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중에 요단 동편의 군사들이 여호수아와 여러 지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간지 얼마 안되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요단 강변에 큰 단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 단을 놓고 그들이 나름대로의 단을 쌓아서 죄를 범하려고 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졌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들에겐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오직 한 곳입니다. 주님의 성막이 성소가 된 실로 뿐입니다. 각 지역다 회당이라고 부르는 시나고그나 성전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개념에서 큰 단을 쌓는다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끼리 주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사를 집전하는 대 제사장도 요단 서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부랴부랴 자신들의 의견을 정리하여서 동편으로 떠난 후 단을 싸흥 사람들을 향해서 갔습니다. 가서 그들에게 이 단은 무엇이고 단을 쌓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그동안 잘못하여서 주님께 징계받는 이야기를 피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서편에서 간 사람들은 동편 사람들의 행위를 잘못이라고 규정하고 꾸짖었습니다. 그 말을 다 들은 동편 사람들은 자신들이 단을 쌓은 것이 제단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제단을 쌓은 것은 서편 사람들과 한 형제며 자매임을 알리게 하기 위하여 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자존심 대결로 치달을 수 있는 사건을 통해서 생각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단을 쌓은 동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단을 쌓아야 하는지를 서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였다면 오해가 아니라 오히려 칭찬과 협조를 받아서 서로 필요없는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서편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 전에 동편 사람들에게 단을 쌓은 의도를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잘못된 의도가 아니었지만 설령 잘못된 의도였다할지라도 그들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나서 자신들의 방향을 정해도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동편의 사람들이 서편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자신들이 단을 쌓은 이유가 서편 사람들이 걱정한 것이 아님을 잘 설명해 줌으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서 자칫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양편 모두에게 현명함과 상대들을 배려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상대에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의도이니 만큼 상대방에게 설명을 하고 오해를 주지 않는 배려와 신중함이 필요하고, 오해를 듣더라도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것에서 옴을 이해하고, 잘 설명해 줌이 필요합니다. 또한 상대에게서 오해할 만한 잘못이 발견되더라도 성급하게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묻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풍성해서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와 관용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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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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