서 세금 바치는 질문을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계략에서 벗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사후 세계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죽은 후의 부부 상태를 질문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하다가 예수님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나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산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후라는 개념을 부정하시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 주셨고, 또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을 바르게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유대 관헌의 질문에 대해 신6장의 말씀을 갖고 설명해 주시며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가깝다는 말씀은 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함은 예수님이어야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오늘의 본문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하나씩 조금씩만 밋을 보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기 위하여 나기를 데리고 오라고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나귀를 가지러 간 제자들을 나귀 주인이 몰랐을 것인데 사용하시고 즉시 갔다가 주겠다는 말씀을 듣고 나귀를 갖게 가게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페르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어려움을 당앴을 때 왕의 비가 되어 있는 에스더에게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여 달라는 모르드개에게 난색을 표명하자 당신이 왕후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한 것이 아닌가라며 사명을 촉구했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본인을 위해 준비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합니다. 흰 말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을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종료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연호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런 환호를 받고,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이유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집이기 때문이십니다. 그곳에서 상인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길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불려야 할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가로지르면서 물건을 나르는 것도 금지하셨습니다.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필요한 것을 이용하여 악을 만드는 강도행위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제물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힘이 들고, 그렇게 가지 온 제물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면 큰 낭패가 됩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제물을 팔았고, 당시에 사용하던 로마 화폐를 유대인의 화폐로 바꾸어 주는 장사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유용한 것을 제사장들과 상인들이 이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성전을 가로지르면서 물건을 나르는 일이 편리하게 보여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사람이 임의로 편이를 추구하면 안 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삼하6장에 나오는 법궤의 이동에서 법궤를 만지다가 즉사한 웃사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편이한대로 해서는 안 됨을 다시 알려준 사건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 사들은 모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위협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을 주관하는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 뻔 합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를 어떻게 죽일지를 논의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사셨겠지요. 제자들은 내일의 일을 알고 대처하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저녁이 되면 성밖으로 나갔답니다. 불의한 일을 불의하다고 하면 본인이 죽을 줄 압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하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자칫 하나님을 앞서나 갈 수 있습니다. 해야 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서 악의 편에 서지 않음이 좋습니다.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왕으로 알았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을 하여서 예수님으로부터 칭찬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왕,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에게 붙들려서 죽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찬물도 그런 찬물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강력한 항의를 하다가 사단이라는 꾸중을 듣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일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가 소원해 진 듯하였으나 변화산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고 제자들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심으로써 약간은 진정 국면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아이를 쫓아내 주시고,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이런 류를 쫓을 수 없다는 방법을 알려 주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본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죽게 된다는 것을 세번째로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가 추가 됩니다. 장로들과 제사장, 서기관들이 이방인에게 본인을 내 주고 자신을 인계받은 이방인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세번이나 하시고, 하나님께서도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후원하시는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은 그 말씀을 여전히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상을 합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는 확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중에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자기들을 좌우 한쪽씩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돌아가시는 것인데 영광을 세상의 영광으로 착각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당하시는 십자가의 처형 왼쪽과 오른쪽에 앉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덧붙여서 자신들도 예수님께서 마시는 것을 함께 마시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좌우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은 본인의 권한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시면서 그러나 본인이 받게 될 세례는 그들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분기를 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불러서 본인이 사용하는 단어와 개념이 세상과 다름을 설명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본인을 들어서 본인은 섬기려고 왔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내 주어야 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성도 여러분, 종이 되어야 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본인의 몸을 드릴 준비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맹인이었던 바디매오, 곧 디매오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디매우는 예수님이 자기의 지역으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다위의 아들 예수님을 부르면서 소리, 소리를 칩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꾸짖었어도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가장 귀한 재산이었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을 향해서 갔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을 사람은 소망이 예수님께만 있음을 알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어야 함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쫓았으면 예수님의 철학과 삶으로 살아야 구원을 받게 됨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부귀, 영화를 주지 않으시고 죽고 섬기게 하십니다. 그곳에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썩어없어질 헛된 것을 구하지 않고 영생을 주시고, 소망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라고 의문을 품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즉은 부자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이해는 부자라도 부자에 메이거나 부자가 되려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에서도 몇 차례 말씀하셨지만 부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인격이나 가치보다 나름 척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세워주신 부자가 있다고 봅니다. 있었습니다. 