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장로교회
  • 홈
  • 교회소개
    • 교회소개
    • 담임목사
    • 섬기는 사람들
  • 예배안내
    • 설교말씀
    • 성가대
  • 양식 및 교제
    • 매일의 양식
    • 다락방 >
      • 전도 다락방
      • 바나바 다락방
      • 봉사 다락방
      • 중보 다락방
    • 기도제목
    • 자료실
  • 어린이부
    • 오늘의 말씀
    • 갤러리
  • EM
    • Prayer Request
    • Our Daily Bread
    • College Ministry
    • Youth Ministry
    • Event
    • Prayer request
    • College Group Bible Study
  • Calendar

​Today's Daily Bread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영의 매일 양식 
성서 유니온 선교회 2020년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합니다.

헌납을 더 이상 하지 마세요.

1/31/2016

1 Comment

 

성막을 제조하기 위하여 헌물을 받았는데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바쳤답니다(35:29). 헌물이 너무 많아서 급기야는 성막을 위한 헌물을 더 이상 헌납하지 말라(36:6)고 알렸답니다. 대단한 역사 아니겠씁니까? 금, 은, 놋쇠, 돌고래가죽, 물개 가죽, 숫양 가죽, 염소털, 청색 실, 자주색 실 모두 진귀한 물품들이었습니다. 기쁜 마음과 즐거운 마음,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헌납하였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조건을 충분히 갖춘 헌금의 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헌금을 하십니까? 하나님께 바칠 때는 아까운 마음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바치지 말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넉넉하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고후9:7). 
성막을 제조하였던 브살렐이나 오홀리압, 그리고 그들을 도왔던 분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4:2, 참고, 계2:10). 충성한다고 제 뜻대로 제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자기가 받은 재능을 충성스럽게 봉사할 수 있음이 면류관을 받게 될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께서도 헌금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시고, 봉사도 자기의 뜻이나 계획에 따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순종하며 충성하셔서 면류관을 받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1 Comment

화가 나신 하나님

1/30/2016

1 Comment

 

주님께서 모세에게 34:6절에서 "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라고 소개를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출3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 갑갑하고 답답한 백성들이 아론을 찾아와서 모세를 찾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전달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론이 백성들에게 여인들의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를 빼서 자기에게 가지고 오라고 한 후 그 금들로 송아지 신상을 만들어서 그것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이라고 하면서 송아지 신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먹고 놀았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읽으면서 두 가지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장면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와를 테스트해서 하와의 수준에 맞는 내용으로 접근을 해서 하와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한 후 죄를 범하게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철저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에게 감히 가지 못합니다. 한 길로 갔다가 열 길로 도망을 쳐야 하는 불쌍한 신세가 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짓도 합니다. 시험을 해도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대변인이 되었던지 모세를 수종드는 사람이 되었던지 사탄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론은 사탄의 그 시험에 하와처럼 빠지고 말았습니다. '직분자가 아니므로 책임이 없으니 사탄이 나에게 안 오겠지 시험을 하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먼저 사탄이 접근을 합니다. 두번째로 생각하게 된 것은 여인들의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입니다. 과거는 현재와 달리 귀에 달던지 코에 달던지 모두 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상들입니다. 지금도 완전히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몸에 달고 다니는 것, 우리나라에는 부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하고 다니는 것들을 보면 부적만이 아니라 목걸이 귀거리와 같은 것들이 우상들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보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만든 우상이 송아지였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십자가 상도 일종의 우상입니다.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을 낳는다는 좋은 예를 아브라함의 후처 하갈을 통해 이미 경험하였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가 거짓말을 해서 얻은 잘못된 선물이 하갈이었습니다. 그 하갈로 인하여 생겨난 자식이 이스마엘이었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로 인하여 마음에 큰 고통을 가졌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고통을 갖고 있습니다. 꼭 기억하여야 합니다. 잘못은 더 큰 잘못을 낳게 되고 고통과 재앙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혹시 당신에게 하나님께 숨기고 있는 것, 잘못된 습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행하는 것이 있습니까? 회개하시고 지금 이시간 정리하시길 축복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징계와 화를 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하여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습니다. 우리말에 떡잎부터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니 그들의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시자 모세가 중재자로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 마구 들이댑니다. 죽기살기로 그래서 자기의 이름을 주님의 책에서 지워달라(32:32)고 까지 합니다.  모세의 중재에 하나님은 계획을 멈추시고 결국 모세의 간청대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기로 하십니다. 이런 환경을 목격하면서 중재, 특히 중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 중에 여호수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3:11절에서 모세의부관으로 모세와 늘 동행하던 여호수아는 자신의 상관 모세가 하나님과 기도를 하고 떠난 이후에도 장막을 떠나지 않았다고 소개합니다. 여호수아가 어떻게 모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왕궁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인물도 아니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를 보필하면서 경건에 열심을 가졌습니다. 모세보다 조금 더 경건하고자 했습니다. 많이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지만 모세을 이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영도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자신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성과 경건을 자신의 후계자나 자손이 봅니다. 그것을 안다면 하나님을 향한 본인의 영성과 경건이 매우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관과 이성을 통해서 사리를 판단하고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여호수아와 같은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고, 믿음의 자식을 양육할 수 있게 됩니다. 
모세의 중재와 간청에 따라 돌판을 새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번 무교절, 칠칠절, 수장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나오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쉬게 하라고 하십니다. 왜 이 말씀을 또 하셔야 할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무엇으로 입증하십니까? 십일조?, 주일 예배?, 전도? 그것보다 더 기본이 되는 것이 안식일 성수입니다. 기독교가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을 하신 것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일요일로 옮겨서 주일로 정했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만 있지 않고 예배도 드리고 친교도 하며 온 종일 쉬며 주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주님은 기회가 될 때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날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서 영광이 빛이 나서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모습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음식을 먹지 못했으나 오히려 빛이 났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제물의 음식과 왕의 음식을 거절하고 대신 채소를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심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세상에서 필요한 것, 주님과 당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공급하여 주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과 실재를 갖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기억하십시다. 크리스천이란 왕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의 왕만이 아니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왕이십니다. 그 왕의 사람다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기신 예수님의 그 모습이십니다. 그때 모세에게서 난 영광의 빛 이상의 빛이 왕의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빛, 하나님의 빛을 발하며 사는 당신과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1 Comment

