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에게 진흙에 침을 뱉어서 개어 눈에 발라주신 다음에 신로암 못으로 가서 씻게 하셔서 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습니다. 눈을 뜬 사람이 어려서부터 맹인이었고, 성인이 되었으므로 그는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맹인을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하였다고 꼬트리를 잡았지만 눈을 뜬 사람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을 선한 목자이므로 양들로 풍성한 꼴을 먹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본인이 아버지께로 온 것을 믿기 힘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믿으라 하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에 거슬려서 돌을 들어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11장에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서 곧 바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9장에서 맹인을 향해서도 죄 때문인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셨고,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병이나 죽음이 죄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베세스다 연못에 있었던 삼십팔년이 된 중풍병 환자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고, 사지가 마비되어서 친구들에 의해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내려온 사람을 향해서도 죄로 인한 병이므로 먼저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과 아픔과 화난을 죄로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살리러 가신 예수님께 불평을 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본인이 살리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라고 하시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통하지 않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나사로가 안장된 무덤에 가서 무덤 문을 열라 하셨고, 이미 썪기 시작한 나사로를 향해서 나오라고 명령하셔서 나사로가 수의를 입고 예수님께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 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자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민족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옳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생각하지도 않은 말이었다고 요한은 설명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죽음을 영광으로 이해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려 주신 일, 나면서부터 시각 장애자가 되어서 어른이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신 일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하시는 선한 목자의 일이십니다. 그보다 더 큰 일은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이기에 예수님은 본인이 십자가에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가 영광이라는 사용하는 표현은 세상적으로 잘 되었을 때가 아닙니까?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그것을 영광으로 아는 믿음으로 성장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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