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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고통은 꼭 죄 때문일까요?(요 9:1~12)

1/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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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몇 몇 사람들의 장애를 고쳐서 회복시켜 주실 때 그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장애나 병이나 그리고 야고보서 5장 말씀에 의하면 병 낫기를 위해 먼저 죄를 고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롬 5장이나 욥기 전체의 말씀에서는 질병이나 실패와 같은 환난과 고통은 꼭 죄 때문만이 아닌 것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특히 요 9장의 본문에서는 장애의 고통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시기 위함(요 9: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장애나 다양한 고통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하신 것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서 또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때 과정과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침으로 흙을 개신 후 그 흙은 눈에 발라주시고,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착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실로암이나 침이 눈을 뜨게 하는 원인으로 오해하고, 여전히 실로암 못의 물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이나 침을 그렇게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해서 침과 흙과 실로암 물을 사용하셨을 뿐이고, 치유와 회복의 주체자는 예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예는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들렸을 때 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낫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무화과 빵을 종기에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있죠? 나병에 걸린 시리아의 나아만에게 엘리사는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라고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를 내면서 시리아에 있는 질이 좋고 깨끗한 강들을 언급합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를 더할 수 있으나 역시 누가 누구의 능력으로 고쳐주셨나가 중요하니다. 엘리사가 고쳐 주었습니까? 그리고 요단강물입니까? 아닙니다. 주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능력과 말씀만을 절대시하여서 의료 방법이나 약재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고쳐주시기도 하셨지만 본문처럼 약재와 방법도 사용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여 주시는 방법이 다양하므로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님의 인도를 기다림이 좋습니다. 너무 한 가지에 치중, 의존, 주장하지 않음이 성경을 아는 사람의 지혜로운 자세이고 태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수르에서 마시지 못하는 쓴 물을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바꾸어서 마시게 하신 후에 나는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 말씀대로 주님께서 우리의 장애와 병을 고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육체와 마음에 병이나 장애가 있으십니까? 이 시간 제가 능력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병에서 나으시고, 장애에서 건강으로 회복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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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독경(요 8:48~59)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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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귀에 경을 읽어 주면 소는 못 알아듣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두 가지로 평가하였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하였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평에 대하여 특별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말할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 사셨지만 사마리아는 아닙니다. 그곳이 사마리아 인근 지역이므로 그렇게 부른 것 같고, 또 하나 그들이 그렇게  평가한 것은 사마리아를 낮추었던 자신들의 시각으로 예수님도 낮추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말할 가치도 없고 또 하나 말씀을 하셨다면 본인이 사역을 하신 곳을 폄하할 수 있으므로 하시지 않았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본인을 미친 사람으로 평한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유대인들이 미쳤다고 하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스스로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사람들에게도 천둥과 같은 자연현상을 통해서 나타내며 알려 주셨습니다(요 12:28). 이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을 폄하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이 죽었는데 영원히 죽지 산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반박하면서 예수님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본인 스스로 영광되게 하지 앟고, 영광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자신의 날을 보리라 기대하고 즐거워하였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냐면서 반박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돌러 치려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브라함과 유대인들을 말씀하셨고, 유대인들은 단지 예수님을 세상의 사람으로서만 보고 대화를 하였기에 그들의 대화는 서로 소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계신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혹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사람에게 믿을 기회를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는 전혀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점을 알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고, 그들은 땅에서 본 것만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땅의 현상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그냥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주이심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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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요 8:31~47)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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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쉽게 생각하는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 공간적인 자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자유, 감옥과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눅 4:18절에서 감옥으로부터 자유와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일찍이 철학자 I. Kant 그리고 20세기의 에릭 프롬이라는 학자는 자유에 매우 다양한 영역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알려 주시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과 공포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다양한 자유를 말씀합니다. 자유하게 되면 그런 곳에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동시에 평안하고, 담대하고, 지혜롭고, 부유하게 되어서 다른 어려운 사람을 재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마음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드리며 모든 일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귀한 복을 누리게 하는 자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진리를 듣고, 믿은 후에 진리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머문다는 말씀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있는 것처럼 주님께 있으면서 주님과 소통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을 순종하여 실천하는 의미합니다. 요 14:21절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듣고 믿고 머물므로 진리에 이르러 자유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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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요 8:21~30)