깔끔한 정리

1/29/2016

2 Comments

 

좋은 일,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도 뒤처리를 잘 하지 못하는 공사가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물건도 그렇습니다. 소위 명품이라는 물건들을 보면 사람들의 시건이 잘 가지 않는 곳까지 깔끔합니다. 포장까지 그렇게 합니다. 한 마디로 완벽합니다. 성막을 만들게 하신 하나님께서도 끝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계십니다. 그냥 어설프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는데 성막 어느 한 곳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려 주시는 대목입니다. 먼저 분향단을 말씀하십니다. 분향단에서 향을 내는 연기는 기도라고 알려 져 있습니다(계5:8). 분향단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만나신다는 시온좌 앞에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분향단의 향불은 아침 저녁에 반드시 피우라고 하십니다. 또한 다른 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향을 피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기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아서인지 사무엘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짓지 않겠다(삼상12:23)고 약속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며 기다리시는 향입니다(계8:3).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약간의 부담도 주십니다. 성막을 위한 반세겔이라는 세금을 내게 하셨습니다. 제사법을 말씀하는 곳에서 나오겠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행당되는 제물을 갖고 와야 합니다. 가난한 자도 예외가 아닌데 그렇다고 부자들처럼 송아지나 양이 아니라 새와 같이 작은 것들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소를 위해서는 부자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반세겔을 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와 함께 성전 세를 내기도 하셨습니다(마17:27). 성전세나 성막세를 내어야 하는 것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드리는 헌금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잘못이십니다. 성막 세나 성잔세는 성전이나 성막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바치는 세금이고, 제물은 순구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내라는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여야 하는 제물을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내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성막과 성전을 위해서는 누구나 동일하게 세금을 내게 하셨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신약의 시대는 구약과 다르므로 가난하거나 신입자들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셔야 합니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책임을 하지 않는 것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투표를 할 때 권리를 행사하시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은 하는 것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놋두멍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는 바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서 구비한 것인데 이도 역시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게 하신 것입니다. 놋두멍은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이 본인들이 사역을 하면서 더럽혀진 손과 발을 놋두멍의물로 씻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놋두멍과 관련된 말씀들을 묵상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성도들도 이모양 저모양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처, 쓴 뿌리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감이 옳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제사장들은 번제단에 드릴 제물들을 죽일 때 묻는 피, 그리고 제물을 태우면서 묻게 되는 재들도 씻어내야 합니다.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지 상처나, 쓴 뿌리, 또는 자기의 업적, 봉사, 수고를 갖고 가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1장에서는 회막의 기술자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시고, 나머지 기술이 있는 사람들도 이미 지명을 하신 사람들과 협력하여 사역하게 하십니다. 브살렐은 레위 지파의 사람이 아니고, 유다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홀리압 역시 단 지파였습니다. 이는 모든 지파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은사들로 함께 주님의 성막과 사역에 협력해야 함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에는 안식일의 준수에 대해 말씀하시며 경고하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십계명 네번째에서 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성막을 정리하시면서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안식일을 준수함이 어렵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분의 고백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못하도록 많은 변명거리가 있으나 두말말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쉬지 못할 일이나 사업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처음서부터 그런 일을 맡지 않도록 기도함이 좋습니다. 그런 일을 맡았다면 하나님과 해결하셔야 하지만 재리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분이 계시다면 문을 닫고 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쉬시라고 권면합니다. 출31:15절 후반부에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 말씀을 성막 마지막 부분에서 하셨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비지네스를 망하지 않기 위해서 안식일,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망하겠다는 마음으로 쉬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을 버는 것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지 말고 쉬라는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맛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2 Comments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사람들

