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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세번을 말씀하신 내용(눅18:31~34)

2/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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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세번은 끝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도 세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게세마네 기도도 세번을 하셨고, 바울 사도도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인 장애를 위하여 세번이나 기도하였다(고후12:8)고 합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세번째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박해와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며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8:31~34절의 말씀입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곁에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를 두고 예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32    인자가 이방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조롱을 받고, 모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할 것이다. 33    그들은 채찍질한 뒤에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34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들은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께서 본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박해를 받고, 죽으나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는 그 근거를 예언자, 곧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계획을 세우면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만큼 중요합니다. 이유는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세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제자 뿐 아니라 그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들인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신 모든 말씀을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시고, 요5:3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어야 하고, 나아가서 주야로 읽고 묵상해야 하는 책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도 예수님이 부활하심처럼 부활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전제는 죽어야 합니다. 롬6:4절 말씀에 우리도 새 생명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죽지 않으면 새 생명도 주님의 나라에도 살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도전하십니다.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으며 예수님처럼 죽어야 예수님과 연합하고 새 생명을 받고, 새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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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의 커트라인(눅18:24~30)

2/2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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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을 갈 때에는 예비고사제도가 있었고, 지역별로도 대학에 응시할 수 있는 커트라인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두 그룹이 나누어집니다.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가지 못하는 사람,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상급과 오는 세상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8:24~30절입니다. 24    예수께서는 그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26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2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28    베드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버리고서 선생님을 따라 왔습니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서 목사 Comments: 커트라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의 재물을 모두 버려야 하고, 그 다음은 주님을 따라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따른다. 예수님께 믿음이 없으면 그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하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나중에 들은 말씀이 자기가 투자한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 제사장들에게 붙잡혀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기 맞은 기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고 그러면  어떻게 하시냐고 그랬더니 사탄이라고까지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사람의 일로 예수님을 붙잡는다고 꾸중까지 하셨습니.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사기를 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잡혀서 죽는다는 말만 갖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죽은 후에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아나 봅니다. 베드로가 그 예수님을 인정해야 하였음은 변화산에서 하나님까지 나서서 예수님을 두둔하시며 예수님을 지지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베드로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다시 물고기를 잡으로 고향으로 갔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과거의 한 때로 생각하고,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끝이 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찾아가셔서 격려하시고 성령을 받게 하신후에 복음 사역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과 동거동락하였겠지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커트라인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갑절로 보상을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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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하나님의 나라(눅18:18~23)

2/2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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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눅18:18~23절입니다. 18    어떤 지도자가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1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20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1)'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21    그가 말하였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3    이 말씀을 듣고서, 그는 몹시 근심하였다. 그가 큰 부자이기 때문이었다. 

서 목사 Comments: 부자를 포함하여 사람들에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부자를 포함하여 유다의 산헤드린 회원이든 니고데모도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영생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생에 대하여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하고,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재산을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딱히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을 최고로, 제일로 알고 그렇게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제 1항이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행동이나 습관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돈은 참 중요하고 사람을 든든하게 합니다. 돈이 있으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돈이 없어도 아니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믿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바란다면 그 사람은 영생을 얻는 사람이고, 영원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은 그가 돈을 사랑하는 만큼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기의 것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만큼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이 비밀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믿음으로 포기하는 것은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6:19~21).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한시적인 이곳에다 자기를 투자하지 않고 영원한 곳에다 쌓습니다. 하늘나라에 부요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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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도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주장(눅13:10~17)

2/1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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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본문을 비롯하여 베세다의 연못 가에 있던 38년된 중풍병 환자를 고쳐 주신 것을 비롯하여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던 맹인을 고쳐 주신 날이 맹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신 일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절대 용납을 하지 않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본문에서는 회당 장이 문제를 삼으며 '안식일 외에 엿새가 있는데 왜 꼭 안식일에 고침을 받으려 하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집 짐승을 먹이지 않는가? 라고 말씀하시면서 십 팔년 동안 허리 구부러지는 병마에 걸리는 여성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 안식일 논쟁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해하시는 안식일과 바리새인들이 이해하며 지키는 안식일의 개념이 많이 다르게 들립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본인이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에도 필요하면 사역을 하셨습니다. 본문이 그 대표적이고, 이미 예를 들은 몇 몇 사건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 준수를 명령하신 것은 그날에도 생업을 위해 일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만나를 주실 때에도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 날까지 두 목을 주셨습니다. 두 목을 가지고 왔어도 다른 날과는 달리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날에는 욕심을 내어서 많이 가지고 왔을 때 썩어서 벌레와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나 병마에 걸리거나 장애가 있을 경우에는 안식일에 쉰다고 하여도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을 불편과 병마로부터 풀어주셨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모두 회복과 쉼을 위한 시간들입니다. 욕심과 학대로부터 쉬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신데 종교인들은 그날의 근본 개념을 무시하고 반드시 지키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 안식일에 본인을 비롯하여 일하는 분들까지 일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해야 합니다. 그날이 비록 다른 날보다 잘 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본인 대로의 다른 날로 안식일을 정하여 쉬면 되지 않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독인들의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달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로 정하여 지키기 때문에 안식일을 변경하여 자신만의 안식을 갖는다고 주장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가서 쉼이 안식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함인지 자신의 영리를 위한 개인의 생각인지를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식을 기억하여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려 한다면 안식일이던지 주일이든지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킬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풀어주심과 쉬게 하심'을 기억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3:10~17절입니다.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12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당신은 병에서 풀려났습니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15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이여, 당신들은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소?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무리는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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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귀한 존재들(눅12:4~7)

