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본 시 8편의 말씀은 다윗이 기록한 말씀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찬과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행13:22). 그런 다윗인데도 성경의 기자가 알려주신 다윗의 죄는 크게 두번입니다. 그 중 한 번은 우리아라는 사람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임신을 했다는 밧세바의 죄를 덮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다가 안 되어서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시139편에서 다윗은 주님을 향해서 자기의 속 마음과 생각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죄에 빠지면 주님은 보질 못하고 죄를 덮으려고만 합니다. 왜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위장을 하려고 합니까? 왕으로서 체통을 지키고 권위를 유지하기 위함인가 보죠? 그런데 권위와 체통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데 그것을 까맣게 잊나 봅니다. 사실 본 시를 읽고 느낀 저는 다윗보다 더 크고 많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부끄럽고 민망하고 참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도 거리를 두시고, 징계를 하심을 꼭 기억하십시다. 두번째로, 원수가 공격을 해 옵니다. 첫째는 죄를 지은 본인에게 공격을 합니다. 원수 마귀는 죄를 짓기 전에는 죄를 지을 것을 유도하고 권장도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게 되면 바로 공격을 하여서 압살시킵니다. 스스로 죄 지은 것을 공격하게 하여서 더 큰 죄에 빠지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 후에 그런 잘못을 통해 더 온전하게 하시려는데 사탄은 죄인과 죄와 함께 더 큰 죄를 짓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를 더 큰 죄로 이끄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면으로는 주님께 일러바치면서 주님을 공격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공격하면서 주님을 비난합니다. 그것을 알면 죄의 유혹이 크고 먹음직 스럽고 탐스럽게 할 만큼 보암직 하여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만신창이 된 시인은 주님께 회개와 참회와 용서를 구한 후에 9절에서 자신의 탄원을 받아주심을 확신하고, 10절에서는 죄를 짓게 하고 죄를 지은 후에는 자신을 지의 벼랑으로 밀어내려하던 사탄에 대하여 나의 원수가 수치를 당하고, 벌벌 떤다. 낙담하며 황급히 물러간다고 설명합니다. 네, 죄를 짓는 것은 이미 엎질러질 물과 같습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주님께 나가서 정직하게 참회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증폭시키는 사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더우기 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 은혜와 사랑과 희생을 아는 사람은 어떤 유혹이 있어도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합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를 소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죄가 없으시고, 죄를 짓는 사람과는 관계를 하지 않으십니다. 둘째로, 사탄은 죄를 짓게 하고 죄를 지으면 더 큰 죄로 몰아가고, 하나님께 우리가 지은 죄를 보여드리면서 하나님을 공격합니다. 셋째로, 죄를 지었으면 변명하거나 핑개를 대지 말고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 참으로 죄송하고 송구한 것이지만 그것이 사탄의 음모와 공격을 차단하고 물리치는 길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쉽지 않습니다. 죄를 물리치는 것은 죽어야 가능할 만큼 산 사람으로서는 죄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죄와 관계없이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죄와 멀어야 하고, 죄가 왔을 때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물리치고 Sin free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April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