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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전도자의 특권(눅10:1~16)

1/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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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만 훈련하시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훈련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열두 제자들을 주로 대하는데 본문에서는 그들 이외에도 70명이 더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추측컨데 그들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사역 경비를 대었던 여인들을 언급할 만큼 여인들 역시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제자들이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고 본문에서는 그 제자들 이외의 제자들 70명을 파송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양을 늑대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감인 양을 그들에게 보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십니다. 그 전에 하신 말씀이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추수할 일꾼이 적으므로 주인에게 추사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라고 하십니다. 영적으로 추수한 일꾼은 천사를 말합니다. 천사가 와서 도우면 아무리 양을 좋아하는 늑대라 할지라도 쇼윈도우 안의 맛난 음식처럼 늑대는 절대 잡아먹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의 사람들은 사역을 할 때 사역할 때 도와줄 주님의 일꾼을 보내달라는 기도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양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늑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는 양이 아니고, 늑대보다 무서운 맹수일 것입니다. 본인을 양이라고 확신한다면 주님의 일꾼을 보내서 자신과 함께 추수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한 후 천사의 도움을 받으며 사역해야 합니다. 두번째의 특권은 평화를 줄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대접과 수고를 받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역자가 가서 머무는 것은 머무는 그 집에 평화,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그런 확신과 마음으로 그 집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세번째는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는 고을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는 그들이 주님의 사람이 아니므로 신에 먼지까지 털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할 사람들에게 구지 귀한 것을 주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는 사람에게 귀하고 귀한 보배이고 능력인 하늘 나라의 그 무엇도 줄 이유가 없다고 하십니다.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고, 속상해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정체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칠십 인을 보내시고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 칠십 인들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을에 대한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전도자, 하늘 나라의 사역자들이 하여야 할 일은 보내신 분의 말씀을 순종하면 됩니다. 하늘 나라의 말씀 전하고 기도하여 주고, 능력을 베풀어 주면 됩니다. 그들이 싫다고 하면 그냥 신발을 털면 됩니다.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것은 본인의 생각과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평화와 능력을 베풀어 준다는 좋은 마음으로 사역을 하며 보람되고 행복이 넘치는 수고를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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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합한 사람입니다(눅 9:51~62)

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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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두 가지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의 왕래를 허락하지 않은 사마리아의 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또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기를 불허한 사람과 예수님의 초대에 핑계를 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의미를 부여해서 본문을 읽으면 하나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을 사용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다면 그곳에는 분명 좋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용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게 된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대와 부르심을 입고 이런 저런 핑계로 예수님을 좇지 않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따금씩 좋은 배려와 선처를 받고도 순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제자들이 겪고 예수님께 불로 심판을 하게 하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선처와 배려는 선행일 뿐입니다. 듣고 순응을 하고 안 하는 것은 배려와 선처를 받은 사람의 선택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정과 초대에 대해서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주권과 선택에 관한 것이므로 누구나 탓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다른 목적으로 예수님을 쫓겠다고 할 수 있고, 나아가서 예수님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그를 구지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초대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도 말씀드린 대로 화를 내거나 꾸중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배려이며 선처이기 때문입니다. 아뭏든 예수님을 사랑하고 앙망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되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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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도 귀신을 쫓을까?(눅 9:37~50)

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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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전 국민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무진 애를 씁니다. 이런 수고로 많은 사람이 여행도 자제하고 모임도 하지 못합니다. 특히 소 상공인들은 비지네스를 문 닫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수고에 반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들이 심심잖케 보도됩니다. 교회의 모임이고, 선교회의 활동들입니다. 자제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그들의 열정은 이런 때에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과 시작될 때엔 신천지라는 사이비 집단에서 크게 발생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신천지는 이단들이 기존에 있는 교회의 신도들을 빼어가는 놀라운 기술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는 영지주의자나 마르시온과 같은 이단들이 계속 출현했음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는 그런 이단들이 출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유대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출현이 사이비요, 이단이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을 정죄하며 잘못을 꾸짖고, 나아가서는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스스로 이단이나 사이비를 논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탄생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로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본인의 사역과 역사가 그것을 입증하여 주고 하나님께서 입증하여 주신다(요5:36,3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하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행동, 곧 이단과 같은 행위들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목회자로서 경험을 하는 저는 또 한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물이 솟아나오지 않는 우물은 우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의 이름이 갖는 능력을 경험한 사역자 역시 이단이라 할지라도 잠시는 할 수 있으나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단 스스로 매우 능력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예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능력의 근원이 없으므로 능력의 근원, 샘물을 공급하는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알아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가 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의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본의는 세상이나 사람의 요구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정됩니다. 