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 사람들과 평화협정을 맺기는 맺었는데 뭔가 찜찜했나 봅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방문을 하기로 하고 찾아가 보았더니 그들이 사는 곳은 겨우 삼일이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을 헤칠 수가 없었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그들을 죽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나무를 패는 일을 시키며 살게 하자고 제안을 하자 백성들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에게 왜 속였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과 모세가 행한 모든 일이 사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속이기는 하였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고 살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그들에게 오히려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주님을 믿고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공격하기 전에 보냈던 정탐군들을 도왔던 라합과 예수님께 왔으나 예수님께 거절을 받았던 수로보니게 여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수로보니게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개로 취급하면서 개도 주인의 자녀들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는데 자기는 부스러기만이라도 좋으니 그것으로 귀신에 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고 그 여인을 향해 큰 믿음이라고 부르시며 예수님은 여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물론 라합 역시 그녀의 믿음으로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니 시편의 기자 고백처럼 주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백성은 복을 받았습니다(시144:25). 또 한편으로 생각되는 것이 그들이 비록 속여서 평화의 조약을 맺었다 하여도 믿음의 백성들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의 조약을 맹세하며 맺었으므로 지켰습니다. 맹세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말씀들이 기억납니다. 주님의 능력과 그 백성의 위세를 알았던 기브온 사람들은 살기 위해 거짓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평화의 조약을 맺었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에서 주님을 믿었으므로 살아났습니다. 거짓을 행하여서라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으려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방인이었던 우리는 거짓을 행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주님의 백성다움을 만방에 알리며 주님의 자비를 전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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