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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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을 물으면 서쪽을 대답한다가 동문서답인데 그 만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꼬투리를 잡기 위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한 사람들과 예수님은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 사람들 역시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다르시지만 그에게 죄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함정으로 몰아가는 것은 본인들도 신기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가야할 곳이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본인이 가야할 곳은 본인이 온 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사람들은 땅에서 왔으므로 예수님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본인은 죄가 없고, 자신을 잡아서 해치려는 사람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도 없고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결과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왜 일까요? 예수님께서 본인을 방어하기 위하여 말씀을 하셨지만 말씀을 전하시는 과정과 말씀들이 모두 본인들의 치부와 속 사람을 정확히 지적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롬 10:17절에서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받을 사람은 주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모여서 그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과 다른 의도나 생각을 갖고 갔다 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게 되고 믿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룟 사람 유다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명의 주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로 가셔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믿으므로 구원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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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없는 사람이 돌을 던지세요(요 8:1~20)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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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베들레헴에 나셨음을 알았다면 믿었을까(요 7:37~52)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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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세 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님의 실력(또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성령을 가장 효율적으로 알리실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를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봄과 가을에만 비가 옵니다. 그것을 이른비와 늦은비로 표현합니다. 늦은 비는 초막절이 끝난 후에 오는데 초막절은 일년 농사를 마감하는 추수절기입니다. 추수가 끝난 후 백성들은 기우제를 드립니다. 내년에도 비를 내려 달라고 주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기우제가 절정의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군중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나를 믿는 자는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란 성령을 가리키는데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면 물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번째의 대지는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이 그리스도다, 진정한 예언자라고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붙잡으로 갔던 성전 경비병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경비병들이 예수님에게 매료되었고 더더욱 사람들이 예수님을 지지하는데 예수님을 붙잡았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봉변을 당할 이유가 있었으므로 그냥 자기들을 보낸 지도자들에게 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무리들의 반응과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내용들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런 경비병들을 향해서 지도자들은 꾸짖으면서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에서 누구 한 사람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있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세번째의 대지는 그들의 말이 무색하게 될 내용입니다. 예전에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옹호하면서 율법에 어떤 사람을 죄인으로 평가하시 전에 그의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자 그들은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인가? 그의 편에 속했냐란 말을 했고, 또 하나는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씀이 없다 였습니다. 그들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9:1절에 주님께서 그곳을 밝게 비추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사역을 하신 것이지 그곳 출신은 아니십니다. 이들은 바로 조금 전에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지도자나 바리새인이 그에게 속한 사람이 있냐라고 했는데 니고데모에게 스스로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하여도 믿지 않을 사람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화인맞은 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주로 믿으시고, 성령을 받아서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오는 복되고 풍성한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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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수배자이신 예수님?(요 7:25~36)

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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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란 나로서는 지명 수배자란 단어가 무섭습니다. 지명 수배자란 보통 법을 어긴 자로 그 얼굴 사진을 인쇄해서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두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그 사람들 보다 공난 사범, 곧 간첩이라고 해서 사진을 붙였거나 사진을 붙이지 않고 몰래 숨었다가 붙잡아 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도 지명 수배자이셨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첫 절인 25절에 그들이 죽이려는 하는 이가 바로 이 사람이 아닙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지명 수배자이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숨질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마우 말도 못하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지도자들은 정말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가? 그랬기에 못 잡는 것이 아닌가 라며 반문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애써서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아니심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자신들은 예수님께서 오신 곳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과 맞지 않는 소문을 터무니 없는 낭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군중들이 주장하는 것이 낭설인 것은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온다고 하였는데 군중들이 자신들의 지식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기위해서는 출생처를 알아보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확인도 하지 않고, 어디서 오시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소문이 들리는 중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고발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로서 큰 표징을 행사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진짜 그리스도가 오신다 하여도 이분보다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군중들이 경험한 것과 본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지 못할 소문과 달리 정말 많은 표징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군중이 하지 않고, 제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발견한 내용을 서술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예수님을 고발하거나 붙잡아 오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소위 지도자라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성전 경비병들을 현장으로 보냈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군중들이 예수님 자신을 볼 것이지만 조금 있으면 보질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고 구원자로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구원자이시고, 왕이신 예수님에게 혜택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명수배자이시면서도 예수님께서 공공연히 군중들과 함께 계시는데도 잡지도 잡히시지도 않습니다. 이유는 잡히셔야 하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여서 은혜와 진리를 가득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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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을 사용하신 예수님(요 7:10~24)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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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란 말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답니다. 왜 할례를 받습니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의 지적은 그렇다 하여도 왜 할례를 안식일에 받아야 하는가라는 말씀이십니다. 본인들은 안식일을 범하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불편하고 고질적인 병이 있는 사람의 몸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냐고 하셨습니다. 이런 현상을 요즈음 사람들은 본인이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적용하였던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본인을 향해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정확하고 예리하게 잘 가르치냐는 궁금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답을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을 하는 것이고, 두번째로 본인은 본 것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는 척, 배워서 남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과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의 지식과 가르침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차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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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을 받으신 예수님(요 7:1~13)

