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입니다. 그 두 사람들 중에서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사람은 여호수아입니다. 의문이 듭니다. 여호수아의 무엇이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람이 되게 하였을까? 이렇게 의문을 갖고 대답을 찾는 저 역시 잘못된 마음을 갖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국 사람의 시각에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을 좋게 보고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도자가 되지 않아도 묵묵하게 인도자를 후원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는 누가 중요하고 누가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그렇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의 의문과 대답에 시험받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서 목사의 시각과 믿음 안에서 떠오르는 은혜를 따라 대답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갈렙으로서 충분히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서 영도하는 것에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이 이스라엘을 영도할 때 여러 번 모세의 지도력에 대항을 하고 불만고 반항을 하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갈렙이 여호수아에 항거해서 그리고 여호수아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반항하였다. 사람을 모아서 집단으로 대항했다는 기사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렙은 나이가 80이 넘은 노인이었으면서도 믿음으로 아낙 자손을 공경하겠다고 여호수아와 다른 이스라엘들을 격려하는 좋은 면을 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고,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호수아 역시 모세의 부관으로 모세 이상으로 기도한 사람임을 본문에서 보여줍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구처럼 가까이에서 기도를 드리고 떠난 후에도 회막을 지키면서 기도를 한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좋은 부관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부관이나 부 사역자, 부 목사는 상관의 장점보다 못난 점을 보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것보다 오히려 더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부관인 여호수아로 인하여 곤경에 처한 일이 없습니다. 신실한 부관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과 모세는 충분히 여호수아를 신뢰하였고, 그를 이스라엘을 이끄는 영도자로 기름부어서 세웠습니다. 부관은 실력이 많아도 자기의 때가 아니므로 그것을 감추고 상관에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지금 선 자리가 상관입니까? 아니면 부관입니까? 그 자리가 어느 것이든 협조하고 배우고, 주님께 더 가까이 더 많이 가는 주님의 종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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