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는 유다 사람들이 당시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게 된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 십자가의 희생, 부활, 그리고 그들에게 임한 복음 전혀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울이 인용하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비유는 하갈이 아이를 낳아서 이스마엘이 그 집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라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점이고, 비록 그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집에서 기득권을 많이 갖고 있었다 하여도 이삭이 태어난 이상 그는 아브라함을 이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예라 믿고, 오히려 이삭을 핍박까지 하였습니다. 육신의 자녀라 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들은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이스마엘과 하갈이 핍박을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복음 역시 당시는 매우 연약하고 미흡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비록 미흡하고 연약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이 있으신 은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는 부활의 능력을 전파하는 복음을 믿고 굳건히 서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복음이 유대 교의 율법주의자들을 훨씬 능가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오실 예수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몸으로 행하는 것들을 구원의 기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처음 그때 바울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전파한 그 때를 생각해서 복음과 믿음으로 회복하시고 은혜 안에서 율법을 바라보고 흠과 티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August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