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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가장 좋은 분(눅11:5~13)

2/2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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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름다운 봄날 아침입니다. 아침을 비추는 햇빛처음 주님의 은혜와 인도가 우리의 길을 밝혀 주셔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들어도 들어도 귀하고 좋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어주신 말씀은 이웃의 친구가 자기를 기대하고 온 친구를 피하고 싶었지만 드어주지 않으면 그가 계속 졸라댈 것이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 친구의 초청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한 이웃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저녁 늦게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 친구는 그 손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대접하려는데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이웃 집 친구에게 가면 무엇인가를 얻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갔는데 이 친구가 자야 된다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님은 반드시 대접을 해 드려야 할 분입니다. 그래서 귀찮아 하고 싫어하는 친구를 알면서도 계속 때를 써가면서 졸라서 마침내 음식을 얻어서 가져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는 자정이 다되어 자기 집에 찾아온 신혼 초의 어린 신부를 말합니다. 사정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오죽하면 자정이 다 되어 목사님 댁을 찾아왔겠습니다. 다정하고 친절하게 신부를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어린 신부는 임신까지 했더랍니다. 남편으로부터 떠나학대를 받고 집에서 쫓겨나서 목사님 댁을 찾아간 것입니다. 편집자는 말합니다. 목사의 집을 찾을 곳이 있으니 이 신부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필요와 아픔과 고통을 토로하고 부탁할 사람이 있음, 그리고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사람이 있음, 더더욱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있음은 참 다행스럽고 복된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찾아갔을 때 절대 거절하지 않으시고 갔다가 다시 오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낮추어보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를 멀리 세우지도 않으시고 돌려보내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를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 주시고,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언제나 공급하여 주십니다. 거기다가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죠? 아픔이 있으시죠? 답답한 것 있으시죠? 이 시간 주님을 찾아가십시오. 주님은 절대로 외면도 차갑게도 대하지 않으시고 온화하고 따뜻하고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주님께 말씀드리세요. 아픔, 필요한 것, 답답함 모두 들어주시고,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주 안에서 능력있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십니다. 좋으신 주님, 우리를 언제나 행복하게 하시는 주님께 가셔서 자신의 고충과 필요와 아픔을 말씀드리셔서 하늘이 아름답고 밝게 보이는 시력이 회복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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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잊지 마라(마20:1~16)

2/2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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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주인과 노동자들의 임금 지불을 통하여 예수님은 구원받는 것을 설명하십니다. 비유를 이렇게 축소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찍 믿은 사람이나 늦게 믿은 사람이나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일찍 믿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삽니다. 그러나 늦게 믿은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 안에서 조금 밖에 못 삽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습니다. 포도원에 새벽부터 고용된 노동자는 한 데나리온만을 대가로 받지 않았습니다. 첫째, 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심, 둘째, 돈을 벌어서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소망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갖게 되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셋째, 노동을 하면서 누리게 되는 포도원의 베네핏이 있을 것입니다. 물도 먹을 수 있겠고, 한국의 경우는 점심과 큰 식사들 중간에 먹는 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사람, 특히 5시까지 자기에게 일을 시킬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런 음료수나 식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베테핏은 일을 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기구들을 사용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은 그날만이 아니라 다음날 누구에게든 장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혜택을 받고 나중에 돈까지 받게 됩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일찍 믿은 사람들 역시 많은 혜택을 받습니다. 장래에 대한 불안은 물론 현세를 살아가면서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움과 불안이 없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키는 은혜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수행하라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강건함도 받습니다. 나아가서는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들 안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효과적으롤 잘 감당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편집지가 지적하듯이 하나님 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은 수고나 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교회에서 사역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자신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잘 할 수 있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했다라고 말한다면 아직 예수님을 주로 믿고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모든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더더욱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한 형제와 자매의 관계를 이루게 되면 기뻐하면서 섬기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뻐하며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약속하신 구원이 점차적으로 밝아지고, 구원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기쁨과 평안도 동시에 누리게 될 것입니다. 봉사, 헌신, 섬김 모두 주님이 잘 하라고 주신 은혜들입니다. 자신의 것이라고 오해하므로 주님 안에서 주시는 은혜들을 잃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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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진정한 기쁨(눅17:7~10)

2/2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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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동안 청지기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물질, 건강, 시간 심지어는 생명도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죄와 사망에 종되었던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이 말씀을 동의하시면 오늘 본문은 자신을 진정으로 기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 줍니다. 
