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설교 중에 주님께서 기드온을 향해서 힘이 샌 장사라고 부르신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겸손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에서 기드온이 겸손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은혜로 미디안의 주력 군의 장군과 군대를 대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에브라임 지파가 왜 그 일을 혼자해서 혼자 영예를 얻었냐고 거칠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런 항의가 들어오면 내가 혼자 한 것이냐고, 이미 미디안을 대항하기 위하여 장정들을 모집할 때 함께 참석하겠다고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므로 나로서는 누구에게 참석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그들의 업적과 공로가 자기가 행한 것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므로써 그들의 노를 가라 앉혀 주었습니다. 우리 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였는데 기드온에게는 그런 지혜와 겸손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기드온이 군사들과 함께 미디안 군대를 추격하면서 지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자신들에게 먹을 것과 물을 부탁했는데 그들은 기드온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비아냥 거렸습니다. 기드온이 어떻게 그렇게 큰 미디안 군대를 격퇴하고 추격할 수 있냐고 하면서 얄팍하게 자신들의 식량과 물을 갈취하려는 얄팍한 짓이라고 하였습니다. 두고보자고 한 기드온은 자신들의 생존을 주님께 맞기고 가서 미디안의 마지막 남은 만 오천 명을 격퇴하였습니다. 만 오천 명을 격퇴하기 전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십이만 명의 군사를 격퇴하였으므로 남은 만 오천 명을 격퇴하는 것이 쉬울지 모르지만 기드온의 군대는 여전히 삼백 명 뿐입니다. 그런데도 겨우 만 오천 명이 남았다고 합니다.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을 격퇴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들을 믿지 않고 비웃고 돕지 않았던 사람들을 말한 대로 징벌을 하였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장군들을 죽이고, 그들의 타던 낙타의 목에 걸려있는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떼어서 가진 일입니다. 그것이 우상임을 왜 몰랐을까요? 그것이 요즈음의 부적과 같은 것임을 왜 몰랐을까요? 알았겠죠? 요즈음 사람들도 징크스로 혹은 부적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몸에 운을 갖다주고 액을 멀리하겠다는 의미로 몸에 문신을 하거나 몸에 부적 같은 것을 갖고 다니는 예가 있습니다. 부적과 같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유대주의자는 물론이고 신앙인보다 훨씬 미개한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이미 자신들의 몸에 할례를 하고 다니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할례를 마음에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독인들은 영혼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므로 바깥으로 달거나 새기거나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요즈음의 바 코드와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바코드를 어떤 사람들은 666 사탄의 숫자라고 하는데 우리 영혼에는 사탄의 코드가 아니라 성령께서 계시고 예수님의 도장이 있다는 말씀은 성경, 특히 계시록에서 보지 못하신 듯합니다. 성경을 폭 넓게 그리고 전체적으로 읽으시기를 권명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믿음의 사람들은 행운을 가져다주고 불행을 가져다 준나든 부적이나 문신과 같은 우상들의 흔적을 기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비롭고 겸손하고 용감하고 담대한 일상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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