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동화와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가 새벽 일찍 느닷없이 깨우시더니 먼길을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사흘 길을 갔습니다. 모리아라는 산 밑에 도착하였습니다. 사흘 길을 오는 동안 아무런 말씀도 표정도 바꾸지 않던 아버지는 장작과 칼과 불을 종들에게 받아서 아들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조금 가다가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가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러 간다고 알려 주셨는가 봅니다. 아니면 이삭이 번제를 드리러 가시는 줄 눈치를 채고 아무말도 하기 싫어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나 봅니다. 그러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손수 준비하실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 이 대목이죠? 이 대답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까요? 정곡이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손수 준비하신다는 대답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과 같은 자신들의 부부에게 이삭을 주셨으니까 이삭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준비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일 수도 있고,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아버지로서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미 세상의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 이삭은 아버지의 가당치도 않은 대답을 알고 있었을까요? 아버지를 모시고 그냥 정상을 향해 갔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요? 이삭은 아버지에게서 도망도 칠 수 있었고, 아버지를 밀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 노인인 아버지에게 묶여서 제단 위에 까지 올려 집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데 어떻게 그런 아들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신명기 6장에서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계속 가르치고 말해서 진리와 생활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그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를 들어서 알았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는 현실을 통해서 그 말씀이 허구가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에다가 계속 계속 심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저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할까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결과는 선한 일입니다. 나를 죽여도 나를 망하게 하여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망할 것 같지만 번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산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셔 쩝쩝 하셨을 것이고, 아들 이삭은 알았습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를 따라서 하나님을 그렇게 믿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하산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좋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두가 화목하고 소망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August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