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주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능력입니다. 복음은 영혼을 살게 하고 범사를 잘되게 하며 육체를 건강하게 해 줍니다. 사실이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으로 주님의 백성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인을 찾아오는 환자는 물론이고, 세상의 의학들이 치료불가능하다는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한센병은 물론이고 중풍병, 손마른 병, 곱사등까지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려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여 주십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먹는 것이 소망이었는데 그것을 훌쩍 넘겨서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람되고 의미있게 사는 사람이 될까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좋은 복음을 증거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복음을 전파할 때 늘 방해와 박해와 핍박이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나요?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엡6장 후반부에서 믿는 것은 영적인 일이라고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영적인 일이라면 사탄과 귀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사탄과 귀신이 사람을 조절했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자신들의 영역을 예수님께 빼앗깁니다. 그래서 우선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박해해서 못 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믿고자 하는 사람도 못 믿게 합니다. 그러나 믿으면 귀신은 물러가고, 전하면 사탄은 쫓겨갑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불활로써 그들을 완전히 쳐 부수셨기 때문입니다. 믿고, 전하기까지가 문제입니다. 핍박과 박해를 받는 것은 믿는 사람을 믿음으로 강화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고난을 통해서 믿음이 연단됩니다. 자신을 점검하게 되고 훈련을 받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한 고통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롬5장의 말씀대로 환난은 연단은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운동을 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기분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장성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과정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과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을 기뻐합니다. 작은 불씨로써 복음의 불을 지펴 놓았는데 초신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능력있는 모습이 아니라 박해를 받고 쫓겨나는 어려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림처럼 초신자들은 복음이 능력있게 나타나서 왕성하게 부흥도 되고 사람도 많이 바뀌어서 복음과 교회가 승리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디모데 목사를 보내서 교회를 알아보니까 오히려 살아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유지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역자의 기쁨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 기뻐하며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사역과 열매는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신다는 말씀(사42:3)을 현실에서 보여주십니다. 이와 같은은혜를 기쁨으로 감사드리며 한 가지 당부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는 성도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 주 예수님을 닮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아나서 성령을 따르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심입니다. 나는 괜찮아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늘 죽고 늘 새롭게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거룩하여 집니다. 거룩하셔서 사역자는 물론이고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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