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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가장 아픈 것(눅22:66~71)

3/3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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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은 육체적일까요? 아니면 정신적일까요? 육체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유는 육체가 아프면 정신까지도 아프니까요? 그런데 때로는 정신적인 아픔이 육체적인 아픔을 앞설 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요?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정신적인 아픔과 육체적인 아픔 두 가지가 동시에 있습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22:66~71절의 말씀입니다. 61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62 그리하여 그는 바깥으로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다. 63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때리면서 모욕하였다. 64    또 그들은 예수의 눈을 가리고 말하였다.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추어 보아라." 65    그들은 그 밖에도 온갖 말로 모욕하면서 예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67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믿지 않을 것이요, 68    내가 물어보아도 여러분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오. 69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오." 70    그러자 모두가 말하였다. "그러면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라고 여러분이 말하고 있소." 71    그러자 그들은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하겠소? 우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들었으니 말이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은 병사들에게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도 배반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똑 바로 보셨다고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똑 바로 보시면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요? 네, 그러기에 "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라고 했더니 깊은 잠에 빠지더니... 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라고 하셨고, 그 육신을 마음대로 하려면 기도해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까지 부인을 해서 한 사람도 예수님 곁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나를 떠날 것입니다."라는 예수님의 예견대로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은 홀로 심판과 모욕과 매와 십자가를 감당하시고 죽음으로 임하셨습니다. 예수님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 지금은 자신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기의 몫, 곧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변론하여서 증언하여 드리고, 예수님께서 지시는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나와 한 순간도 함께 할 수 없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증언하여 주는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도 천군, 천사들 앞에서 그를 증언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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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 주시는 예수님(눅22:47~53)

3/2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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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을 아시는 예수님은 잡혀서 죽어야 하고, 잡힐 때를 아셨고, 잡혀서 죽을 대를 아셨기에 오히려 순순히 자신을 잡으로 온 사람들에게 잡혀 주셨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은 잡으로 온 사람과 대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은 잡으러 온 사람의 편이 되어서 베드로가 떨어뜨린 한 사람의 귀를 고쳐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당신들이 강도를 잡듯이 나를 잡으로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오셨습니까?" ...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 아니시겠습니까?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22:47~53절의 말씀입니다. 47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시고 계실 때에 한 무리가 나타났다. 열둘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이 그들의 앞장을 서서 왔다. 그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왔다. 4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49    예수의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사태를 보고서 말하였다. "주님, 우리가 칼을 쓸까요?" 50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51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 그 사람의 귀를 만져서 고쳐 주셨다. 52    그런 다음에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강도를 잡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느냐? 53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나 너희는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죽어야 하고, 죽겠다는 약속을 하신 듯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반하는 유다와 집권층을 기다리고 계신듯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듯하여도 전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들은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준비되어 있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밤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나아가서 하나님을 몰랐기에 그들이 불법을 행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하는 듯한 방법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 가지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어쩌면 그런 세상이므로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협조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라도 본인이 죽어야 인류의 죄를 탕감해 주실 수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셨습니다.  알고도 본인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야 인류의 죄가 씻겨짐을 아신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길을 택하시고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깨달아지는 복된 고난 절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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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을 받을 사람들(눅22:24~30)

3/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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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나라에서 왕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왕권을 가졌을 때에 그들의 과거가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겸손하고, 섬기는 모습을 지녔다면 그때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지만 교만하고 잘 난체하고, 갑질이나 그외의 부끄러운 행위를 하였다면 부끄러움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눅22:24~30절의 말씀입니다. 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28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3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시중드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앞으로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왕권을 받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 나라에서 왕권을 가진 사람들은 섬기는 사람, 낮은 사람이라고 본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섬기는 사람인지 시중드시는 사람인지를 심판하게 되는데 본인이 그렇지 못하다면 후휘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왕권을 주시는 이유가 예수님과 함께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도 우리들도 예수님만큼 시련을 겪었다는 말씀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별로 한 것도 없고, 더더욱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영광이고, 감사이고, 의미인데 보잘 것 없는 그런 것들로 인하여 왕권을 주신다고 합니다. 앞으로 받을 왕권을 생각하고 기대하면서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기고 시중드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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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양(눅22:14~20)