1/28/2016

2 Comments

 

오늘 읽으시는 말씀은 제사장들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아론과 아들들과 그의 후손은 야곱의 아들들 주에 레위의 후손들입니다. 레위가 어떤 아들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아버지의 일을 방해한 아들 중 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으면서 아들들을 축복할 때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내용을 보면 그들이 어떤 아들들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난폭하게 칼을 휘둘렀다 하였고, 화가 나면 사람도 죽이고, 장난으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노여움과 분노가 맹렬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자의 후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세우셔서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배려를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됩니다. 자신들의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뵙게 그 하나님과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마 어느 누가 전달하는 것보다 효과가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효과를 사용하셨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예복을 입게 하셔서 행동과 말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런 구분을 주셨는데 필요에 따라 좋은 것만을 취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큰 벌을 내려셔서 죽게도 하셨습니다. 심지어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부정하면 죽게 하셔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옷 끝자락에는 방울을 달아서 살아 움직일 때에는 방울소리가 났지만 죽었을 때에는 방울 소리가 나지 않아서 죽은 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혜택도 주셨지만 심판도 엄중하셨습니다. 
제사장의 복장은 타인들의 복장과 다른 것을 만들어 입게 하셨습니다. 파란 색깔의 옷을 입게 하셨는데 그 안에는 속 옷을 입게 하셨고, 그 바깥에는 에봇이라는 마치 앞치마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입게 하셨습니다. 에봇에는 가슴 쪽에 주머니를 만들어서 우림과 둠밈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 때 사용하는 우림과 둠밈은 빛들이라는 뜻과 온함함들이란 뜻인데 학자들은 주사위와 같은 모양으로 제비를 뽑을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합니다. 주로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를 분별하였답니다. 
베드로전서2:9과 계1:6절과 롬15:16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생활 뿐 아닐 옷까지 구분하셨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람답게 생활하며 예배드리는 거룩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인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하여 중보를 하지만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사람있음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2 Comments

새 사람, 새 환경

1/27/2016

2 Comments

 

성경에서 시내산은 하나님이 출현하시는 거룩한 산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산을 가리켜서 이따금씩 호렙산이라고 표현하고 느보산으로도 표현합니다. 왜 이렇게 이름이 바뀔까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산의 이름이 다양한 이유를 압니다. 큰 산맥이 있고, 지역에 따라서 봉우리나 산을 다르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님의 말씀과 법규를 주셔서 이 말씀을 지키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백성들의 주님, 곧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증표로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대로 기둥을 열두개 세웠습니다. 이는 마치 두 남녀가 사랑을 하여 결혼 예식을 통해 서로를 향해 사랑과 보호와 책임을 고백한 후 증표로 예물반지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물을 주셨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장로 일흔 명에게 하나님과 그 세계를 보여주신 일입니다. 24:10절에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깔아 놓은 것 같으며 그 맑기가 하늘과 꼭 같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뵈었는데도 죽지 않고, 하나님을 뵈며 먹고 마셨다(24:11)고 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이 계신 곳을 알려준 곳은 계시록이 또 있습니다. 그동안은 말씀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려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직접 하나님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이 계신 천당을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깨달을수록 더욱 깊고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25장부터는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5장부터 31장까지이고, 35장부터 출애굽기를 정리하는 40장까지 다시 성막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몰라서 지루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그곳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렵고 지루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사람마다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인내하면서 계속 읽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읽지 못하겠지만 계속 읽으면서 내용과 친해지게 됩니다. 물론 성경이므로 기도해야 하겠지요. 성막이 하나님께 중요하여서 2회에 걸쳐서 설명을 하고 계시므로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 성막에 대한 내용도 우리는 읽고 또 읽어서 머리 속에 들어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막이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동용 천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에 머무시면서(25:8)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겠다(25:22)고 하십니다. 그 동안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는데 왜 눈에 보이는 성막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고 그곳에서 만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까요? 그렇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교회 당을 건축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교회에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셨을까요? 착각하시면 곤란한 것이 하나님께서 한 장소에만 계신다는 오해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막이나 예배 당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배를 받으시며 예배 중에서 말씀하여 주심'을 알려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또 다른 좋은 이유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이나 예배 당에만 계신다는 오해와 함께 사람들이 범기 쉬운 죄악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막이나 예배당, 성전과 같은 건물을 숭배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이나 성전, 예배당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형상까지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에 계시며 백성들을 만나시고, 저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말씀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여야지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절하고 예배하며 섬기는 그런 오류는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성막을 지으면서 헌금의 원리를 알려 주십니다.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을 받으라."(25:2)고 하십니다. 신약 고후9:7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에게 진귀한 보물들을 막 주게 하셨다고 했는데 바로 이때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물을 간직하게 되었어도 그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는 것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을 생각하면서 제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말씀은 성막의 주요 자재가 아카시아 나무라는 점입니다. 제가 어릴 때 사용하던 성경에서는 조각목이라 하였고, 조금 쉬운 말로 번역한 성경은 싯딤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싯딤 나무라는 표현이 저 가까울 것입니다. 그 나무가 정확하게 아카시아 나무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무는 아카시아가 맞습니다. 싯딤 나무는 아카시아 나무과에 속한 나무인데 아카시아 나무보다 더 작고 쓸모가 없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목재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못이 바퀴지도 않고 못을 박으면 바로 갈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향목(티크나무)은 아니라 할지라도 용도에 맞게 쓸만큼 나무가 곧아야 하는데 비뚭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땔감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잘 타지 않을 뿐 아니라 화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썪습니다. 한 마디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 아카시아 나무를 성막의 주 재료로 사용하게 하셨다는 점이 저에게 도전이 됩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사용하되 그 나무를 금으로 싸고 은으로 입히고, 놋으로 보강을 시키라 하십니다. 마치 교회를 이루는 교인들과 같지 않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한대로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높고 귀하게 평가하지 않고 죄인들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을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하시고, 인물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성령님으로 말씀으로 은혜와 사랑으로 입히시고 덮어주시고 세워주셔서 가장 중요한 곳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은혜이고, 성막에 사용될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던지 내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교회의 한 부분을 감당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나타내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주장하게 되면 자신의 부족이 드러납니다.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면 못난 것이 드러나서 망신만 당하게 됩니다. 그저 언제나 예수님,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주신 십자가를 나타내면 금처럼, 은처럼, 놋처럼 가치가 있고, 유용하게 되고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막을 읽으시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가 체험되고 감격과 감사의 찬송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2 Comments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1/26/2016