특히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단들은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함께 사멸한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큰 그림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단들의 수고와 노력을 구지 정리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을 빼앗가고 어지럽히는 이단과 사이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냥 두고 싶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사멸하고, 주님께서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사람들을 훈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소인 사람들에게 양젖을 먹인다고 양이 되지 않듯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은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소신대로 행합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단이든지 사이비 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베푸는 자비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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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눅 9:28~36)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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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약간 서먹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동행한 제자들은 그랬듯이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보니, 예수님 혼자만 계시지 않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돌아가시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보니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놀란 베드로가 테트 세 개를 쳐서 하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또 하나는 엘리야가 계시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약간의 시간이 있었고, 이어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시게 할 하나님의 계획이 완벽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신다는 말씀이 자신들의 생활이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그것이 자랑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순종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혹 자신이 예언을 깨닫거나 듣는 것, 방언을 하는 것이나 통역을 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입신을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본인의 신비로운 경험을 세상에 알려서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보는 동물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영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영적인 유익과 덕을 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이십니다. 먼저는 제자인 자신이 그리고 주위의 사람과 세상에 신비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영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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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눅 9:18~27)

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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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누구인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하여 먼저 그들이 따르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물어 보십니다. 그것을 알려 주신 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알려 주십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이 고백되어야 합니다. 물론 마음으로 믿은 후에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알맹이인 생명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통해 제자 모두에게 알려 주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에게 붙잡혀서 처형을 당하는 존재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는 이번만으로는 되지 않고 계속 알려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처형당해 피를 흘려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이시고, 그렇게 해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자는 그런 예수님을 따라야 하고, 두번째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은 자기의 욕심, 주위의 기대, 인간적인 목표 모두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란 자기의 책임을 말합니다. 자기의 책임이란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들로서, 딸로서 왜 이렇게 부인해야 할까요? 구약에서는 레위 사람이 한 가정의 장남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장남은 유월절 사건으로 생명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가정의 장남들 대신 레위인을 하나님께 드렸고 그 값으로 각 가정에서는 레위인에게 그 값을 치르도록 하였고, 하나님께서도 레위인에게는 땅을 주는 대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 보낸 가정은 그에게 무엇도 기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일에 전념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마음 가짐과 자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완전 하늘의 사람이 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게 하셨습니다. 참 어렵죠? 네, 그러나 이 세상의 생명은 짧고 하늘 나라에서의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한 하늘 나라의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어려운 제자의 길을 갈 것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마음가짐과 생활을 점검하고 그것에 합당한 제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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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 훈련(눅9:1~17)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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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제자 훈련을 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한 동안 저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가 제자 훈련을 하였습니다. 제자 훈련은 우선 말씀과 기도를 합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직분자로 세우고 교인들을 이끌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고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본인과 본인의 보여주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처럼 그들을 본인에게서 떠나게 하셔서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자녀를 여행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여행을 하면 새로운 곳을 경험하게도 하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부모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모든 귀신들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세가지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기거를 세상 사람들에게 요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집에 머물지만 배척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신발을 털어버릴 만큼 단호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나와 있는 내용이 침례 요한을 참수한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불안해 하고 떠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그만큼 세상에 바람과 영향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그렇게 훈련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것을 보여 주십니다. 보리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입니다. 그냥 감사를 드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이시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먹고 남은 양이 열두 광주리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도 제자들과 연관해서 읽으면 먹고 사는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생활을 사람들에게 요청하지 말라는 말씀이 됩니다. 