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따라 의롭게 사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어려움이 떠나지 않는 것 같죠?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인데도 죽은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존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젊었을 때에는 나이가 들면 잘 해야지 했는데 요즈음 살아가면서 그리 큰 잘못은 하지 않지만 많은 반성이 됩니다.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생활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면서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고 주님이 주신 것이니 기쁨으로 마라나타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인도 그런 일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67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새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하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우내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대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 아브라함의 자손들, 다윗의 백성들에게 한정시켰던 내용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유대인들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과 뜻을 받은 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까지 열려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모든 민족임을 알게 합니다. 그런 내용을 정리하거나 조절하기 위함일까요? 시72편에서는 만수 무강할 왕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살펴주며 그들의 피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왕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우수한 나라로 세웁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우수한 사람, 복있는 사람은 유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염원하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 곧 율법과 계명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찌기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알면 유대인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세우셔서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물론 가난하고 힘없고 어려운 분들, 장애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분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순종함으로 행복한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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