청지기가 주인을 위해 바깥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인이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가 준비된 음식을 먹을 때에 시중을 들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 먹고 마신 다음에야 청지기에게 먹고 마시라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상황은 청지기가 그렇게 성실하게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청지기에게 고마워하겠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10절 두번째 단어에서 '너희도'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에서 비유의 청지기는 주인의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라는 분위기입니다. 청지기나 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고, 할 뿐이라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가르치심입니다. 청지기의 자세는 '자신은 쓸모없는 종으로 하여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랍니다.  우리 말로 '주인의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을 섬길 수 있는 것, 그리고 주인을 위해 충성할 수 있는 것'을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살가아는 동안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되면 일할 때 불평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섬기는 사람의 자세는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을 봉사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의 섬김과 봉사를 받은 주인이나 다른 사람이 즐거워한다면 그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청지기이고, 종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돈이나 더 나은 포지션과 같은 다른 무엇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수고한 봉사와 수고의 대가를 받으려 한다면 그 청지기는 제대로 된 청지기가 아닐 뿐더러 불평과 원망과 상처와 쓴 뿌리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가나 이윤을 바라고 봉사하고 섬기면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청지기로서 아무 대가나 이윤을 바라지 않고 섬기며 수고한다면 자신의 봉사를 받은 사람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됩니다. 문제는 처음에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에서 성령님은 우리가 그 청지기라고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그런 청지기의 마음으로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주인, 혹은 돈이나 더 나은 다른 조건을 기대하며 봉사하고 섬긴 사람입니까?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불평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오늘부터 청지기로서 살아보십시다. 주인이나 주인께서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은 너무 과분한 것이 라고 생각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는 '나는 마땅히 행할 것을 한다. 했다.'라는 마음으로 살아보십시다. 그렇게 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얘야, 참 잘했다. 네 마음이 어땠니?"라고 물으시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지혜에 가장 뛰어난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청지기의 마음을 갖고 기쁨이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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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서하심처럼(마18:21~35)

2/2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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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적용이 분명합니다. '무엇이든 용서하세요.'입니다. 편집자는 예로 농구 코치 Monty Williams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내가 네 자녀를 남편에게 남겨두고, 예측할 수 없는 운전자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장례식에서 Mr. Williams는 주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처럼 용서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큰 용서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과 백 데나리온 용서하지 못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편집자는 만 달란트를 백만 달라로 계산했습니다. 만 달란트는 그것 보다 훨씬 많은 돈입니다. 일 달란트는 금으로 34 kg이고,  어떤 분은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노동자 6천 일이라고 합니다. 그 가치로 계산하면 6천만일입니다. 반면 백 데나리온은 백일입니다. 두 양을 한번 비교해 보면 비교가 안 됩니다. 6천 만 일 탕감받은 사람이 백이 탕감해 주지 않아서 6천 만일을 감옥에 갇혀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종신형을 몇 번도 더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번을 용서한다는 베드로에게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무엇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상처, 쓴 뿌리, 원한, 보복 관계의 이유를 들으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못된 친구가 괘롭힌 일, 상사가 자기를 해고시킨 일, 부모님이 학대한 일 등등 입니다. 그런 일도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용서하고 아예 완전히 탕감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못하지만 용서하고 탕감하게 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본인이 어떤 사람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원한 관계에 붙잡혀 있는 것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원한 관계와 보복에서 풀어주시는데 정작 본인 스스로가 원한과 보복의 감옥을 자원해서 들어가 있지는 않으신지요? 용서하고 탕감하여 주십시다. 그렇게 하고 주님이 주신 자유와 평화의 나라에서 깊숨을 쉬면서 기쁨과 감사의 세상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한번 본인이 용서하지 못한 사람과 그 사람과 관련된 사건들을 적거나 기억해 보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씩 하나씩 지우십시오. 마음이 시원하게 되고 그곳에 주님의 평화가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스스로 원한과 보복, 화와 미움의 감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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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재물(눅16:1~16)

