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시90편에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 대체로 70까지 살고, 강건하면 80세까지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가 얼마를 살던지 매우 힘들고 어렵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사람들은 대체로 소유나 권력을 좋아하고, 소유를 많이 가진 사람, 그리고 권력자들을 사모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런 경향에 대해서 본문의 시인은 절대적인 가치로 인생을 평가하면서 누구나 죽음 앞에 설 것이고, 죽을 때 이 세상의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 그리고 사람의 생명 나아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조종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을 두려워하며 신중하게 사는 사람은 매우 지혜롭습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영혼까지 다르시리시는 주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지적하였듯이 우리가 사는 생애는 많이 살아야 80입니다. 요즈음은 백세까지 산다고 합니다. 백세까지 살기는 사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백세는 사는데 병원과 이웃의 신세를 지면서 산다고 상상하여 보십시오. 얼마나 미안하고 힌든 삶이겠습니까? 사는 날까지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삶이 복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육신의 삶을 아는 사람은 시간으로 계산할 수 없는 영원한 삶을 통치하시는 주 하나님을 생각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지라도 주님을 생각해서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롭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며 사십시오. 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양보하고 용서하고 나누는 것이 그런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사모하지 않고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주 안에서 존경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곧 사랑하며 살아서 죽음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고 기쁨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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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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