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주님은 곡에 대한 심판과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곡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나라입니다. 앗수르의 경우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다른 민족들과 혼합시켰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타민족에게 보내서 그들과 섞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타민족을 북 이스라엘로 데리고 와서 북 이스라엘과 섞이게 하셨습니다. 타민족과 섞이게 됨으로써 문화도 섞였고, 종교도 혼합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는데 바벨론의 군대는 그동안 유다가 경험했던 블레셋이나 앗수르의 군대와는 달리 매우 잔인했습니다. 무서운 군대를 가리켜서 말할 때 인정사정 보아주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그들은 유다에 대해서 매우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보란듯이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였고, 성전의 거룩한 기물들을 우습게 여기면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성전을 가법게 여기고 조롱한 것이 느브랏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 성전의 기물을 가지고 와서 손님들과 함께 술을 따라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한 점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과 징계에서 회복시키실 때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한 세상의 곡들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 거룩한 종들을 심판하는 도구가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피해야 하겠지요. 왜 본인이 거룩한 주님의 자녀나 종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자처합니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두번째로 어쩔 수 없이 심판하고 징계하는 도구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자비를 갖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8장에는 왕의 환관으로 봉사했던 에벳멜렉이란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 사람들이 우물에 가두어 두었을 때 함께 동조해서 예레미야를 죽이게 하지 않고 오히려 왕에게 예레미야를 살리도록 간구하여 살려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동정을 한 에벳멜렉을 유다의 멸망에서 구원하여서 살게 하시겠다(렘39:18)고 약속하십니다. 잠언 24:11절의 말씀에 "너는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주고, 살해될 사람을 돕는 데 인색하지 말라."하셨고, 17절 말씀에서는 우너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고, 그가 걸려서 쓰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넘어져야 할 때 오히려 그들의 후손을 변절시키고, 그들의 믿음에 상처를 주면서 그들의 아픔에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백성이나 종들이 심판을 받는 일에서 피할 수 없는 환경이 온다면 피하는 것이 좋고 할 수 없이 참여하게 된다면 동정하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게 한 인물에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가 있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율법 학자와 당시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고백하며 암송하는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고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의 피에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손까지 물에 씻었습니다. 그랬다고 씻어집니까? 거룩한 백성들과 주님의 종들이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주님께서 심판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사무엘서를 보던지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의 말씀에 그런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징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동정하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십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반역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명책에 지워달라고 하면서 그들이 잘못을 용서받도록 힘을 다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리고 스데반 집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주님의 백성들과 종들을 동정하며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April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