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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Daily Bread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

작은 믿음, 큰 풍랑과 큰 되지 떼(마8:23~34)

1/3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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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기자는 믿음의 종류에 작은 믿음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작은 믿음은 큰 믿음이 있어야 함을 전제합니다. 작은 믿음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제자들이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를 뒤엎드려고 했을 때 두려워하며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려고 했을 때입니다. 작은 믿음은 큰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크고 엄청난 것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는데 풍랑이 자기들이 탄 배를 덮으로 했을 때 두려워하며 큰 풍랑이라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다시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예수님께서 계셔도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제가 다시 잊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을 한 것은 예전에도 이 내용을 한번 말씀드렸음을 전제합니다. 사탄은 예수님, 그것도 40일 금식을 하시고 성령충만하신 때에 와서 시험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주무실 때에는 당연히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고, 베드로는 악마가 우는 사자처럼 삼킨 자를 찾으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으라(벧전5:8)고 했습니다.  본문의 다음 사건이 거라사의 광인에게 있던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쫓겨나가 돼지 때에게로 들어간 후 돼지 떼들을 몰아서 바다로 들어가서 돼지들을 모두 죽인 일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큰 돼지 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두 가지가 생각됩니다. 첫째, 예수님과 큰 돼지 떼입니다. 사람들은 큰 돼지 때로 인하여 예수님을 동네에서 떠나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여 주신 예수님은 돼지 떼 이상의 것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들어오신 복을 한갓 돼지 떼로 인하여 밀어낸 어리석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돼지 떼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천하보다 한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조그마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복음을 멀리하게 한다는 귀한 메시지를 잊지 마십시다. 작은 믿음은 예수님이 계서도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믿음 없음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밀어내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온 세상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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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사람을 구분하실까요?(마9:12~22)

1/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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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가셨다가 열병으로 앓으며 누워있는 베드로의 장모님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들, 병이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귀신들리라고 아픈 모든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마태는 그런 예수님에 대하여 사53: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그는 우리의 병약함과 질병을 짊어지신 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의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와서 자기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라에게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 한 사람은 그와 반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하여 달라며 허락을 요구하였을 때 당신은 나를 따라 오시오.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어디든 따라 가겠다는 율법 학자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했을까요?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라면 성서 전문 연구자입니다. 그런 자는 이미 자기의 직업이 있습니다. 그런 자가 예수님을 따라 온다면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특히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예루살렘이나 유다 출신이 아니라 사마리아 출신입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뭔가 마음에 다른 뜻이 있는 사람임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또 하나는 재정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은 그가 재정을 갖는 일에 관심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 아니셨을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대하여 재정에 관심과 욕심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베드로에게 크게 징계를 받은 시몬이란 사람이 있습니다(참고, 행8:20~24). 세번째로,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한에 속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예수님께 오겠다고 요청하는 제자는 불허하셨을까요? 첫째, 유대인들의 장례는 1년이 걸립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사역은 삼년 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미 시작이 되었으므로 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로 의문이 가는 것은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압니다. 살았으나 살은 것이 아님을 ... 당연히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일보다는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하여 구령사업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음이 더 해야 할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 사람에겐 계속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이미 예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그를 교육하고 훈련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역을 해야 할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역의 주체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제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하라고 하시는 주님이 아니시고, 할 수 있을 때 맡기심은 물론이고, 할 수 없는 것을 한다고 할 때는 주님께서 허락도 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사역은 주님께서 결정하시도록 하고, 주님께서 주시면 감사하며 순종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은혜가 풍성하여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찬송하는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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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마8:1~13)

1/2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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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수님은 이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을 치료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신 예수님이심을 입증할 내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한센병 환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한센병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그 이전에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둘 곳이 없는 가련한 사람이 되어야 했던 병입니다. 문제는 그 병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상의 아픔을 주는 그 병을 손을 그에게 대시고, '깨끗하게 되시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한센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심이 입증되는 치유사역이셨습니다. 조금 후에 로마의 백부장이 와서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자기의 종을 치료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주인이 종을 위하여 예수님께 와서 고쳐달라는 것은 있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듣고, 가겠다고 했을 때 말씀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들어서 그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그런 믿음의 간청을 하는 사람은 처음보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겠죠?) 동과서에서 많은 사람이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유대인에게서 볼 수 없는 믿음을 그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그가 어디에 있든지 말씀만 하시면 그가 나을 수 있다는 거리를 넘어서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꼭 만져서만 치유하지 않으시고 멀리 계셔도 낫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은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주실분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히11:6절에서 알려 줍니다. 살았고, 능력있는 믿음을 주시는 예수님, 안수뿐 아니라 말씀만으로도 낫게 하여 주시는 능력의 예수님,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에게 기쁨을 드리고 주님을 감동하게 하시는 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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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종류(마6:1~18)