알아서 주면 되지 구지 그것을 요청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더 많이 가지려하고, 쌓아두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주님께서는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주십니다. 제자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자기의 것이 되도록 훈련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귀신을 제언하는 것,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것, 병자를 고쳐주는 것 모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보다 그것이 먼저할 일입니다. 복음이 헬라 문화권으로 확장되기 이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본인을 돌아보며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능과 능력을 사용하고서 해야 할 일들을 하는지 ... 소금으로 맛을 내고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는 예수님의 제자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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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믿음(눅 8:40~56)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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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은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과 열두 해 동안 하혈을 했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회당장이라 함은 유대인의 얼굴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모시고 갑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와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회당장이 예수님을 모시고 죽어가는 자기의 딸을 낫게 하시 위하여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간다는 현장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시 예수님은 우리와 달리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교의 우두머리 격입니다. 유대인의 얼굴 격인 회당장인 사람이 자기 딸 살릴려고 그런 사람을 우대하면서 모시고 간다고 하면 유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는 어떤 처분을 받아야 할까요? 그만큼 절박해지니까 예수님을 찾아가서 붙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더니 누가 내 능력을 사용하였냐고 물으시면서 시간을 끌으십니다. 이는 마치 베다니의 형제 나사로가 죽는 병으로 죽어가는 촌음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죽은 후 나흘이나 되어서 그에게 가시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아마 회당장 야이로는 이분이 왜 이러시나? 위기를 모면하려고 그러는가? 내가 잘못 선택한 것 아니야? 라는 회의와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 한 여인이 나타나서 하혈로 고생하였던 일을 고백하면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순간 하혈이 멈추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마 야이로로서는 매우 미안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왜 미안하였을까요? 그렇죠? 자기는 잠시 나마 의심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인과 야이로의 믿음에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야이로의 믿음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옷 자락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았습니다. 이 여인처럼  헤롯의 신하 역시 하룻 길을 걸어왔는데도 나을 것이니 그냥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갔다가 아들이 사는 그런 놀라운 일을 경험하였습니다(요4:53). 그런 사람들 중에 또 한 사람은 로마 백부장의 이야기이죠? 군인인 자기처럼 명령만 하라고 한 그 백부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축복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이미 죽었으므로 소용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나만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을 믿고 산 딸을 예수님으로부터 돌려 받았습니다. 믿기만 하면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혈 병을 앓다가 고침을 받은 여인과 다른 사람에게 하신 당신의 믿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는 그 말씀은 듣지 못했습니다. 네, 이후로 믿고 구원을 받으셨겠죠. 그래도 1일 모자랍니다. 예수님을 잠시라도 의심했다가 나음을 입은 여인을 통해서 믿음의 눈, 영의 눈이 활짝 뜨여졌다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참회를 하고 말씀만 하여 달라고 하는 믿음을 고백하였다면 딸도 얻고 구원도 받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열두 해 동안 고치지 못하던 혈루 병도 고치시고, 죽어가는 사람,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믿고 치유받고, 회복되시고 구원까지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와 믿음의 글을 읽으시는 귀 영혼에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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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요청도 들어주신 예수님?(눅 8:26~39)

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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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관 복음 모든 곳에 실려있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관심거리였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거라사란 동네에 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갔는데 귀신이 그를 조종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제지를 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귀신이 들린 사람이 본인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자 언제나 그랬듯이 귀신이 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고백하며 문안드립니다. 마치 힘께나 쓰는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힘이 센 사람을 만났을 때 충성을 다짐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취했습니다. 귀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성향이 있어서 예수님께 쓰임과 인정을 받지 못한 귀신은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라사의 사람에게 들어간 귀신은 보통 힘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너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군대 귀신, 곧 숫자가 많은 귀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귀신이 제발 자신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고 돼지떼 속에 있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돼지떼 속으로 들어가서 돼지들이 물로 들어가서 죽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예수님께서 귀신의 요청도 들어주시는가?라는 의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귀신들을 그곳에 계속 머물게 하셨을까요? 이 내용을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을 한꺼번에 모두 쫓아내지 않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가나안에서 한꺼번에 몰아내지 않으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한꺼번에 몰아내면 사람들이 들어와서 정착하기 전에 들짐승들이 밭이나 집을 폐허로 만들기 때문에 차츰차츰 몰아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두번째는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고치는 도구로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귀신들을 그곳에 남게 하신 이유는 귀신들의 요청을 들어주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다른 뜻이 있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알게 된 귀신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무조건 항복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함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곳에 있는 귀신을 통하여 영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함을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려는 의도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약해진 군대 귀신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훈련하시기 위함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해를 가할 수 없는 귀신을 상대로 제자들을 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생기는 질문이 또 있습니다. 군대 귀신에게 풀려나서 회복된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그에게 하신 일을 알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왜 데리고 가지 않으신 것일까요? 