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생애를 보면 개인에게는 기쁨이고, 자랑이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시기와 미움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본인의 성실함이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실하지 않을 수 없고, 주님께서 주신 꿈을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기와 미움을 받고, 함정에 빠지더라도 그냥 하는 것이 삶입니다.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배우게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그들이 요청을 듣고 오도록 양을 치는 형들에게 갑니다. 그들이 있던 곳이 세겜이었는데 없었습니다. 요셉의 성품을 보면 정의로운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하여 세심하고 온정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형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이 그곳에 없었으면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없다고 보고를 하여도 그만 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습니다. 형들에 대하여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고 그들을 찾아갑니다. 요셉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으로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을까요? 요셉은 그 정도로 성품이 나쁘진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표현이 다를 뿐이지 악하거나 잔인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풍성한 사랑을 받은 요셉이기에 형들을 따뜻하게 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성품이 맡겨진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왠만한 사람이면 자신이 가는 곳까지만 갔을 것입니다. 형들이 양을 치는 곳은 광야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의 왕래도 없는 곳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처치하려고 의논할 때 사용한 표현들을 보면 무서운 짐승도 만나서 해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요셉은 거리나 광야나 짐승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다정하고 성실한 요셉을 형들은 시기와 미움으로 봅니다. 그래서 꿈꾸는 녀석이라면서 비웃습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이십 세겔에 팔려서 이집트로 갔고, 그곳에서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됩니다. 다정하고 성실한 결과가 이것인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한국말처럼 인생은 한 면으로만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주님께서 그렇게 좋은 요셉을 좋은 방향에서 사용하실 수 없었을까?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위적으로 약속을 만들지 않으시고 그들의 모양대로 그리고 성품대로 사용하십니다. 또 한편으로 주님과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자라난 요세븐 노예나 종의 신분에서도 비관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환경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배우게 됩니다. 자기의 모습 그대로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며 주님을 생각하며 사는 요셉입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도전과 격려과 깨달음의 깊이가 풍성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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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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