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이 살아오는 동안 죽음을 잊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게 되므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사는 것에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히 9:27절의 말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죽음을 알려 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기억하자라는 구호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성경은 세상과 달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5장에서 죽음에서 몸을 육신의 장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으면 하늘의 장막으로 갈아입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4). 따라서 기독인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이유는 그날 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까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살전 5:16~18절에서 잘 알려 줍니다. 항상 기뻐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늘 감사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화평하게 지냅니다. 물론 본문에서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한 것과 같이 살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그 일을 충성되이 순종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세상의 것에 욕심을 갖는 것은 죽음이 고통스럽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하늘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게 되면 어떤 일, 어떤 역할에 상관하지 않고, 늘 보람과 기쁨이 넘치는 은혜롭고 복되게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마 6:33)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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