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이란 말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한 것도 볼 것이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통해서 배운다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약속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또 한 사람은 믿음과 주님의 약속을 결부시킴으로 그 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갈렙은 나이가 85세가 되어서 여호수아에게 아낙 자손들이 사는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주님의 약속에 근거한 청이었고, 갈렙은 85세라는 나이로 헤브론 땅에 올라가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자기의 땅을 만들었습니다. 85세의 할아버지가 싸워서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더욱이 아낙 자손이라 하면 가데스 바네아의 열두 명의 정탐꾼들 모두가 자기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똑 같은 현상을 보고 그렇게 믿고 고백할 수 있음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었고, 그런 약속을 하신 하나님은 아낙이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너무 커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보시면 나이가 85세가 아니라 백 세에도 아들을 나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백 세가 넘은 후에 아내 사라가 죽은 후 그두라라는 여인을 만나서 자녀를 여섯 명이나 더 낳았다고 합니다(창25:2).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물론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사라와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가 없었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99세에 와서 내년에 사내를 낳을 것이라고 하셨을 때 자기와 사라는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였는데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과 함께 모리아를 경험하였으니 한참 지났으므로 나이가 백살은 훨씬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후에 그두라를 만났으니 죽은 몸이 아니라 이미 분토가 되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랬던 사람이 자녀를 여섯이나 더 낳았답니다. 누구의 능력이고 은혜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분명합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하늘이 반쪽이 난다하여도 믿어야 합니다. 반쪽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반쪽에서도 하신 말씀을 지키실 능력이 있으시고, 반쪽으로 안 되면 하나를 유지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으면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믿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안 보인다고 믿지 않고 불신과 부정적인 말과 불평과 원망을 하다가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열 명에서 2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못들어갔으니까요? 우리는 어디에 속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런 분명한 증언과 증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본문4:12~13절의 말씀은 매우 유명하면서도 실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우리를 알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꼭 믿고 주님의 안식과 약속의 복을 얻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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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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