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두로에 대하여 기억 나는 것이 있으십니까? 두로는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을 때 그리고 자기 궁전을 비롯하여 큰 건물들을 지을 때 나무를 공급했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 백향목을 제공했던 나라입니다. 해안 국가로서 땅이 비옥하고 상업이 발전했던 나라였습니다. 농산물, 임업, 상업이 발달한 나라였으니까 잘 사는 나라였다는 말입니다. 그랬던 나라인데 그 나라를 향해서 심판을 예언하게 하십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망할 때 주변의 나라로서 반사격으로 자기들이 잘 될 것이라고 공언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한 때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당신이 형님이요, 내가 아우하면서 하면서 좋은 관계를 표현하였으면서도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였다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표면상은 우의를 말하면서 속내는 망하기를 바란 그들의 정체를 아시고 그들 역시 유다를 망하게 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망하게 하고 그들이 쌓았던 발전과 문명과 수고를 한 순간에 무너지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미국이 당시는 중공과 수교를 열면서 그 일을 성사시킨 키신저가 한 말로 기억을 합니다. 앞으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양국이 탁구로 문을 열더니 국가끼리도 문을 열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로 중공의 실제를 인정하여서 유엔 안보리의 국가로 인정하였고, 나라의 이름도 중공이 아니라 중국으로 바꾸어 불러주었습니다. 요즈음은 다시 중국을 압박하며 공격을 하는 분위기인데 워낙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 있어서 미국으로서도 중국을 몰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고 키신저의 이야기는 성서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한번 맺은 관계는 신의로 지키되 맺는 관계는 정의로워야 한다가 성서적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면 그들이 누구이든지 손을 잡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적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부매랑이 되어서 자기를 황폐화 시키는 것도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관계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관계를 맺을 때도 손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맺고 그렇게 맺은 관계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주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관계입니다. 특히 사람관계는 더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친구 사이의 신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과 함께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건설해 가는 그런 신의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이리 갔다 저리갔다하는 관계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관계가 아닙니다. 특히 주 안에서 신의를 맺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돕고 함께 회복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를 도우십니다. 관계를 시작할 때 주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힘이 있으니까, 도움이 될 듯하니까 관계를 하고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 같지 않으면 끊어버리는 관계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두로에게 내리신 심판을 내리십니다. 주 안에서 믿음으로 한번 맺은 관계를 신의로 지키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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