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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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일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오히려 박해와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예수님을 비 정상적인 사람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귀신이 들렸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미친사람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으로 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에게서 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라는 섭섭한 말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초막절을 맞이하여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라고 권면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에게 초막절에 성전으로 가라, 말라 하는 것은 그들의 권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인이시고, 유다 남성들은 일년에 세번 주님의 전으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유독 형님이신 예수님에게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도 예수님의 놀랄 만한 사역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 왔던 언행과 불일치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나름의 계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유대의 지도자들은 어찌해서든지 예수님을 붙잡아서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권면한 뒷 이야기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형 예수에게 예루살렘에서도 사역을 하라는 것은 그동안에 해왔던 언행과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에 넘어갈 어수룩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에 이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그 말씀에 예수님의 형제들과 연계가 되어서 계획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해할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들의 제안을 무산시키시려는 이유는 그들의 핍박과 박해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일정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보았자 믿지도 않을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형제들과 관련된 무리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시려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하신 후에 그들과 달리 혼자서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시는 예수님께서 순진하게 형제들이 만든 계획에 빠질 어리숙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할 이유가 예수님께도 있으셨습니다. 주님의 일정 안에서 행동을 한다 하여도 어수룩하게 사람들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역과 순종이 은혜가 되고, 능력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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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남아있는 악마(요 6:60~71)

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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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6:4절 말씀에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나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고, 목회를 하다보면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은 어떤 시각에서 보냐에 따라서 은혜와 격려일 수 있고, 시험과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어렵고 힘들고 시험이 되고, 상처가 될만한 일도 훈련과 격려와 은혜가 됩니다. 악마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성령이 충만해서 40일 금식을 했을 때에도 예수님께 다가가서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시험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께도 악마가 떠나지 않고 시험을 하였는데 우리라면 당연히 호구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에게 시험이 없을 것이다. 악마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면 영적인 세계를 매우 가볍게 여기는 오류입니다. 상처라고 여길 만한 시험을 받았을 때 잘 생각하여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여러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마음에 걸리냐라고 이해를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걸리는가?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믿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말인가? 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자신을 흔들만한 여러 가지 유혹들이 왔을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갈 2:20절의 말씀과 롬 14:7절과 8절의 말씀 그리고 마 16:16절의 말씀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자기의 왕이라는 말씀이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났으므로 자기를 위해 살지도 죽지도 않고 오직 주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과 고백과 생활이 있으면 어떤 시험과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시험은 주로 교회 안에서 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방주이고, 신앙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시험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 뿌리를 두었는지 불신의 사람, 불평하고 시험하는 사람에게 뿌리를 내렸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머리이고 자기를 살리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의 지체로써 주님께 깊게 뿌리를 내리면 어떤 시험과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여서 예수님만을 바라며 예수님과 함께 성장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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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장로 교회
​Triangle Grace Korean church (PCUSA)

5001 Tudor Place Durham, NC 27713 
대표전화 919-530-9771 

은혜 장로 교회 
​서기남 목사  
주일 예배 : 주일 PM 2시
어린이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Youth 및 대학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다락방모임 : 주일 PM 3시 30분
금요 집회 : 금 PM 7시
새벽 기도회 : 토 AM 6시30
경건의 훈련: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 
​                       
목요일 오전  9시 20분
사랑방 모임:
각 사랑방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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