2 Comments

 

오늘 읽으신 말씀에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따금씩 '누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라는 말들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지만 공의롭고 정의로우십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법이 없이 살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하나님께서는 법을 주셨습니다. 재미있는 현상 중에 하나가 남의 물건을 맞았는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갔을 때입니다. 남의 물건이 돈인가? 아니면 짐승인가를 갈라서 설명하십니다. 돈일 경우에는 돈을 맞은 사람이 그 돈에 손을 대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판단하라 하시지만 짐승일 경우에는 아무도 모를 때 스스로 바깥으로 나갔는가? 도둑이 와서 훔쳐갔는가?를 다시 구분하여 주시고, 도둑이 훔쳐갔다면 배상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맹수에게 물려서 죽었을 경우에는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짐승을 빌렸을 때에 불행하게 그 짐승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에 짐승이 상해를 받았을 때 주인이 함께 있었으면 물어주지 않지만 주인이 그 자리에 없었을 때에는 물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빌린 값은 계산에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매우 자세하게 시비를 가려 주십니다. 정의에 관한 법의 정신은 가난한자, 나그네, 과부, 고아의 입장에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늘 유의해야 하는 절기가 나오는데 이스라엘에는 매우 많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과 관련된 절기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습관이 유대인들에게는 기초입니다. 그 절기들 중에서 세 절기 때에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에서 해방된 유월절부터 일주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이란 노예가 주인이 된 날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절기였고, 그때의 식사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과 양고기였습니다. 그리고 서서 서둘러서 먹어야 했습니다. 해방을 받을 때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맥추절은 첫번째 추수를 하는 그때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 첫것은 하나님의 것이 분명합니다. 땅도 하나님이 주셨고, 생명도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첫번째의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바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에 대한 이름을 성경에서는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칠칠절, 오순절, 초실절이라도 불립니다. 중요한 것은 첫번째 수확을 한 때이고, 그때 하나님을 찾아서 뵈며 제사와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장절은 팔레스틴에서 포도와 올리부 등의 모든 농산물 수확이 끝나는 계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과 같은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광야의 생활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장막절과 일치합니다. 그러니 수장절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농산물을 수확한 후에 자녀들과 함께 일주일동안 광야 생활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나누고 전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수장절을 초막절, 장막절이라고 합니다. 이 삼대 절기 때에는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감사하고 제사를 드리는 때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 하나님을 만나뵙고 감사드리며 제사를 드리게 하신 말씀이 예배를 한 시간, 반시간으로 줄이면서 점을 찍는 정도로 생각하려는 어떤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법과 절기에 대한 말씀만을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배려하시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때에 말벌을 저들보다 앞에 가게 하셔서 그들을 쫓아내시겠는데 한꺼번에 모두 쫓아내시지 않고 점차적으로 조금씩 쫓아내겠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한꺼번에 쫓아내면 들짐승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가나안을 정착할 때에 주신 경고가 그들, 그리고 그들의 신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하나님 이외의 다른 무엇과 언약을 하는 것은 양다리를 걸치는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현재나 미래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고 예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2 Comments

