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라는 왕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고모에 의하여 구사일생하였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믿음과 담대함으로 왕이 된 사람입니다. 본문 처음을 보면 왕 요아스가 여호야다에게 직접 성전을 단장하기 위하여 헌금을 걷어서 보수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여호야다를 불러서 추궁을 하고 자신이 명한 것을 속히 진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왜 빨리 진행하지 않았을까? 가 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의 일에 대해서 본문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기자는 왕 요아스가 스스로가 아니라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환경을 늘 설명합니다. 이 말인즉슨즉 왕이 여호야다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 곁길로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나름 하나님의 성전을 단장한다는 명목으로 헌금을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헌금은 강요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말씀하셔야 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그리고 의무감이 생겨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헌금이 시험이 될 수가 있습니다. 왕이 성전을 위한다고 해도 제사장만큼 성전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제사장은 여호야다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더구나 왕은 여호야다에게 직접 명을 내리지 않고, 제사장들과 레위인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선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그것을 빌미로 여호야다를 다구쳤습니다. 그에 대한 감정을 선으로 보복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신의 불쾌감을 보여주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 다음 여호야다가 죽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의 계명 바깥으로 이끄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아합이 갔던 길을 쫓습니다. 당연히 믿음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지적하자 그를 없앨 음모를 따라서 성전 뜰에서 돌로 쳐서 죽였다고 합니다.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려내고 왕을 세웠더니 그렇게 죽였습니다. 그 결과에 대하여 역대하의 기자는 시리아의 작은 군대가 유다의 큰 군대를 이기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요아스의 왕의 심복들이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일에 반감을 품고, 그가 잠을 자는 사이에 그를 죽였다고 합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요아스가 주님의 말씀 바깥으로 나가게 한 사람이 심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음모를 짰던 사람이 심복들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꾸민 자들이 그것을 행한 요아스에게 불만을 품고 그를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경청하고 순종해야 할 말은 오직 주님의 말씀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은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따라서 누구를 핑계대거나 미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유혹하고 꼬득인 사람들이 자신을 심판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발끝까지 기쁨으로 지키면 할 길로 왔던 사탄이 열 길로 도망을 한다는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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