2/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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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재물을 불의하다고 규정하시는데(9) 동의하십니까? 왜 불의하다고 하셨을까요? 재물을 사랑하면 평생동안 살아온, 살아갈 직업을 잃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을 제대로만 사용하면 직업을 잃지는 않게 합니다. 물론 불의하다고 하지만 재물은 나름 쓸모도 있고, 몇 가지 구실을 합니다. 생활도 편하게 하고, 본인이 갖고 싶은 것도 소유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쌓아 두거나 그것을 너무 사용하면 직업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천국도 못가게 합니다. 이유는 재물이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하도록 유혹하여 넘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을 제대로만 사용하면 나름 유익하기도 하고 쓸모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본문의 부자 주인과 청지기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이 볼 때 청지기는 자기의 재물철학과 달랐습니다. 주인은 자기의 재물을 다른 사람들, 곧 재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주도록 청지기를 세웠는데 이 청지기는 오히려 모으는 일에 집중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아마 부자 주인이 모으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 청지기는 좋은 청지기였겠지만 주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고 통지를 받고서야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주인은 그것이라도 좋게 보아서 그를 칭찬하였답니다. 이런 비유를 하시면서 주님은 빛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보다 주님의 것을 나누는 일을 더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늦게 배운 도둑이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잡힌다는 말처럼 빛의 자녀들이 돈에 빠지게 되면 더 움켜잡고 나누지 못하다가 주님 오시는 것도 잊어버리고 세상과 함께 망한다는 말씀 아니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라고 하십니다. 저의 이해로는 주님이 주시는 재물로 이방 사람들을 복음으로 데리고 오라. 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주님이 정의로운 일, 나누는 일, 섬기는 일하라고 재물, 권력, 건강, 기회, 많은 것들을 주셨는데 썩어없어질 세상에다가 사용한다면 오히려 빼앗으셔야 하겠지요. 오히려 빼앗으셔서 아무 것도 없게 하시는 것이 사람도 잃지 않고, 주님의 명예도 손상시키지 않는 일이 아닐까요? 편집자는 미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들 전부를 향해서 메시지를 전다하시는군요. 제가 Duke대학교의 창시자 생가를 방문하였었습니다. 그분의 생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 보다 훨씬 작고 남루하고, 볼품이 없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사는 집이 좋은가? 나쁜 집이나 옛날 분들이 사는 집보다는 좋지만 부자들의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 미국,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의 현주소입니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겠다고 자기들이 해야 할 의무들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미국과 캐나다로 온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와서는 들어온 사람들까지도 내 쫓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트럼프는 물론이고, 미국의 부자들 나아가서 미국, 캐나다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직업을 잃어버리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읍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나누어 주라고 맡기셨습니다. 그 덕분에 잠시라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서 부지런히 나누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업을 잃고 홈레스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천국에도 못 갑니다. 끔찍한 일이죠? 자기가 갖고 있는 것 나누어 주라고 맡은 것임을 알고, 제대로 현명하게 나누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 캐나다와 같은 나랏 일 투표할 때 잘 하십시다. 그리고 미국, 캐나다의 불의한 일들을 고치겠다고 회개하는 사람들 편에서 함께 행동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일부터 하시길 권면합니다. 물론 저도 포함시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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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여야 하고, 그 보다 좋은 것은 죄를 짓지 않는 일입니다(시51:1~9)

2/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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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에게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반대하신 이유는 그가 손에 피를 뭏혔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약점을 갖고 반대하지 않으시고, 다윗의 최대 장점으로 성전건축을 반대하셨습니다. 다윗의 죄악은 회개와 함께 이미 용서하셨다는 말씀이시고, 모두 씻어주셨다는 메시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잘못이해하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오해와 잘못에 대해서 히브리서 6:6에서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문맥상으로는 믿음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저는 죄도 잘못된 믿음의 결과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다고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되었지 왜 십자가에 달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을까요? 물론 피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함이 없다(히9:22)는 말씀 때문임을 압니다. 그 배경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십니다. 그 말씀은 용서는 하셔서 누군가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그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래서 용서하시면 죄도 그냥 용서하실 수 있다. 세상의 왕이나 독재자들에게는 통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그냥 안 됩니다. 하나님 스스로도 안되십니다. 그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 우리 스스로 그 대가를 절대 치를 수 없음을 너무 잘 아시고 예수님의 피로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죄를 지은 후 갚아야 할 정도라면 갚게 하십니다. 