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신 것을 확실하게 검증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사흘만에 부활하심입니다.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많은 궁금증을 갖게 하셨을 것이고, 안타까움의 대상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조금도 의심할 바없이 하나님의 아드님과 구주가 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그 증명은 가장 확실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십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고전15:9절 후반부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사람입니다. 왜 박해를 하였습니까? 예수라는 도와 예수가 부활하였음을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박해의 이유가 됩니까? 첫째는 유대교의 하나님을 우습게 만들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란케 만들고, 나쁜 곳으로 유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혹새무민한다고 오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그들이 백성들을 선동하고 난을 일으켜서 로마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진압하고 탄압하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과 열정을 걸고 예수교와 그들 일당들을 박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사람인데 예수교의 복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밝혔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교로 생각하고, 반대하였는데 사교가 아니고 진실이고, 거짓이라 하였던 그 내용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마음과 반응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바울은 예수님과 그 도와 부활을 생명과 열정을 바쳐서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바울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답니다. 그래서 참거나 쉴 수가 없었다고 고전9:16에서 고백하였습니다. 바울 혼자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 믿을 사람도 믿어 줄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을 인정했던 사람들까지도 그만하라고 권면하며 자제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은 본인이 언급하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보다 시간적으로 늦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그들보다 늦었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개인적으로 계산해 보니까 본인가지 모두 514명이었습니다. 514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대로라면 매우 큰 숫자입니다. 이유는 한 사건이 진실임을 입증할 때 필요한 사람의 숫자가 두 사람이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필요하실 때마다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로서는 사역자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의 숫자로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증언하게 하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인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령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주이심을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 성경과 하나님과 본인의 말씀과 능력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가장 확실하게 알려 주는 증언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들도 부활할 것임을 전하는 예고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예수님처럼 부활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고전15장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누구일 것 같습니까? 53절과 54절에서 그 대답을 해 주십니다. 썩지 않을 몸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썩지 않을 몸이란 믿음으로 하늘을 바라고 하늘나라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하늘나라의 삶을 산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일이나 세상 것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들로 염려하거나 낙심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다투거나 갈라지지 않습니다. 고전15장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습니다. 29절의 말씀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복음이 그것을 권장하거나 하라는 것이 절대아닙니다. 복음을 오해하여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지적이고, 그렇게 하였던 이유는 부활을 바랐기 때문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도 부활해야 함을 알리주고 부활하기 위해서는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 그리고 하늘나라에 속한 믿음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전16장에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를 마감하면서 본인의 부탁과 함께 사역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사역자에게 어떻게 해야 교우들, 신자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까? 그들을 믿고 그들이 가르치는 복음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을 신뢰하는 증거는 그들이 가르치는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들의 삶을 나누는 일들이라고 고전16:16절(참고, 갈6:6, 히13:17)에서 알려 줍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처럼 자신도 부활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과 부활하는 그날 아무런 제약없이 부활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하늘나라의 온전한 시민으로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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