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넘어뜨리고 아이성을 넘어뜨렸다는 소식을 들은 가나안의 종족들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한쪽은 여러 종족이 합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무너뜨리자는 전투파였고, 한쪽은 이스라엘의 잠재성을 잘 알아서 그들과 평화 협정을 맺자는 협상파였습니다. 본문은 협상파들이 꾸미고 실행한 것을 그냥 수용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실수를 기록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실수에 대하여 본문 14절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주님께 묻지도 않은 채 그들이 가져 온 양식을 넘겨 받았다."라고 있는 그대로를 알려 줍니다. 주님께 묻지 않은 것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주님께 묻지 않고 공격했다가 패배를 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 성을 공격하기 전에 주님께 물었다면 아간의 욕심과 죄악을 알려 주셨을 것이고 먼저 아간의 문제를 처리하고 아이 성을 공격하였을 것이므로 아이 성에서의 패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다시 기브온 사람들의 위장술에 속아서 실수를 범합니다. 기브온 사람들과 평화 협정을 맺는 것이 왜 나쁜지는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처음에 여호수아 기자가 언급하였듯이 그들은 평화 협정을 맺지만 결국은 살아남는 것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종족과 평화 협정을 맺지 말라고 하셨고, 심지어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에서 내쫓으시는 이유는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광야 40년이라는 기간을 통해서 순결하게 하셨으므로 가나안 족속을 만나서 섞여서는 안 됩니다. 죄로 오염이 될 뿐입니다. 그런 경고를 받고 가나안에 갔습니다. 자신들을 찾아온 가나안 종족이 멀리서 왔음을 입증하는 완벽한 위장을 펼쳤다 하여도 당연히 주님께 여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 여쭈지도 않고 덜컥 평화협정부터 하였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셨고, 평범하게 생각해도 가장 처음에 있는 일이므로 여쭙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실수의 시작은 주님께 여쭙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연속되는 실수와 죄악도 주님께 여쭙지 않는 것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왜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합니까? 주님께 여쭙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요청도 되지만 주님의 뜻을 묻고 지혜와 방향을 받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여쭙고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실수도 하지 않고 물론 죄도 범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드리므로 더 이상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면 과정에서는 실수로 보일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주님이시므로 더 좋은 결과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약이고 길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잊지 않고 실천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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