돈에 메이거나 부자에 메여 살지 않고 주님의 나라와 주님, 그리고 교회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위하여 형제나 자매나 부모님이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가난하게 되지 않고, 이 땅에서도 돌려받을 때 백배나 더 받게 되고,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더 부자가 되고, 더 유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중심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께 받아서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의 청지기라고 합니다. 자기나 세상이 그 사람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복음과 교회가 중심인 사람은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부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래도 넉넉하게 살면서 시인의 고백처럼 잔이 넘쳐서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므로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하여 하란에 갔을 때 행한 것처럼 언제나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일정에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주님의 나라와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넉넉하게 사는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훈들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그 교훈들을 알려 주시는데 잘 들으십시다. 첫째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죄를 짓는 것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은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한 것들 생각나시면 회개하십시다.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은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자신의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잘라 버리라고 하시고, 발이 죄를 짓게 하면 찍어서 버리라고 하십니다. 두 손, 두 발을 가지고 불 속에 들어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한 손, 한 발을 가지고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죽음에 이르렀고,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기억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천부당만부당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 역시 손으로 죄를 많이 지었고, 발 역시 죄를 짓는 죄인의 길로 들어선 적이 많습니다. 회개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회개하고, 불못,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눈이 죄짓게 하면 그것을 빼 버리라고 하십니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보지 않을 것, 보아서는 안 되는 것 본 적이 많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죄를 지을 때 불도 꺼지지 않고, 자신을 파먹는 구더기가 죽지 않는 지옥으로 가게 됨을 기억하고 죄를 단호히 물리치도록 합시다. 그렇게 지옥을 생각하면서 죄를 짓지 않고 청결하여야 소금의 맛이 회복된다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맛을 잃으면 바깥에 던지어서 밟히게 된다고 알려 주시고, 소금을 쳐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겸손을 유지하라는 말씀아닐까요? 화목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나타내려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신 사람은 무엇보다 화목하고, 다른 사람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이혼을 반대하십니다. 저도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35년) 해 왔지만 아내와 많이 다릅니다. 때때로 이혼할 사유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내나 남편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셔서 뼈중의 뼈, 살 중의 살이 되게 하셨습니다. 돕는 베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돕는 베필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다시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결혼을 한 후에 또 이혼을 합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자기 본위로 사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베필로 주셨는데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는 구실로 이혼을 합니다. 이런 행위를 간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혼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쓰다음어 주시기를 기대한 어린이를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께서 오히려 화를 내시면서 어린들을 부르셔서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복을 받아서 잘 되어야 할 어린이들입니다. 그들을 축복해서 잘 자라서 하나님의 나라 큰 일꾼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힘도 없고 연약하지만 주님을 좋아해서 가까이 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하는 사람이 주님의 나라를 갖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 지으면 안 됩니다. 꺼지지 않는 불과 죽지 않는 구더기가 자기를 먹는 지옥으로 가게 됨을 기억하면서 죄를 짓지 맙시다. 이혼 안 됩니다. 주님께서 상대를 통해 주시는 복과 편의를 버리는 행위이며 주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주님을 폄하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을 기대하고 주님께 가까이 하려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 됩시다. 연약하고 부족하므로 주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주님께 나가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해서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참고, 잠8:17).안녕하세요? 코로나로 인하여 거리는 마치 큰 명절을 지내는 것처럼 한산하기만 하더군요. 명절과 다른 현상은 식품점에 갔을 때 진열대에 물건들이 없어진 곳도 있고, 있어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코로나라는 바이로서가 사람 사이에서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주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혹시 어려움이 생기시면 지체하지마시고 저에게나 또는 사랑방, 방장님들께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힘이 닿든대로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저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이사를 하려는 계획을 잘 진행하여 어제야 이사짐을 모두 운반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주일준비를하고 다음 주에야 이사를 마칠 것 같습니다. 몇 몇 교우들께서는 찾아오시기까지 하셨는데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바쁠 것을 아시고 SNS로 연락을 주시고, 격려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셔도 마음으로 후원하여 주시고 기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본문엔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두 내용 중 한 가지는 우리의 신앙에 궁금증을 풀게 하는 말씀이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의 사명에 핵심이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의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데 한 번으로 보지 못하게 된 사건입니다. 치료를 해 주셔서 보기는 보는데 정확하게 보지 못해서 사람들이 보인다고 하였는데 마치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서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눈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하시므로 완전히 보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으로 고쳐주실 때가 많지만 한 번, 두 번 계속 기도하게 하셔서 완성해 주시는 경우가 있음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의 목적이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본인이 누구냐고 물으신 후에 시몬 베드로가 그리스도라고 하자,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본인의 장래에 대해서 알려 주셨고, 그것으로 인하여 제자들과 부딪히셨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싹 잡아 당기면서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시몬에게 사탄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게 되고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잃은 사람은 구원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포인트는 이 세상은 음란하고 죄가 많은 세상이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야 한다 입니다.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하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연관된 것으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오실 때 그를 부끄럽게 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부인하고 주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면서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나라의 말씀을 전파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살아도 그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짧은 시간을 살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면서 이 세상을 매우 사랑하고 이곳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을 잃버려도 그리고 자신까지 잃어버릴 사정이 생겨도 그것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지혜와 믿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쁨으로 기대하는 주님의 백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께 나온 모든 병든 자, 귀신들일 사람들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하루도 끊임없이 먹여주신 일입니다. 