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기자는 믿음의 종류에 작은 믿음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작은 믿음은 큰 믿음이 있어야 함을 전제합니다. 작은 믿음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제자들이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를 뒤엎드려고 했을 때 두려워하며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려고 했을 때입니다. 작은 믿음은 큰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크고 엄청난 것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는데 풍랑이 자기들이 탄 배를 덮으로 했을 때 두려워하며 큰 풍랑이라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다시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예수님께서 계셔도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제가 다시 잊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을 한 것은 예전에도 이 내용을 한번 말씀드렸음을 전제합니다. 사탄은 예수님, 그것도 40일 금식을 하시고 성령충만하신 때에 와서 시험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주무실 때에는 당연히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고, 베드로는 악마가 우는 사자처럼 삼킨 자를 찾으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으라(벧전5:8)고 했습니다. 본문의 다음 사건이 거라사의 광인에게 있던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쫓겨나가 돼지 때에게로 들어간 후 돼지 떼들을 몰아서 바다로 들어가서 돼지들을 모두 죽인 일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큰 돼지 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두 가지가 생각됩니다. 첫째, 예수님과 큰 돼지 떼입니다. 사람들은 큰 돼지 때로 인하여 예수님을 동네에서 떠나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여 주신 예수님은 돼지 떼 이상의 것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들어오신 복을 한갓 돼지 떼로 인하여 밀어낸 어리석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돼지 떼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천하보다 한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조그마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복음을 멀리하게 한다는 귀한 메시지를 잊지 마십시다. 작은 믿음은 예수님이 계서도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믿음 없음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밀어내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온 세상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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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가셨다가 열병으로 앓으며 누워있는 베드로의 장모님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들, 병이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귀신들리라고 아픈 모든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마태는 그런 예수님에 대하여 사53: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그는 우리의 병약함과 질병을 짊어지신 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의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와서 자기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라에게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 한 사람은 그와 반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하여 달라며 허락을 요구하였을 때 당신은 나를 따라 오시오.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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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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