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잘못을 했어도 너무 힘들고 괴로우면 주님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겪는 괴로운 현상이 죄 때문임을 알고 아프고 힘들지만 제 잘못을 징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처럼 잘못을 하지 않고, 바울처럼 충성에 충성을 하였는데 현상이 괴로우면 현실이 왜 이리 어렵고 힘든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의 현실이 매우 고달프고 억울해서 왕의 부름을 받고 나갈 관리에게 제발 자기의 사정을 알려서 석방시켜 주게 하여 달라며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약한 데서 은혜가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가시를 짊어지고 사역하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기도하고, 그래야 겸손하고 그래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시인은 주님을 찾으며 울부짖는데 주님께서는 울부짖는 시인에게 낙심하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시인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도 자신에게 닥친 괴로움과 낙심에 빠져서 주님의 말씀을 괴로움과 낙심과 같은 정도로 듣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그것이 힘이 되고, 회복이 이루어질텐데 울부짖으면서 기도를 드리면서도 아픔과 낙심에 빠져서 주님의 말씀을 그 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시인이 아픔과 낙심에서 회복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젊은 시절 자동차 사고로 심히 아파할 때 주님의 말씀보다 아픔에 더 집중했던 잘못이 생각이 납니다. 주님께서 아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면 주님을 기다리고 바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시인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치유와 회복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아픔과 낙심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듣습니다. 그런 현상은 주님을 찾기는 찾아도 믿음 없이 찾는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지금도 그런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를 살펴서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아픔도 낙심도 모두 주님께 맡기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믿습니다. 하고 낙심에서 벗어나고 아픔에서 건강으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경험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음성과 능력을 가장 효과적인 약과 열쇠로 보면서 어려운 현실을 건강한 현실로 회복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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