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지략으로 야곱의 집 안에는 근심이 깊어져 갔습니다. 요셉의 마지막 생각은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모시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창41:52). 그런데 요셉은 어찌된 영문인지 요셉의 생각과 미래를 알 수 없는 아버지 야곱까지 근심에 쌓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은 선하신 주님을 그냥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하신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임을 믿고 주님께서 인도하신 대로 그냥 순종하면 일이 잘 됩니다. 롬8: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해서 헌을 이룬다라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됩니다. 앞날이 캄캄하고 답답할 때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붙듦이 좋습니다. 그 다음 오늘 제목에서 제가 밝혔듯이 아홉 명의 아들들이 집에 돌아온 후에 아버지에게 갔었던 일을 보고드렸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이집트의 관리에게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곱은 펄쩍 뛰었겠죠? 당연히 ... 장남 베냐민이 자기의 아들을 걸고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가 오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였다가 아버지에게 핀잔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유다가 아버지를 설득했더니 아버지가 유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겠다면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로 이해합니다. 첫째는 그동안 해 왔던 베냐민의 행동입니다. 베냐민은 의붓 엄마와 성관계를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범하였으므로 야곱은 베냐민을 보통 아들로 취급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냐민은 자신의 그런 것을 왜 모르고 그렇게 나서는 것일까요? 장남이기 때문에? 잠남이면 오히려 아버지나 어머님께 책임있고, 듬직하여 믿음을 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에 휘말려서 아버지를 범하는 그런 폐륜아적인 행동을 벌이고,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베냐민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말에 관한 일로 시기가 있습니다. 식략이 있을 때 베냐민을 데리고 가겠다는 말은 당연히 동의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제시하는 조건이 매우 허황되어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버지에게 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별 영양가 없는 둘러대기 식의 제공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경우는 형 베냐민이 아버지와 단판을 벌일 때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였습니다. 식량이 떨어지고 모두가 식량이 필요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때 사정을 알고 있는 아버지의 때를 알고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나 누가 아니라 본인이 평생 책임을 지켔다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때이고, 더더욱 아버지에게 명분을 드리는 유다를 선택할 수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보통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때를 잘 알아서 대화를 하고 제안을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맞는 말이 언제나 맞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좋은 말이 언제나 좋지 않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잠25:11절에서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 쟁반에 담긴 금사과라고 하였고, 잠 15:23절에서 적절한 대답은 사람을 기쁘게 하니 알맞은 말이 제때에 나오면 참 즐겁다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신뢰받는 언행, 책임감있는 행동으로 신뢰와 인정을 쌓고, 때에 적절한 말을 하여서 본인과 이웃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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