하나님의 기대

1/25/2016

2 Comments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에게서 해방을 시켜 주신 일을 마치 독수리가 자신의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인도하였다(출19:4)고 말씀하십니다. 
19:5절과 6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갖고 계신 기대를 알려 주십니다.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그 기대감을 갖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을 시키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깨들에게 큰 날개를 갖고 하늘의 왕자가 되게 하기까지 높은 봉우리에 데리고 올라가서 떨어뜨리고 떨어뜨리는 훈련을 하듯이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되기까지 훈련을 하시지만 그들에게 적합한 훈련의 과정을 주시고, 시험당할 때에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피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과 기대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유대인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백년의 크리스천 신앙 역사를 가진 유럽인들도 아닙니다. 하늘을 찾은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을 몰랐던 민족이고 사람들이므로 하나님을 믿고, 안다고 하지만 사실 너무나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말씀 그대로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할아나서 하나하나 모든 것을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묵묵히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경계'를 강조하십니다. 심지어는 제사장들까지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시고,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죽게 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보면 경계가 어느 곳에든지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도 경계가 있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경계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경계는 우리들이 말하는 계급이 아니고, 평화의 전제가 되는 질서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경계를 알고 경계를 지키는 것은 성령의 열매 중 절제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만일 경계를 없애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마치 동성애와 같은 현상들입니다. 경계와 질서를 알고 그것을 지키며 유지함이 중요합니다. 20장에서는 십계명을 알려 주십니다. 경계에 대한 중요하고도 구체적인 안내입니다.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관련된 말씀이고, 6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질서를 지킬 때에 평화가 오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 순종함이 입증됩니다. 물론 십계명을 지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므로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의무감으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하는 일이므로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하바드 대학이나 서울대학교의 공부가 다른 학교보다 힘이 들지만 누구나 그들의 공부를 할 수 없음을 알고 자긍심을 갖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함처럼 하나님께서 십계명은 아무에게 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을 받고 아직 자신에게 낯설고 지키지 않는 그런 계명이 있습니까? 교회 성장학의 대가이신 바그너 박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은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만큼만 받아서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똑 같은 양의 복을 풍성하게 주셨지만 자기가 해야 할 계명들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풍성한 복은 모자라는 그곳으로 모두 흘러나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양한 계명 모두를 지키면 지킬수록 하나님이 주신 복들이 당신 안에 채워지고 당신은 그 복들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성하고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그 은혜와 혜택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2 Comments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