2/1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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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안에서 본인의 가치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찍이 시편 기자는 16:3절에서 '땅에 사는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새보다 더 귀하다.'고 하시는데 사람을 참새와 비교하시는 것이 아니고, 참새들도 하나님께 돌보셔서 한 마리도 그냥 떨어져 죽지 않게 하신다고 설명하신 후에 그 참새보다 제자들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본문 처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친구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귀중한 존재들이므로 마땅히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보이지 않고, 죽은 후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연결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제자들은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세워주시고, 가장 존귀한 존재는 마땅히 세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올려주는 것으로 유혹하는 사탄의 말에 넘어가서 죽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외에는 우리를 올려주시고, 온전케 하실 존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배우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은 눅12:4~7절 말씀입니다. 4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5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7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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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피새인들의 외식(눅12:1~3)

2/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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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위선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교회가 사용하는 새번역 성서에서는 위선이라고 하고, 개역 개정에서는 외식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왜 외식을 할까요? 나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사람, 경건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안 되니까 진정으로 거룩하거나 경건하지 못하고 외식일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외식자들, 위선자들이란 오명을 예수님께 듣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다워야 은혜가 있고, 목사 다워야 말씀에 권위가 생기니까 외식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선을 경계하시면서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듯이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알려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씩 하나씩 고쳐감이 더 지혜롭습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기도하고 회개해서 하나하나 자신에게 있는 위선, 외식 모두 던져 버릴지라도 깨끗하고 거룩한 경건이 아름답게 빛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눅12:1~3절입니다. 그 동안에 수천 명이나 되는 무리가 모여들어서 서로 밟힐 지경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먼저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여라. 2    가려 놓은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 놓은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것들을 사람들이 밝은 데서 들을 것이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그것을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선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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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이렇게 좋습니다(눅11:5~13)

2/1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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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고, 나중에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기도할 일 있으신지요? 기대하십시요. 기도하면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신이신지를 알게 되고, 기도할 때 본인의 믿음을 더 깊고, 크게 갖게 됩니다.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떤 복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비결입니다.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11:5~13절의 말씀입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6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7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서 목사 Comments: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고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기도를 간증하며 새 노래를 부르시길 축복합니다. 기도는 이론이나 생각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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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못 쫓아낸 제자들(눅19:37~43)

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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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입니까?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는 신앙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귀신을 못 쫓아냈을 때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선생님은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이은 제자들에게도 필수적인 해야하는 일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귀신은 물론이고, 귀신들의 통치자인 사탄의 핵심을 파멸시키셨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사탄과 귀신들이 마치 파르티잔처럼 여기저기시 몰래몰래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까지도 농락을 하지만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든든한 사람에게는 얼씬도 못한다는 점입니다. 행 19장에 제사장 스게와의 의 아들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능력이 있음을 익히 경험하고 자신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가 그들에게 없음을 안 귀신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라면서 공격을 해서 상처를 입고 도망을 갔다(행19:11~16)는 귀신들의 영악스러움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해서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더욱 성령충만해서 예수로 가득한 신자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귀신을 담대하게 쫓아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탄과 그 수하들을 괴멸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귀신에 끌려 다니는 이유는 자신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그것들을 가만두게 하지 않으십니다. 귀신과 그 우두머리 사탄이라 할지라도 성령충만한 믿음을 준비하고 있으면 한 길로 왔던 귀신이 열 길로 도망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그처럼 파괴력이 있습니다. 정히 귀신과 사탄이 걱정이 되고 두려우시면 '어떻게 해야 자신들도 귀신을 내 쫓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듯이 기도하시면 됩니다(막9:29). 사탄을 꼼짝 못하게 하신 예수님은 본인의 이름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왕이시요, 주인이심을 확신하고 그렇게 살면서 귀신, 사탄을 만났을 때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그것들을 무리치십시오. 사탄과 그 수하들은 도망가기에 바쁠 것입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9:37~44절의 말씀입니다. 37    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38    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39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42    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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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과학적) 판단일까요? 믿음의 순종일까요?