용서를 받은 다윗이 그 다음부터 치른 대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아들 암논이 자기의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동생을 욕보인 형 암논을 죽입니다. 압살롬이 백주대낮에 모든 백성들이 보는 곳에서 아버지의 처첩들과 간음을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사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들마다 간음을 한 것이라 하셨고, 티하나라도 갚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랄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매우 정확하시고 철저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떠올릴 때 요셉과 다니엘이 떠오릅니다. 요셉은 정욕이 펄펄 끓는 젊은 나이에 자기와 관계를 마음껏 하자는 보디발의 아내를 향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라면서 피하다가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다니엘은 히브리 전쟁 노예로서 바벨론에 끌려가서 바벨론, 메대 바사, 그리고 바사에서 가장 놓은 직을 연임했습니다. 정권은 나라가 바뀔 때마다 왕 다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치가들, 세도가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조사를 많이 받았답니다. 그래도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흠과 티를 찾지 못했답니다. 다니엘이 안 들키려고 철저히 준비를 했기 때문일까요? 그런 꼼수나 임기응변의 사람이었다면 다니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순결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요셉도 다니엘도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예쁜 여인을 보았을 때 그리고 탐나는 물건을 보았을 때 탐심으로 인하여 떨리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고백하는 대로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죄를 짓습니까? 보기는 보아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이 죄를 지은 이유는 마음에 생기는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음란과 세상의 탐스런 것들이 눈에 더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되면 죄를 짓게 되고 한 번 죄를 지으면 더 큰 죄를 짓게 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윗이 그러질 않았습니까? 밧세바를 보고 간음을 하고 임신을 했다고 했을 때 가리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통해 알리바이를 만들려다 실패를 합니다. 그것이 안 되자 그를 청부살인 시켜서 마침내는 살인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에게까지 안 그런척, 아무일도 없었던 척 속이고자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시험과 공격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지켜야 죄를 멀리할 수 있다(시119:9,11)고 고백하였고, 그 말씀을 예수님이 지키셨음을 복음서에서 보여줍니다. 죄와 결합하고 죄를 지으면 사탄은 파상적으로 공격해서 우리를 망가뜨려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을 기억하십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회개할 때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다윗 왕이 사울 왕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왕위를 아들에게 계승하고 평화롭게 죽습니다. 사울은 버림을 받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지요? 핑계와 회개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나쁜 왕들은 북 왕국에서는 아합이고, 남왕국에서는 므낫세였습니다. 그 두 왕들도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시더군요. 예수님은 삭개오와 같은 악인의 회개도 받으셔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으므로 우리가 드리는 회개는 더더욱 기뻐하십니다. 요일1:7에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한국에는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라고 한다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보다 죄가가 매우 적다고 한다지요.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간 기독인들은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없다고한다지요. 그러나 큰죄건 작은 죄건 하나님 앞에서나 역사 앞에서는 죄는 죄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동정과 사랑을 보내는 기독인들은 박 대통령이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더 이상 핑계하지 말고,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받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성을 돌로 치려는 자들을 향해서 죄가 없는 사람들이 먼저 여인을 돌로 치십시오. 라고 하신 후 여인을 향해 나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죄를 짓지 않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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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도 들어주는데(눅18:1~8)

2/17/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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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한번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비유를 불의한 재판관의 응답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았답니다. 사람은 적어도 양심이 있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불의한 재판관은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앞 일에 대하여 생각은 할 수 있었답니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그 재판관에게 자기의 권리를 찾아달라고 와서 청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재판관이었으므로 과부의 청원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한 번도 아니고 두번, 그리고 계속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생각했습니다. 이 과부는 내가 들어절 때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겠구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과부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과 비교하십니다. 