1/24/2016

1 Comment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자기들을 붙잡으로 오던 바로의 정예군사들이 수장을 당할 때 두 가지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참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엄위하시구나. 또 한 생각은 하나님을 향한 그런 거룩한 부담은 있어도 기분이 좋다. 자기들을 괴롭히던 병사들 보다 훨씬 뛰어난 바로의 정예군들까지 자기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수장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아마 우리 이런 사람이야. 이제 알았어? 세상을 향해서 큰 소리를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수르라는 광야에 도착했을 때 너무 더웠으나 물이 있어서 안심을 했는데 마셔보니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짠 물 바닷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습관대로 불평하고 원망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점잖케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출1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우리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우리를 병에서 치료하신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바로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하나님, 곧 '야훼 라파'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어제 읽으신 출15:26절에 있습니다. 잘 기억해 두십시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53:5절 후반부 맨 마지막 부분에 "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맞으심으로 써 우리가 앓을 병을 미리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치료의 하나님이신데 그 말씀이 출15:26절에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16장부터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처럼 읽지 마시고 믿음의 마음과 눈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큰 은혜가 되어서 본인에게도 적용이 잘 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고, 수르 광야와 종료나무가 있는 엘림을 지나서 신광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들이 갖고 았던 양식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받기 전에 그리고 해방이 되어서 모세의 인도를 받으면서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가 눈에 띱니다. 뭐죠? 네, 불평과 원망입니다. 그들이 노예로 살아서 상급자들의 눈체를 보고 서로 고자질하여 이간하고 게으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여도 이제는 하나님을 조금은 알고 그런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습관을 버려도 될 터인데 계속 그 근성과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모세는 그냥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에 대하여 주시는 응답은 그들이 원했던 것 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그뜻이 만나인데 만나의 특징은 달고 맛있었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날짜만 넘기지 않으면 썩질 않습니다. 평일에 날짜를 넘겼을 때는 반드시 썪어서 구더기가 끼고 냄새가 났는데 안식일을 낀 주말에는 그런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참 대단합니다. 요즈음식으로 하면 하이브리드 슈퍼 푸드 같습니다. 정말 그런 음식입니다. 시78:25절에서 그 음식은 바로 천사들이 먹는 음식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급하신 음식은 천사들이 먹는 가장 좋은 음식이었답니다(출16:35). 20백만이라는 숫자가 한끼도 거르지 않고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물을 달라하셨을 때 바위를 쳐서 물을 주셨는데 그 물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셨던 배 속에서 생수가 솟아나는 약수보다 더 좋은 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문제가 끝나자 아말렉이란 족속이 겁도 없이 이스라엘을 처들어 왔습니다. 그때 모세는 여호수아를 보내서 그들을 대항하게 하는데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대항하는 동안 모세는 하나님께 나가서 손을 들고, 기도를 합니다. 모세가 힘이 다했을 때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와서 함께 손을 들게 하여 이기게 하는데 그때 '야훼 닛시' 곧 야훼는 나의 깃발이란 제단을 쌓습니다. 군대에서 기는 그 군대의 전투력과 명예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병력, 곧 군인의 숫자, 말, 병거, 요즈음 말로 하면 수소 폭탄, 원자폭탄을 장착한 이지스 군함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저들의 병력이시고, 능력이셨습니다. 그래서 잠언 여러곳에서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이나 병력이나 군마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한다고 하였습니다. 네, 여호수아가 장정들을 데리고 가서 아말렉을 대항했다 하여도 그들 중에 누가 전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말렉과 싸워서 대승을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정예병을 수장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패배시키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배워서 마음에 새겨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요? 당신의 마음에 기억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매우 넉넉하십니다.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보다 언제나 넉넉하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비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심처럼 주실 것을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가 달라고 하면 즉각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18장에서는 모세의 장인이 오셨다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을 세워서 모세를 돕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꼭 아셔야 하는 것이 사람이 만든 행정이나 조직에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집사를 세울 때, 그 이전 가룟 유다를 대신 한 제자를 보강할 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보면 거기에 목숨을 거는 분들도 계시고, 교회를 들었다 놨다 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헌금을 갖고 직분을 사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다가 직분을 받고 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구요. 하나님을 모르고 교회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들이십니다. 오늘 저의 설명을 들으시는 분들은 직분은 주님의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필요에 따라서 주신 것임으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신앙이 있는 분이라면 시피면 합니다. 안시켜도 시험안받습니다. 은혜 안에서 자연스러워야지 한다. 안 한다. 누가 하는데 나는 왜 안 되냐? 참 창피한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장인이 직분자의 기준에 대하여 능력과 덕을 함께 갖춘 사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되어서 거짓이 없으며 부정직한 소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 안에서 순종할 뿐입니다. 하라고 하시면 "부족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라면서 감당해야지 사회의 어떤 자리를 위해 경쟁을 하는 것처럼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실 평온할 때는 저를 통해서 주시는 직분에 대하여 별 이견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투표에서 본인의 이름이 거명도 되지 않고 피택이 되지 않으면 시험에 걸려서 교회를 나가네, 들어가네 하는 분들이 한 두분이 아닙니다. 빛은 어두울 때에 필요합니다. 믿음은 시험받을 때에 시험 안받게 합니다. 십자가 지고, 헌신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맡는 것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분은 직분과 함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직분은 거리를 두시고 맡기실 때 충성하시길 권면합니다. 

