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마지막 날입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한 달을 건강하게 지켜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는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롬14:7~8)는 바울의 고백과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죽음의 병에서 살아난 히스기야를 축하하리 귀해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히스기야는 성전과 무기고 모든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이사야 선지는 히스기야 왕에게 실수를 했다고 하면서 히스기야가 경악을 할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경악을 할 주님의 말씀이란 왕궁과 창고 안에 있는 모든 금은 보화를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는 것과 그의 후손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자기가 살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유지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선조로 그리고 믿음의 사람으로 자기만 괜찮으면 다행이라는 표현, 그 원인이 자기에게서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엇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개신교 집회와 예배가 서로 대립을 해서 개신교가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이 만든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나름대로의 사정과 생각이 있겠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예배를 드림이 옳다고 생각이 됩니다. 나만, 우리만 괜찮으면 다른 사람, 아들, 손자,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히스기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 히스기야는 교만하게 되었다(대하32:25~26)고 성령께서 성서 기자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자신의 회복을 축하하러 온 바벨론 사신에게 히스기야가 행한 것이 무슨 잘못을 했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벨론에 대하여 그들을 주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는 사용하셨을지라도 좋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심판하셔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주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알고 있었고, 당연히 알았어야 합니다. 그런 바벨론에 대하여 자신의 궁궐과 창고를 보여 준 이유는 아마 자신의 건제함과 능력을 보여주면서 미리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히스기야와 유다, 곧 앗수르의 공격에서 견뎌내고, 병에서 치유되어 회복된 것은 주님이셨지 궁궐과 무기와 보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자신은 낮아지고 주님을 높여드렸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히스기야를 꾸중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라고 고백한 바울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과 고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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