하물며 택하신 본인의 백성이 밤낮 찾아와서 청원원하는데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주위에 기도를 응답받아서 간증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분명하게 말은 못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편집자는 그런 사람들 중에는 기도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예로 몇 가지를 들어주는데 마크 트웨인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가 쓴 소설 중 한 소설에서 주인공 북 핀이라는 사람이 기도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답니다. 그 증거로 응답받지 못한 자신의 기도를 인용하였습니다.  한번은 삼일동안 자기의 낚시 훅에 고기가 물게 하여 달라고 꾸준히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달리지 않았답니다. 자기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의 유명한 작자 C. S. Lewis도 있답니다. 루이스의 아내가 병에 걸렸을 때에 아내의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죽었답니다. 그때 루이스는 하나님의 창문으로 열지못하도록 잠겨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문을 닫아두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기도를 응답받은 사람으로 히스기야 왕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시리아의 장군 랍사게와 산헤립의 대군으로부터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나라를 구했고, 나중에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도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15년을 연장받았습니다. 자신이 병에서 치유를 받은 것을 알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를 통해 해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거가는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기도를 세번이나 드렸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말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까? 응답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병에서 낫기를 기도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바울을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병이 있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응답을 주셨으나 다른 방향으로 주셨습니다. 그런 응답은 응답이 아닙니까? 그런 설명을 쉽게 이야기해서 책임감도 모르는 아이에게는 아이가 운전을 하고 싶다고 하여도 절대 열쇠를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신 아이에게 자동차와 유사한 장난감을 사 줄 것입니다. 본 비유에서 예수님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확신이 있는 분들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기다려라. 그래 알았다. 금방 해 줄께 라고 응답도 하시지만 때로는 다른 것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눅11:13절에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며 어떤 방법으로도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를 드림으로 믿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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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한들(눅16:22~31)

2/17/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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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부자는 물 한 방울이 필요했으나 얻어먹지 못합니다. 아브라함 그리고 나사로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오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서 자기 동생들에게 이런 곳이 있음을 알게 하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의 말이라 할지라도 듣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의 힘으로 그런 일들을 한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이 듣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육신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순종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 주님의 말씀을 기회가 좋던지 나쁘던지 전파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을 알고 믿고서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통해 편집자도 또한 편집자를 통해 세번이나 읽고 묵상을 하는 우리들은 여러 가지 면으로 깨닫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의 말도 믿지 못하고 하늘이 열리고 땅이 꺼지는 일을 당해도 믿지 못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 일점일획이라도 믿습니까? 그 말씀을 순종합니까? 그 말씀에 자신의 삶과 생애를 모두 드립니까? 아멘이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라고 주시지 않고 믿으라고 주셨습니다. 믿을 때에 그 말씀이 양식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믿고, 순종할 때에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요즈음 라마나욧 성경 통독 안내를 따라서 민수기를 읽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건너게 되고 이집트의 정예부대들이 수장되는 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이냐 만나, 천사들의 음식(시78:25)을 먹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셔서 비록 광야라 할지라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죽음과 같은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그냥 믿고, 순종하십니까? 내가 그냥 믿고 순종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이십니다. 말씀을 읽으시면서 믿음으로 가지 못하는 것들, 원망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여 달라고 기도하여 보십시오. 말씀대로 세워져가는 자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아서 기다려지고, 주신 그 말씀을 순종해서 말씀으로 힘과 지혜 속에 살아가는 복있는 신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적용은 안 읽으신 분은 다시 말씀을 읽으시고, 읽으시는 분들은 볼펜이나 펜을 들고 은혜가 되는 말씀에 줄을 긋기입니다. 그리고 양쪽 모두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는 말씀을 성경 책 옆 공간에다 자기 생각을 적어 놓기입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성경책이 자신의 가까운 친구처럼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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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앞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볼 때의 두 반응(눅16:19~24)