1 Comment

하나님의 전술

1/23/2016

1 Comment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내용입니다. 이집트에서 해방을 받은 것도 유명하지만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를 건넌 사건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어떤 신학자들을 통해서 Red Sea를 Reed sea로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홍해를 갈대숲으로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영어를 포함해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갈대숲을 건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일입니다. 그런 평범한 일을 경험한 후에 모세와 미리암,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함성을 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까? 이따금씩 이단들이 출현해서 믿음에 서 있는 분들을 흔들고, 그분들을 교회에서 뽑아다가 자신들의 집단으로 옮깁니다. 그러다가 아무런 책임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런 현상이 생기면 호기심과 순결한 믿음이라며 이단을 신봉했던 분들의 믿음의 뿌리가 말라버리게 됩니다. 이단이나 사탄들이 주장하는 이론이나 말들을 차분하게 검토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것임을 아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을 신봉하다가 패가망신하고 믿음에서 뽑혀져 나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홍해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이 매우 맑아서 바다 밑이 보이는 정도이지만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매우 깊습니다. 우리가 출14장을 읽게 될 때 가장 관심 있는 내용이 홍해를 건넜다는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읽다보니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로 인도하셨을까?’를 그냥 건너뛰게 됩니다. 그런데 2절과 3절 그리고 4절 말씀을 주의해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셨음을 알게 됩니다. 2절 첫 번째 문장을 보면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군가가 길을 잘못 인도했었나 보다.’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은 잘못 인도하셨기 때문이 아님을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앞으로 가서 그곳에 서게 함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가 홍해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그의 군대를 데리고 왔을 때에 그들을 물리치심으로써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세는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서 있었고, 뒤에는 바로의 정예병과 병거가 추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안해하며 모세 자기에게 원망할 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는 보는 이 이집트 사람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출14:13) 라고 자신 있게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14:15 말씀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왜 너는 부르짖느냐?”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 사람들 나아가서 인근의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한 계획(참고, 출15:14~16)을 이미 알려주신 하나님이셨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대하셨던 내용은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 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왜 부르짖느냐?” 라며 모세를 일깨워 주신 후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 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 덕분에 졸지에 홍해를 가르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동참자가 되면 홍해도 가르고, 아말렉도 물리치게 되고, 미디안 군사도 물리치고, 사탄과 질병과 고통들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은 그 어느 전쟁의 전술보다 뛰어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는데 바닥까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도록 마르게 하셨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아셔서 백성들을 중심으로 전술을 계획하셨는데 그동안 구름기둥을 인도하던 천사들을 백성들의 맨 마지막에 배치하시자 구름기둥까지도 백성들의 맨 마지막에 가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러셨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이집트 병예병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없게 하시기 위함이셨고, 이집트 병사들로 하여금 앞으로 전진 할 수 없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불기둥을 배치하셔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안전하게 잘 건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건너자 모세로 하여금 팔을 다시 내밀게 하셔서 갈라졌던 홍해를 원상태로 붙게 하셨습니다. 구름 때문에 앞을 가지 못 가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군사들의 병거 바퀴를 빠지게 하셔서 시간을 더욱 지체하게 하셨답니다. 홍해 가운데서 오두가두 못하던 그들이 물이 다시 붙게 되자 그들은 모두 깊은 바다 속에 빠져 죽이셨는데 모세는 ‘그들의 주검이 무거워져서 마치 납덩이가 물에 빠진 것처럼 물에 잠겨버렸다.’(출15:10) 고백하였습니다. 어려움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고, 해방되었을 때 기쁨과 감격을 하나님을 향한 기쁨을 갖고 감사하시겠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길 기대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말씀을 진진하게 듣고, 순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에서 해방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세상 무엇에서도 얻지 못했던 기쁨과 평안이 아닙니까? 바울은 강조하였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죽음이라는 저주에서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물로 더하여 주지 않으시겠습니까?(참고, 롬8:32)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사탄은 더 이상 위협의 존재가 아닙니다. 악마가 그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참고, 요일5:18절 후반부).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셨습니까? 그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마시고 더더욱 욕심을 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에 농락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예수님의 향기와 맛과 빛을 드러내는 복이 임하실 것입니다. 

1 Comment

어서 일어나서, 어서 내 백성에게 떠나가라.

1/22/2016

2 Comments

 