2/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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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신앙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이성을 믿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성은 과학과 경험에 기초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주님 앞에서 이성과 그 이성의 기초가 되는 과학이 진리나 현실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본문은 눅9:10~17절말씀입니다. 10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이야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11    그러나 무리가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12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13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14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15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16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17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서 목사 Comments: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과학, 그리고 자신이 해결하지 못했던 한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한계나 과학, 나아가서 그런 역학 관계 속에서 경험한 자신의 지혜를 신뢰하거나 의지하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의 행위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어리석게 만드는 일입니다. 민주주의 나라에 살면서 공산주의를 언급하고 그런 나라나 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임을 천명하는 일입니다. 그곳에 살지 왜 민주주의의 나라에 삽니까? 전도하기 위해서라구요? 살아보세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안에 살면서도 과학이 어떻고, 이성이 어떻고 하면서 사람을 기본으로 생각을 도구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 열 두명을 보냈을 때에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대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죠? 그렇게 좋고, 멋진 집과 생활 여건을 주신 것들을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게 보고해서 그 나라를 기대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잘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어떻게 가서 살겠냐는 겁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민첩하고 그들의 집은 성과 같고, 그들이 이루어 놓은 논밭은 자기들이 상상할 수 없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메뚜기 같은 자신들이 그런 곳을 어떻게 정복해서 그곳에서 살 수 있냐면서 불부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뚜기 같은 자기들을 그곳에서 살게 하시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좋은 것을 주시는 것도 문제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머물 때 40 년 동안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은 굶주리지 않고 늘 먹는 문제 걱정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그 나마 물고기 두 마리, 보리 빵 다섯개나 있었습니다. 주님께는 몇 개가 문제가 아닙니다. 몇 개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주님께 헌신하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면 그냥 아멘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받으면 됩니다. 그것입니다. 과학자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과학을 우리는 진리처럼 견고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해결하지 못하는 생각과 경험을 진리처럼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신기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생각, 이성, 과학, 경험을 믿지 말고 주님을 믿고, 주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현명하고, 진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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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건, 다른 결과(눅8:11~15)

2/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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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같은 조건임에도 다른 결과가 크게 나타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본문을 읽겠습니다. 눅8:11~15절입니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2    길가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그 뒤에 악마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므로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13    돌짝밭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동안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것들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서 그것을 굳게 간직하여 견디는 가운데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서 목사 Comments: 우선 말씀의 맛도 보지 못한 길가와 같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하여 의심하고, 경계하고, 문제를 삼으려고 작정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들과 같은 사두개인들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의 불신에 편승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해 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말씀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전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로 돌짝 밭과 같은 사람, 그리고 그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 바위가 묻혀 있는 사람은 맛은 조금 보았다 하여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하여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복음과 예수님을 위하면 반드시 손해가 오고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올 때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복음에서 떠날 구실을 변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번째의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맛보는 하늘나라의 능력과 은혜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 자신을 맡겨서 성령으로 자신이 깨어져서 자신이 영의 사람으로 reset될 때야 비로소 깊고 진정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됩니다. 세번째로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은 세상의 염려, 근심이 있으므로 예수님을 믿고, 복음으로 사는 것인데 그것을 해결받고도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가지 못함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그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재물과 인생의 향락'이라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적은 복음으로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뒤이어 자기를 붙잡고 있는 재물에 대한 욕심과 인생의 향락이 하늘나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재물 붙잡고 있어보고, 인생의 향락을 추구하면 그는 병에 들게 될 것이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여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거듭거듭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재물(인생의 향락) 중에 세상의 재물을 선택함으로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것은 신앙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세사의 재물과 인생의 향락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이탈하는 큰 요인이었기에 잠언 23:4~5과 딤전6:9~10절에서 재물에 대한 욕망을 경계하라고 강하게 교훈합니다. 네번째로 30배, 60배, 일백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그것을굳제 간직하여 견디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순종하여 지키는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요한 계시록에 일곱 가지의 복이 나오는데 처음과(1:3)여섯번째(22:7)의 복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복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기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부드럽든 딱딱하든 들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듣고, 지키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 감동을 받아 은혜롭고, 지킴으로 결실을 맺는 복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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