2/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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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읽고 편집자는 1873년 하와이의 작은 섬 몰로카이의 다미엔 신부님을 모시고 옵니다.  당시 주 정부가 나병 환자들을 몰로카이라는 작은 섬으로 보내서 죽어가는 그곳으로 다미엔 신부님은 33세의 나이로 그곳에 가서 16년 후에 나병으로 죽습니다. 나병과 죽음과 어두움과 두려움의 섬이었던 몰로카이가 이제는 생명과 꽃과 희망과 관광의 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죄와 죽음과 두려움이 있던 인류를 위해 오심으로 인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꿈과 하나님을 향한 거룩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다미엔 신부님도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들이 읽는 성경도 은혜의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탄핵의 시간이 지나고 다음 대선을 향한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방송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들을 불러서 국민들 중에서 몇 몇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을 통해 면접을 하고 있습니다. 대선주자들은 모양도 나이도 ... 공통된 것은 없는데 딱 하나 대통령이 되길 희망하는 것이 같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한국의 부패를 청산하고 싶답니다. 한국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달을 국민들이 보면서 탄핵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씨도 어려움들을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누가 어려운 한국을 구원할까를 고민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는 제안합니다. 우리 집 앞에 와서 누워있는 나사로를 먼저 구원해 주십시오. 길가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저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들 하는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부숴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자는 나사로에게 음식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부자에게 원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나사로를 자기 집으로 모셔와서 그를 주님처럼 여기고 대접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 손가락에 물 한방울만도 귀하게 여기는 지옥으로 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과를 당하지 않으려면 나사로를 목욕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드리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드리고 새 신을 신겨드린 후 자기 집에 모시고 와서 함께 기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미엔 신부님은 아예 나병 환자가 되셨습니다. 하루는 다미엔 신부님을 수종들던 사람이 더운 물을 느끼지 못하는 다미엔 신부에게 나병에 걸렸다고 슬퍼하자 그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복음과 생명을 주었습니다. 예수님, 다미엔 신부님, 손양원 목사님 모두 자기들 대로의 깨끗하고 고결한 삶을 유지하지 않고 죄인이며 나병 환자인 분들에게 자기들의 삶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지옥으로 가기 싫어서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들어오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들과 함께 하는 것을 자기의 삶으로 알고 그리고 들어가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분들을 모시고 그분들을 따뜻하고 깨끗하고 희망있게 해 드릴 마음은 없으십니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어렵고 힘든 분에게 인격을 회복해 드리고 생명을 회복시켜 드리고 희망을 회복시켜 드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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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와 부자(눅16:19~31)

2/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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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으면서 세 가지를 느꼈습니다. 편집자는 오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는 이렇습니다. 라는 식의 설명이나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 자기가 경험한 인도의 선교 여행, 그리고 현대 사회의 빈곤한 자들의 실태와 부자들의 문제를 알려 줍니다. 결국 부자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지옥에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지 않았으니까요. 더더욱 저를 비롯하여 부자들은 이 부자와 나사로라는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지키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이 말씀을 공부할 때 지옥이 있다.는 정도일까요? 예수를 전파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예수를 믿고, 복을 받아서 잘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할까요? 두번째로 느낀 것은 미안한 표현이지만 제가 살고 있는 부유함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미국에 오신 분들은 거의가 잘 사십니다. 부지런함과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셨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하여 이민을 와서 잘 살게 된 우리들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유함을 맡기시고,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그것들을 맡기셨음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느낀 것은 내가 가진 믿음, 부유함, 지식 모든 것을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비유의 말씀을 주심은 나누어주라고 주셨습니다. 미국에서도 인도를 향해서도 그리고 아프리카를 향해서도 네팔을 향해서도 어려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 실천해야 합니다. 효과적으로 과학적으로 조직적으로 비조직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도 무섭기는 합니다. 천당에 가는 것이 좋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은 자비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기쁨과 감사로 해야 할 것입니다. 나눔과 섬김을 통해 주님의 기쁨과 자비에 동참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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