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복음을 전하였을 때 믿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졌는데 이단으로 넘어갈 때는 매우 쉽게 갔습니다. 신기하고 놀랄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이비는 그럴듯하게 비슷하지만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은 시작은 같지만 끝이 다릅니다. 종교의 역사에서 사이비와 이단은 끊이질 않습니다. 바울 시대에서 바울을 괴롭힌 이단들은 유대교였습니다. 그들은 남성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할례예식을 합니다. 할례 예식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증거하는 증표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야훼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이 할례 예식이 진행되어 오다가 이미 신명기 서와 예언서에서 할례를 몸이 아니라 마음에 하라고 하십니다. 할례라는 흔적은 있는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의 증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십니다. 할례를 행한 사람은 모세의 율법이 마음과 행동과 습관에 베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모두 죽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셨어도 그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만입니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 죄에서 구원받을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유대인과 인류를 위하여 죄를 속하는 희생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을 믿는 것이 의롭게 되고 구원으로 가는 시작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완성된 계획이십니다. 할례와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임시적으로 교통하셨던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교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은혜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것 외에는 의롭게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 교 주의자들은 여전히 할례를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바울의 주장과 설명은 그것으로는 안 된다 입니다. 왜 이단에 사람들이 잘 빠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가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오직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음이 복음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힘이 든다. 예를 든다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청소년기의 아들과 딸은 돈 걱정, 생활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부모님께서 모든 것을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은 모든 것을 지불하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스스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외 아드님을 희생하는 댓가를 지불하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순종해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꼭 기억하십시다. 사람의 어떤 행위로든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희생의 피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할례나 행위가 자기를 구원받게 한다는 것은 죄와 죽음으로 빠지는 사람을 인정하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구원받을 능력과 이름은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 뿐임을 알고 믿어서 구원에 이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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