1/2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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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종류라는 제목에는 믿음 안에서 드리는 기도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 그런 종류가 아니라 주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와 헛수고로 드리는 기도, 그리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기도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기도는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서 인정을 받으려는 기도이고, 헛수고를 하는 기도란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로 기도를 받으시는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채우려는 기도, 또는 기도의 대상이 헛것이어서 드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 하셨습니까? 첫째,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두번째, 살아계신 주님께 믿음을 갖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세번째, 기도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선과 정의를 실천하면서 드리는 기도인데 그런 마음과 자세로 기도를 드릴 때 오른 손이 왼손이 모를 정도로 하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네번째,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잘 분석하면 세상 사람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그리고 썩어져 없어질 세상 것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이름을 위해 기도드리고, 두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드리라고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본인에게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가정에 임하면 그것처럼 좋은 복은 없습니다. 세번째는 먹고 살아야 필요한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욕심을 떠난 소박하고 검소하고 겸손한 기도입니다. 네번째는 영적인 기도인데 먼저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성숙한 기도이고, 두번째는 시험에서 건져달라는 실존적인 기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 마지막은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기도자나 이방인과 아주 다른 기도임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익히 깨달아서 자신의 기도 표본으로 삼고 기도하는 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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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차이점(마33~48)

1/2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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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느 만큼 되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첫째 함부러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주 안에서 그것을 아는 현명한 사람은 예와 아니오만 하면 됩니다. 둘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람을 감동시켜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면 의무감이나 억지로 해서는  결코 못 줍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왠 뺨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도 가주어야  하고, 속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어야 합니다. 유대인에게 겉 옷은 이불과 같이 중요한 것인줄 아시나요? 그만큼 자신의 것으로 기쁘게 나누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끼리의 좋아함과 사랑은 이방인도 그만큼은 한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악인과 의인에게 비를 똑 같이 주시는 분이심을 알라고 합니다. 넷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심처럼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렇게 될 것을 목표로 해서 기도하며 행하여야 합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처럼 되려고 힘쓰고 노력해 보십시다. 그것이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크게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매우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심처럼 자신도 완전해야 함을 마음에 품고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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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불 속에 안들어가려면(마5:21~26)

1/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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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본문에서 자신의 윤리를 알려 주십니다. 옛 계명에서는 살인하는 사람이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예수님은 형제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 하셨고, 형제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의회에 불려가게 되고,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은 형제와 화목해서 드리는 제물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드릴 때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것이라면 화해를 하고 와서 드리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고소한 사람과 법정에 갈 때 재판 전에 그와 화해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속할겠다고 하십니다.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두를 갚기 전에 감옥에서 못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윤리는 예전에 주셨던 윤리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피해나기질 못한다. 그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 만약 내가 죄를 범해있다면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처럼 엄격한 예수님은 자신이 대신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윤리에서 걸리지 않게 해 주신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한편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죄를 멀리하는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겠습니다.  형제 자매와 화목한 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리 축복합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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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마5:13~20)

1/2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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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여러분은 소금이며 빛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데도 쓸모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바깥에 내다버리고 짓 밟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이와 같이 여러분의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은 예수님과 율법과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은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아주 작은 사람으로 일컬음을 받을 것이고, 또 누구든지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율법은 제자들에게 소금의 맛이며 등불의 빛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킬 때 소금의 맛이 되고, 등불의 빛이 되어 방안과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일점 일획 아주 작은 것까지도 어기지 않고 지키셨습니다. 그렇게 지키고 돌아가셨으므로 율법의 저주에서 인류를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마찬가집니다. 내가 아는 계명 그것을 지킬 때 소금의 맛이 되고, 등불의 불이 되어 방과 세상을 밝혀 줍니다. 요즈음 기독교 인들 중에는 맛을 잃은 사람들이 있어서 바깥에 버려져서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사람도 있고, 교회당에 십자가의 등불은 비추었는데 세상을 밝혀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와 계명이 크면 큰 대로 소금이 되고 등불이 되어서 맛을 내고, 바깥을 밝혀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으면 작은 대로 소금이 되고, 들불이 되어 맛을 내고 방을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지키시기 바랍니다. 많이 알면 많이 맛을 내고, 넓은 곳을 밝혀 주어야 하고, 조금 알면 작은 맛을 내고, 방안을 밝혀 주어야 합니다. 맛을 내고,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소금과 빛이 되는 주님의 제자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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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마5:1~12)

