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이 어디에서 올까요? 그렇습니다. 자기를 내세울 때입니다. 자기를 내세울 때는 자기가 죽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자기가 죽어야 부활도 소망하게 되고, 자기가 죽어야 주님과 살아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비록 다른 이유로 주님과 관련을 맺어도 믿음의 시작은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려서 세례라는 단어보다는 침례가 훨씬 더 죽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침례나 모두 죽음을 의미하고 죽어야 주님과 함께 살아나게 됩니다. ㅅ례를 받으셨죠? 그런데도 살아나있다면 그분은 세례의 참 의미를 모르는 것이므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세례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게 됨을 믿고 고백하는 예식입니다.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던 지파들의 용사들이 요단 강변에 큰 탑을 쌓은 것이 문제가 되어서 대제사장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여 파송하여 보니까 제단을 쌓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공적을 치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서편 사람들과 한 형제자매이고, 주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신 것과 주님이 요단 동서 양 지파들에게 땅을 배분하여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수22:21)임을 설명하자 동편 지파들이 단 쌓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여 점검하러 갔던 대표들은 기뻐하면서 돌아가서 동편 장정들의 설명을 전달하였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아름다움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서편 사람들이 잠시는 오해를 하였지만 그 오해는 주님을 생각한 것이었고, 동편 사람들 역시 주님의 은혜와 인도를 기념하면서 장차 자신들의 자손들에게도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서로에게 감정이 없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주님을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서로 하나가 되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러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나 가정, 자기 이웃, 나아가서는 민족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여러 사람이 여러 모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서 아름다움과 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는 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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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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