오늘 우리들이 읽은 범위는 출11~13장으로 세 장 밖에 되지 않지만 내용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모두 중요한 내용이므로 꼼꼼히 읽어두심이 영적으로는 물론이고 앞으로 출애굽기서를 읽으실 때 많은 도움이 되십니다. 
먼저, 어서 일어나서, 어서 내 백성을 떠나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욕심과 고집에 붙잡혀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토록 내 주기 싫어하셨던 바로입니다. 바로가 그렇게 하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리고 12:12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신들을 벌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집트 사람이나 그들의 짐승 첫 것들이 죽을 때 이집트의 신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신들은 물론이고, 공중의 권세자들까지 모두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시면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나름 영향력을 행사하던 잡신들과 귀신들이 예수님이 계시면 모두 꼬리가 빠지게 도망을 치고,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한 잡신들이 말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되어 버림을 깨닫는 것이 좋으십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크시고 전능하시고 엄청난 분이십니다. 
출12:12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왜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집트의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알게 하시기 위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가 누구입니까? 주인이고, 상전이고 왕 아닙니까? 그들의 신은 이스라엘에게 무엇입니까? 경배와 제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과 개구리와 이, 파리, 가축의 병, 피부병, 우박, 메뚜기, 어둠,  생명들은 모두 이집트 사람들이 받들던 신이며 우상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장 크고 귀하신 신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부심을 갖게도 하셨습니다. 위상이 달라진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을 했으니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 얼굴이 매우 뜨거웠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만이 아니어고 하나님께서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속히 빨리 떠나보내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당히 이웃 집에서 보화와 보석과 같은 귀한 것을 주장할 때 그들은 기뻐하면서 주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한 두번 더 살필 내용이지만 보화와 보석 얼마나 좋습니까? 이집트 집에서 받은 보화와 보석을 모두 모아서 운반했다면 그것을 운반하는 데에만 많은 수고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도둑이나 강도,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도 싸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들이 보관하여 운반하게 하심으로써 보화와 보물로 인하여 소모되는 노력과 수고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성막을 건축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보화와 보물을 수거하게 하셔서 넘치는 재력으로 넉넉히 만들게 하십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식견은 사람들이 그냥 고개를 숙이게 하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함이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고 히브리 사람들이 아닌 다른 종족의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해방 대열에 합류했다는 말씀(출12:38)입니다. 수를 셀 때는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히브리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과시용이 될 수 있어서 또한 범 인륜적인 측면에서 다른 민족들까지 구원을 할 수 있어서 좋았을지 모르지만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문제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이 불평과 불만이 시작이었다는 점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왜 데리고 오냐고 거론은 하지 않으셨지만 이스라엘의 해방대열에 그들도 함께 하였다는 말씀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면에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생각합니까? 교회의 거룩함과 맛을 생각합니까? 교회가 시궁창에 빠지고, 밖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교회와 신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지 양적으로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아무나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선택하셔서 부르신 그 사람들을 세워야 함을 배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에게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우러러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이 하루 속히 떠나게 하였고, 자신들의 귀한 것들도 챙겨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면서 이스라엘에게도 또 다른 명령을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재정하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교절을 일주일 동안 지키며 특별한 음식과 먹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구원자이심을 알려 주시기 위하심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조그마한 행동들을 하게 하심으로써 해방과 구원과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키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여 건강하게 부흥하게 하고 교회를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이웃과 이방 민족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행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중요한 또 다른 내용은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심입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짐승의 장자들을 죽이셨지만 이스라엘은 살리셨습니다. 그것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자가 하나님의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대신하여 레위인들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장자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들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게 하심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정도만 되어도 내용이 많은데 꼭 읽으셔야 할 내용이 출13:17절과 1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블레셋을 경유하여 빨리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이유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전쟁을 보면 이집트로 되 돌아갈까봐. 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계획이 모두 있으심을 기억하십시다. 
또 한 1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가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실현케 한 선조이고, 하나님께는 충성스런 종이었고, 야곱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백성, 자녀, 종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행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잊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 행하는 충성과 순종과 존경과 헌신, 경건은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며 충성하시길 축복합니다. 

2 Comments
<<Previous

    ​Archives

    May 2022
    April 2022
    March 2022
    February 2022
    January 2022
    December 2021
    November 2021
    October 2021
    September 2021
    August 2021
    July 2021
    June 2021
    May 2021
    April 2021
    March 2021
    February 2021
    January 2021
    December 2020
    November 2020
    October 2020
    September 2020
    August 2020
    July 2020
    June 2020
    May 2020
    April 2020
    March 2020
    February 2020
    January 2020
    December 2019
    November 2019
    October 2019
    September 2019
    August 2019
    July 2019
    June 2019
    May 2019
    April 2019
    March 2019
    February 2019
    January 2019
    December 2018
    November 2018
    October 2018
    September 2018
    August 2018
    July 2018
    June 2018
    March 2018
    February 2018
    January 2018
    December 2017
    November 2017
    October 2017
    September 2017
    August 2017
    July 2017
    June 2017
    May 2017
    April 2017
    March 2017
    February 2017
    January 2017
    December 2016
    November 2016
    October 2016
    September 2016
    August 2016
    July 2016
    June 2016
    May 2016
    April 2016
    March 2016
    February 2016
    January 2016
    December 2015
    October 2015
    September 2015

    RSS Feed

은혜 장로 교회
​Triangle Grace Korean church (PCUSA)

5001 Tudor Place Durham, NC 27713 
대표전화 919-530-9771 

은혜 장로 교회 
​서기남 목사  
주일 예배 : 주일 PM 2시
어린이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Youth 및 대학부(영어) 예배 : 주일 PM 2시
다락방모임 : 주일 PM 3시 30분
금요 집회 : 금 PM 7시
새벽 기도회 : 토 AM 6시30
경건의 훈련: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 
​                       
목요일 오전  9시 20분
사랑방 모임:
각 사랑방 별로
Website by Nanum Communication
  • 홈
  • 교회소개
    • 교회소개
    • 담임목사
    • 섬기는 사람들
  • 예배안내
    • 설교말씀
    • 성가대
  • 양식 및 교제
    • 매일의 양식
    • 다락방 >
      • 전도 다락방
      • 바나바 다락방
      • 봉사 다락방
      • 중보 다락방
    • 기도제목
    • 자료실
  • 어린이부
    • 오늘의 말씀
    • 갤러리
  • EM
    • Prayer Request
    • Our Daily Bread
    • College Ministry
    • Youth Ministry
    • Event
    • Prayer request
    • College Group Bible Study
  • Calend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