1/2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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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에는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있습니다. 수는 오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엔 모두들 일찍 돌아가셔서 환갑을 매우 귀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저를 비롯하여 육신은 젊은이 취급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의 복을 받고 있습니다. 둘째가 부인데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대대로 매우 가난해서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못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시 먹고 사는 것을 뛰어 넘어서 어떻게 잘 살까를 걱정하니 그도 이루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셋째가 강녕으로,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살고 실어했습니다. 한국은 건강 보험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랍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하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의 복도 받고 삽니다. 넷째가 유호덕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뜻은 오래 살고 풍족하고 몸마저 건강하면 그 다음에는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있는 봉사를 해보자는 것으로, 선을 권하고 악을 미워하는 선본사상의 발로입니다. 참 좋은 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만 잘 살지 않고 앞 집 뒷 집 모두 잘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돕는답니다. 한국 사람들은 향약과 계로 경조사는 물론이고 이웃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한국이 그렇게 하여 옴은 예전엔 같은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그들에게 선과 덕을 끼침은 아름답고 복이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고종명은 자기집에서 일생을 깨끗하게 마감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복입니다. 요즈음은 잘 살기를 바라는 복에서 잘 죽는 것을 희망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요? 이렇게 복을 기원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은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은 한국 사람들이 기원하는 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여 그것을 희망하며 실천한다면 그분은 멋지고 고고한 분이 되실 것입니다. 첫번째의 복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됩니다. 둘째는 슬퍼하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셋째는 온유한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넷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그들은 배부를 것입니다. 다섯 째는 자비한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입니다. 여섯 째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여섯째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 일곱번 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여덟번 째는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이미 복을 받아서 누리고 있으십니까? 더 많은 복에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사람은 미래가 밝고 현재가 기쁨과 감사와 노래로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으로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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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요한의 위대함(마3:1~12)

1/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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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침례 요한을 먼저 보내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아버지가 스가랴인데 그분은 제사장이셨고, 아비야의 반열에 속한 분이었다고 누가가 소개합니다(눅1:5). 어머니 엘리사벳도 아론의 자손이셨다고 합니다. 아비야의 반열이란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사장을 24조로 나누어서 봉사하게 하였는데 여덟번째의 순서가 아비야의 반열이었답니다(대하24:10). 양가가 모두 제사장의 집안이었으므로 침례 요한 역시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선택하신 침례 요한은 유대인이나 바리새인 그리고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트집을 잡지 못한 확실한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을 향해서 여인이 낳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침례요한의 사역을 보면서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킨 사람이라는 마음을 늘 갖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침례란 메시아가 왔을 때 행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 주는 할례가 있었으므로 기독교에서 행하는 침례예식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선 세례란 이방인들을 기독교로 들어오게 하는 메시아의 은혜가 있고, 두번째는 죄를 씻어주는 메시아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요한이 그 침례를 행하므로 당연히 유대인들은 요한을 메시아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한은 자기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며 자기가 메시아가 아님을 스스로 밝힙니다. 뒤로도 침례 요한은 자기는 그분의 신발끈을 묶어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 하였고, 또한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 간다고 보고하였을 때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침례 요한도 헤롯의 일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예수님께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냐고 질문을 할 만큼 사람의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께 침례를 드림으로 침례 요한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과 권위를 고스란히 물려 받게 하심으로 예수님께 사역의 길을 열어드렸고, 나아가서는 예수님을 높여드림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려 드렸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합시다. 나는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살아서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을 높여 드리는 사람입니다. 모세를 보좌하였던 여호수아와 같을 수도 있고, 침례요한처럼 예수님의 길만을 닦아드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자기의 관계를 잊지 않고, 예수님을 올려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자기의 사역에 충성을 다하는 지혜롭고 위대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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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사람, 예수님(마2:13~23)

1/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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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오? 나다나엘과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 한 발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 선지가 사9:1절에서 선포한 메시지입니다. 주님께서 어둠 속에서 멸시받고, 고통받언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 메시아를 보내셔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성취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출생은 다윗의 고향 유다 땅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 기자를 제외한 다른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 복음은 이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유대인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알려주며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고향에 대한 비밀을 마태만이 설명해 줍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이집트에서 도피생활을 하셨으며 나사렛에서 자라셔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셨습니다. 바윗의 후손으로 오셨으나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고통받고, 어렵고 힘든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사역하고 봉사할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어둠과 고통과 괴로옴이 있는 곳임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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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장로 교회
​Triangle Grace Korean church (PCUSA)

5001 Tudor Place Durham, NC 27713 
대표전화 919-530-9771 

은혜 장로 교회 
​서기남 목사  
주일 예배 : 주일 PM 2시
어린이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Youth 및 대학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다락방모임 : 주일 PM 3시 30분
금요 집회 : 금 PM 7시
새벽 기도회 : 토 AM 5시30
경건의 훈련: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 목요일 오전  9시 20분
사랑방 모임:
각 사랑방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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