시78:25절 말씀에서 그 만나는 하늘의 천사들이 먹는 양식이라고 알려 줍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이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여 주셨습니다. 아마 그 누구라도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백 만 명이 아니고 이천 만명이었어도 먹이셨을 것이고, 사십 년이 아니라 사 백 년 동안도 먹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식은 본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을 가리켜서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고, 본인의 피는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하늘 양식과 음료의 특징은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먹고 마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믿을 수 없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을 두렵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떠나 보내신 후에 제자들을 바다 건너 편으로 가게 하신 후에 본인은 기도하기 위하여 산에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네, 예수님의 휴식은 기도이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의 휴식과 자신의 휴식을 비교하여 봅시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제자들을 두렵게 합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바다 한 가운데에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셨는데 바다 위를 걸어가셨습니다. 바다 위를 걷는 일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배가 뜨는데 보통 큰 배가 아니라 커~다른 건물 이상의 배도 뜨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언젠가는 바다 위를 걷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소위 표면 장력을 이용해서 걷는데 그러자면 약간의 도구가 필요하겠지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지금도 아니고 2천 년 전의 일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본인들에게 일어나자 제자들은 기뻐서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남자 성인만 오쳔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먹여주신 일 그리고 모자람이 없음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기쁨이고 자랑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기쁨이고 감격이고 감사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좋고 사랑스러우심엔 틀림이 없지만 예수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좋은 신앙인, 좋은 제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심은 사람에게 두려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경건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잠언과 같은 지혜서들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을 경외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주 하나님, 성령님은 우리의예배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면서 기뻐하며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며 예배드리고 경배하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한 사람이 침례요한입니다. 침례 요한은 자기를 집중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예수님께 전달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침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 많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헤롯의 불의한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해 왔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던 침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오실 분을 기다려야 하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도 역시 사람인 것을 보이는 대목이었고, '여인이 낳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예리하고 정확한 지를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헤롯의 불의함을 언급함 때문에 감옥에 갇힌 침례 요한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하여 알려주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자기들의 불의함을 드러내는 침례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헤로디아는 춤을 춘 딸에게 나라 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한 헤롯에게 침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게 함으로써 침례 요한을 죽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경시할 수 있을까? 더더욱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으로 누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에 앙심을 품었다던지 그리고 그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서슴없이 헤곳과 헤로디아는 죄를 짓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불의한 일을 범하는 것도 작은 죄가 아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직접 죄를 짓는 그런 어리석고 무모한 죄를 짓습니다. 침례 요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명을 모두 다 하여서 죽어도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죽일 수 있고, 죽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침례 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어떻게 죽는가는 큰 의미가 없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순교로써 죽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에서 어떻게 그런 정도로, 더우기 하나님의 사람인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대하여 주님은 순교를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을 때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님과 같이 죽을 수만 있다면 복있는 사람이고 할 것입니다.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침례 요한의 죽음까지 자세하게 성경에 기록해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려주실 만큼 침례 요한에 대하여 주목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태생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위하여 죽었습니다. 비록 있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헤롯 가정을 통해서 죽었지만 어떻게 죽던지 침례 요한은 믿음으로 사명을 다하고 믿음으로써 순교라는 영광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롬14:8)는 영광스런 그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오늘 말씀엔 두 가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첫번째의 내용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예수님께서 큰 일들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보내시면서 크게 두 가지의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고 지팡이 하나만을 갖고 가라고 하셨고, 또 하나는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떠나면서 발에 묻은 먼지까지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원칙 두번 째의 원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본인의 고향에서 큰 일들을 이루지 않으신 것과 같은 내용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셨고,성령도 그러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사모하고, 가까이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동생들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장남인데 동생과 홀어머니를 두고 혼자서 떠났다는 그런 매정한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예수님의 집이 부자가 아니다. 아니면 고상하지 않다. 라는 등등의 이야기나 뒷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내용도 그런데 하물며 제자들이야 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 저런 일로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먼지까지 털어버림으로써 그들을 고발할 증거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온전히 주님만 바람으로써 입는 것, 신는 것, 기거하는 것, 먹는 것 모두 주님의 도움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아침 지팡이만 갖고 가라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지팡이는 목자가 갖고 있어야 했던 막대기와 지팡이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주신 것입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인도를 알기 위한 것이었고, 양들을 살려줄 때 사용한 것입니다. 지팡이를 요즘의 것으로 비유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겠죠? 전도자는 본인이 주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인 것을 입증할 성경이 필요하고, 이 성경은 본인 스스로도 주님의 뜻과 계획과 인도를 알려주는 성경이 필요합니다. 지팡이나 성경이 없으면 자기의 마음대로 주님의 뜻을 운운하면서 세상과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입에 그리고 손에 넣고 다님으로써 복음 전하는 사람의 역할에 충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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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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