저는 두 가지로 이해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귀신만 쫓아내주지 않으시고 병들은 사람, 죽은 사람을 치유하셔서 회복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이런 사역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귀신에게서 해방된 사람이 함께 하게 되면 예수님을 귀신 쫓아내는 존재만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첫번째 추측을 했습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은 사람이나 세상의 무엇을 이용해가면서 사역을 하셨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셨습니다. 요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본인을 증언해 주는 것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것이나 사람들에게 증언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증언을 받게 되면 예수님의 정체와 권위가 손상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오직 하나님과 말씀 드리고 성령님께 두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귀신에게 풀려난 사람의 동행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그가 풀려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깊고 섬세하신 사역을 보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을 다시금 경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주님의 나라를 크게 확장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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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눅 8:16~25)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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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본문 18절에서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치 달란트 므나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한 달란트,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한 므나를 맡겼던 사람에게서 받아서 주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누가 풍성한 믿음의 사람이 될까요?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과 사역을 전폭적으로 믿고 후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할 때부터 임신하였을 때 그리고 출산하였을 때 또한 할례를 받으러 성전에 갔을 때 그리고 성인식을 하러 갔을 때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그 내용을 동생 야고보, 유다, 요셉, 그리고 시몬에게 알려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 증언을 들었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여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신뢰하고, 후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미친 아들, 오빠, 형님을 데리로 왔다고 하였을 때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도 그냥 신뢰하고 협조하며 후원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풍성한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께서 본인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만을 감사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왜 걱정하며 염려합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예수님께 풍성한 믿음을 갖은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죽을 지라도 예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풍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사탄은 사나운 파도로 제자들을 흔들었던 것처럼 우리를 여러 가지로 괴롭히며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사나운 바람이나 요소들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시면 보호와 안전과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물과 파도까지 명령하시고 잠잠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이시고, 선생이시며 보호자이십니다. 예수님으로 풍성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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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이해(눅 8:1~15)

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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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예수님의 사역에서 경비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공관복음, 사 복음 모두를 통털어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경배를 언급한 곳이 오늘 본문입니다. 3절 후반부에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로 그리고 보리떡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 오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 두 광주리, 일곱 광주리를 남기게 하셨으므로 예수님에게 재정이 필요치 않으셨다고 생각하는 분이 얼마나 되실까요? 그 경우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행하신 특수한 경우이시고,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살으셨기 때문에 경비가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재정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재정에 대해서 요한이 가룟 유다를 지칭하면서 그가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이따금씩 슬쩍 빼내어서 자기의 것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여인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행을 섬겼답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평균 얼마나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열 두명과 예수님 그리고 여인들 거의 스무 명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생활하려면 적은 금액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금을 하면서 주님께서 사역을 하시는데 주지 않고 왜 내가 내야할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돈을 갖고 있는 그 사람에게 사역에 필요한 경비를 내라고 돈을 주셨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헌금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의 돈을 왜 내게 하냐고 질문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네, 돈을 맡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돈은 주님의 나라와 의와 사역을 위해 헌금하며 사용하라고 주셨습니다. 사역을 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맡기셨습니다. 그것이 돈에 대한 이해입니다. 자기를 위해 쌓아둘 것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생활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돈만을 갖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적용하면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길가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것을 내지 않으려면서 이런 저런 구실과 변명을 하면서 결코 헌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되돌려서 주실 때 넘치게 부어주시는 주님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고, 매우 힘들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는 이유는 자기가 번 돈을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 돈을 자녀까지도 사용하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이 사용하게 될 것을 알며 죽기 때문입니다. 돌짝밭의 밑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나라와 사역을 위해 바치면 많은 것으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했다가 중간에 마음이 바껴서 헌금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로 가시덤불에 떨어진 믿음의 사람은 헌금을 하긴 합니다. 그러다가 교인들에게 시험을 받고, 교회 생활이 지루하고, 세상의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지 않으면 낙심이 되어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고 신앙생활이 아니라 교회 생활하다가 믿음이 있는 둥 마는 둥 사람입니다. 그러나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돈을 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사역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신 목적을 알고 묵묵히 바치는 사람입니다. 옥토와 같은 믿음의 사람은 돈의 목적과 용도와 생기게 된 이유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해야 함을 확실히 알고 그렇게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돈과 믿음의 네 가지 땅을 적용해서 설명해 드렸는데 본인은 어떤 믿음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있다면 돈 걱정 전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사역을 위해 재정을 주신 것으로 확신하고 그곳에 기쁨으로 헌금합니다. 돈 걱정, 돈 욕심 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신자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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