3/2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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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각 가정에서 희생당한 어린양이 있었다면 신약에서는 각 가정과 심령을 위해 희생당하신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이 되었지만 신약의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본인이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십니다. 그리고 준비한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본인의 몸을 상징하는 빵과 그리고 본인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매를 맞고, 머리에 가장 아프다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손바닥과 발 정강이를 못에 박혀서 숨이 차서 죽게 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자신을 제자들에게 준다는 마음으로 성만찬을 나누어 주실 때 그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본인이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아야 하는 환경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당신부터 구원하라는 수모의 말을 들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하시고, 자신을 주셔야 그들과 우리와 내가 살 수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받아야 할 모든 아픔과 수모를 넘어서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고, 이 잔은 여러분을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그 중에 우리 한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오늘 말씀을 읽으십시다. 눅22:14~20절입니다. 14 시간이 되어서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니 사도들도 그와 함께 앉았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9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0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서 목사 Comments: 자신을 향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마음과 심령에 오롯이 들려져서 감격과 감사가 깊고 크게 자리 잡으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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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눈물(눅19:41~44)

3/2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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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예수님께서 우신 일들을 알려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십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9:41~44절의 말씀입니다.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42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44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 목사 Comments: 성경에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비롯해서 엘리사 선지자와 같은 분들이 우셨습니다. 그분들이 우신 것은 민족이 받을 징계의 고통을 보고도 우셨고, 개인이 받을 징계의 고통을 보고 불쌍해서 우셨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울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누구가 당할 심판과 징계의 아픔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는 여러 차례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철철 넘치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우십니다. 예루살렘이 받을 징계와 아픔을 보고 우셨습니다. 외양적으로 보면 정치와 전쟁의 이유이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죽였으니 당연히 그들이 심판과 감당하기 어려운 징계를 받지 않았을까요? 정작 십자가에 돌아가실 예수님은 본인이 받을 아픔과 죽음과 수치보다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파멸과 아픔을 보고 우십니다. 말씀으로 찾아와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과 모든 교인들에게 주님께서 문을 두드린다(계3:2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12절에서 "영접하는 사람,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찾아와 주신 주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셔서 징계의 아픔과 슬픔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격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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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오해(눅9:60~62)

3/2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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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말씀(눅9:57~58)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을 거절하신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거절하신 사람이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구원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제자에 대한 거절이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인 마태의 설명에 의하면 '거절을 당한 사람은 율법였다(마8:18~20).'고 합니다. 본문을 먼저 읽겠습니다. 본문은 눅9:59~62절입니다. 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서 목사 Comments: 어제(앞)의 말씀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뒤쳐지려는 사람에 대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만류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맥락에서 발견되는 내용은 첫째로, 그들은 이미 불림을 받은 제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발견되는 내용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의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하여 달라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하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그가 제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그가 제자였다고 합니다(마8:21, 참고로 마태복음에서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음). 이런 누가는 이런 두 가지의 정황을 설명하는데 저는 분위기가 예수님을 공격적이었다고 이해합니다. 율법사를 거절하는 것에 편승해서 제자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 무리들을 해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미 제자인 사람들은 선택과 불림을 받아서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사탄의 모함이 들어있는 그런 분위기였지만 예수님은 사탄의 모함을 지적하시거나 꾸중하지 않으시고, 논리적으로 분위기 안전하게 단속을 하십니다.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장례를 하려는 제자에게 '죽은 사람은 죽은 자에게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망자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유교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도전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에겐 더 이상의 기회나 의무가 없다고 이해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매우 실제적입니다. 그렇다면 기독인들은 불효를 조장하거나 불효자들인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부모님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그 어느 사람이나 문화 종교보다 매우 엄격합니다(참고, 출20:12, 출21:15, 레20:9, 잠30:17). 단지 죽은 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의무감이나 효도가 의미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의 장례의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장례를 일년 동안 진행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 묘에 안치합니다. 일년이 지나면 뼈만 남은 시신을 무덤 안쪽으로 옮겨서 다른 가족들의 시신과 함께 둡니다. 그런 과정이므로 깁니다. 그런데 두번째의 제자에게 말씀하신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며 활동하는 것은 매우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죽은 자에 대하여 관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함이 좋습니다.  말씀드린대로 가족에게 안부를 한 후에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를 금지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더더욱 구약에서 엘리야는 엘리사를 부른 후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겠다는 엘리사를 허락합니다(참고, 왕상19:19~21). 예수님께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겠다는 제자를 불허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 '저는 분명한 대답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 저런 것 모두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예수님께서 안부를 전하겠다는 제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혹시 다른 대답을 알게 되시면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고이고, 우선 순위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가장 중요시 여기며 그 나라를 위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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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고, 당신은 오지 마세요(눅9:57~62)

3/2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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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그를 정중히 거절하셨으나 다른 사람은 예수님 따르는 것을 지연시키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눅9:57~62절입니다. 57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께 거절을 당한 사람은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거절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로 사마리아의 시몬이란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을 내리게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고 권능을 알라고 하자 베드로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했다면서 그를 향해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행8:14~24)'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거절하셨던 이유를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람을 아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룟 사람 유다 한 사람으로 되지 않았나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나 믿음으로 시작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려는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서 세상의 욕심이나 관심을 충족시키려는 사람에게는 닫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 역시 돈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배반하고 돈을 던지고 죽습니다. 비참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소유하거나 누릴 수 없음을 잘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셔야 한다(마6:3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를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으신 분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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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의 죄악(창4:1~8)

3/2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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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재앙은 계속됩니다. 재앙은 재난, 병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재난과 병과 같은 재앙이 옵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에덴에서 쫓겨나서 하나님을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 가운데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죽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보고 알고 계십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창4:1~8절입니다. 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ㅍ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가인이라는 말과 비슷함'>얻었다." 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6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8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서 목사 Comments: 이 모든 것을 모두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오늘 코멘트의 제목을 두번째의 범죄라고 하였습니다. 두번째라 함은 첫번째가 있음을 의미하고, 마지막이라 하지 않고 두번째라 함은 세번째, 네번째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두번째의 범죄가 마지막 범죄가 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얻어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엡4:22~27). 그 사람, 그 모양을 그냥 두면 세번째, 네번째 범죄가 계속 되고 후회와 징계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 지시고, 죽게 하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믿는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범죄를 짓는다는 것은 심각한 고통이며 괴로움입니다.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예수를 자신의 주로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새로운 존재, 새 사람이 됨으로 죄와 관련이 없는 사람, 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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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의로운 사람(눅9~14)

3/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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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과소평가하고, 나아가서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의 근거를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 내용이 본문 눅18:9절에 있습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8:9~14절의 말씀입니다. 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서 목사 Comments: 스스로 의롭다며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한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죄인이라면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 세리가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14)고 하십니다.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까요? '나는 그보다 더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운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며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픔과 한계를 불쌍하게 여길 것입니다. 요즈음 'Me too' 운동으로 사회에 만연된 불의한 일들이 속속히 드러납니다. 누가 'Me Too' 운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더더욱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음에 여인을 보고 음란함을 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Me Too' 운동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광범위하고 깊게 드리워져 있는 음란과 폭력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자신이 지목되지 않은 것에 힘주어서 나는 아니므로 사회의 흐름에 편승해서 지목된 사람만이 죄인인양 범죄자로 몰아가지 말자는 말입니다. 하지 않아야 하지만 지목된 그 사람들만을 지적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숨기는 또 다른 죄를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행위에 대하여 교만이라고 하시면서 나름 믿음 생활을 하는 자들을 지목하십니다. 교만한 자에 대하여 잠16:18절에서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고 경고합니다. 솔직해 집시다. 그리고 타산지석,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경계심을 갖고, 죄를 회개하고 죄의 그늘과 영역에서 벗어납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죄를 벗어나게 하시는 또 다른 은혜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새 삶을 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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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고전6:12~20)

3/1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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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국과 미국에서는 'Me too'운동으로 나라가 많이 정화되길 기대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생각해도 강간과 간음, 그리고 성폭행과 성추행은 나라 밑바닥에 가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무절제가 사회를 썩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이미 성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란한 마음을 품음이 간음'이라고 하신 교훈(마5:28)을 말씀드렸습니다. 고전6:12~20절에서는 바울을 통해 왜 간음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십니다. 그 말씀을 읽겠습니다.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서 목사 Comments: 음행은 성령께서 계심으로 성전이 된 자기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말 그대로 불경죄입니다. 자기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성령이 계시는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간음입니다. 그동안 몰랐으면 회개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자기의 몸을 깨끗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요즈음 'Me Too'운동에서는 창녀와 몸을 섞는 간음죄는 고려를 하지 않는 듯하지만 성경에서는 그것까지 포함합니다. 이유는 성령이 계시는 자기의 몸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 지워주신 남녀 이외의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하여서 몸을 여러 개로 나누는 것은 간음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성관계를 통해서 한 몸이 된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남녀를 짝지워주셔서 한 몸을 이루게 하셨지 여러 몸을 이루게 하지 않으심을 깨닫고 그간 오해하고 잘못하였으면 회개하고 앞으로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는 칭찬을 들은 다윗까지도 감당하기 힘은 징계를 받게 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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